인도 vs 파키스탄 '70년 갈등'에…다시 화약고 된 카슈미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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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리포트
인도-파키스탄 대립 격화
반세기 넘도록 분쟁
인도-파키스탄 대립 격화
반세기 넘도록 분쟁
“핵무기 보유국끼리 이틀간 공습을 주고받은 것은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인도와 파키스탄이 지난달 26일부터 이틀 연속 전투기 교전을 벌이고 지상에선 박격포 공격을 주고받자 로이터통신 등은 이같이 전했다.
3057㎞의 국경을 마주하고 있는 두 나라는 1947년 영국에서 독립한 이후 세 차례 전쟁을 치렀다. 하지만 인도 공군이 통제선(LoC)을 넘어 파키스탄 공습에 나선 것은 1971년 이후 처음이다. 1999년 카길 전투 때는 인도, 파키스탄 모두 핵실험에 성공한 뒤라 핵전쟁을 우려한 인도 공군이 통제선을 넘지 않았다.
이번 충돌의 직접적인 원인은 지난달 14일 인도령 카슈미르에서 발생한 파키스탄 반군의 자살폭탄 테러다. 갈등은 고조됐고 군사 충돌로 이어졌다. 문제는 정치적 상황이 카길 전투 때와 다르다는 데 있다.
재선을 노리는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와 취임한 지 1년도 안된 임란 칸 파키스탄 총리가 정치 입지를 다지기 위해 상대국과의 갈등을 활용할 가능성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파키스탄이 억류 중이던 인도 공군 조종사를 지난 1일 송환하면서 갈등 해결의 실마리를 찾았지만 접경지대에서 여전히 포격전이 계속되는 등 불씨가 좀처럼 가라앉지 않고 있다. ‘화약고’ 카슈미르 국경 분쟁
인도(힌두교)와 파키스탄(이슬람교)이 종교에 따라 쪼개지면서 분쟁이 시작됐다. 첫 격돌은 1947년 영국이 철수하고 두 나라로 분리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 카슈미르를 놓고 벌어졌다. 카슈미르는 인도와 파키스탄, 중국의 경계에 있는 산악지대다. 면적은 약 22만㎢로 한반도와 비슷하다.
주민의 다수가 이슬람교도라서 파키스탄에 편입되길 바랐지만 카슈미르의 당시 영주 마흐라자 하리 싱이 힌두교도였기 때문에 인도에 통치권을 넘기기로 했다. 그러자 그해 10월 파키스탄 지원을 받은 무장 부족집단이 주도인 스리나가르를 침공했다. 이듬해 인도와 파키스탄의 전면전으로 확대됐고 이게 1차 카슈미르 전쟁이다. 1949년 유엔 중재로 휴전했지만, 카슈미르는 파키스탄령(아자드-카슈미르)과 인도령(잠무-카슈미르)으로 분단됐다.
1949년 정한 휴전선은 1972년 인도와 파키스탄 간 ‘심라협정’에 따라 정전 통제선으로 바뀌었다. 지난달 26일 인도 공군은 1971년 이후 처음으로 이 통제선을 넘어 파키스탄을 공습했다. 지난달 14일 인도령 카슈미르에서 발생한 자살폭탄 공격의 배후로 파키스탄 테러 조직을 지목한 인도는 미라주 전투기 12대를 투입해 파키스탄령 카슈미르에 폭탄을 투하했다. 이에 다음날 파키스탄 공군기는 인도 공군기를 격추했다.
48년 전과 달리 인도와 파키스탄은 모두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다. 카슈미르의 오랜 갈등은 두 나라의 핵무기 개발 경쟁으로 이어졌다. 인도가 1974년 핵실험을 단행하며 핵보유국이 되자 파키스탄도 1998년 실험을 거쳐 핵보유국 선언을 했다. 칸 파키스탄 총리는 지난달 27일 핵전쟁 가능성을 언급하기도 했다.
인도, 파키스탄 어느 쪽도 전략적 요충지인 카슈미르를 포기할 수는 없다. 인도로선 카슈미르 전체를 지배하면 중앙아시아와 아프가니스탄과의 접경 지대로 향하는 문을 확보할 수 있다. 파키스탄이 카슈미르를 차지하면 안정적인 수자원 확보가 가능해진다. 히말라야 티베트에서 발원한 인더스강은 인도령 카슈미르를 거쳐 파키스탄으로 흐른다. 인도가 제재 수단으로 200% 수입 관세 부과와 함께 수자원 공유를 차단하겠다고 파키스탄을 압박한 이유다.
강화되는 힌두 민족주의
전면전 확대를 피하기 위해선 무엇보다 모디 총리의 결단이 필요하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인도가 자살테러 공격에 대한 보복으로 공습을 감행한 배경엔 강화된 힌두 민족주의가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모디 총리는 지난달 28일 “인도는 하나가 돼 적과 싸울 것이며 적은 우리를 불안하게 하기 위해 테러를 저지른다”고 파키스탄을 정면으로 겨냥했다.
2014년 취임한 모디 총리는 힌두 민족주의를 강조하고 있다. 파키스탄에 강경 대응할수록 정치적으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할 수 있다는 관측이 많다. 모디 총리는 경제 개혁 정책을 밀어붙였지만 취업난을 해결하지 못했다는 비판에 직면해 있다. 집권 인도국민당(BJP)과 야당의 지지율 격차가 줄어들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돌발적으로 발생한 카슈미르에서의 테러 공격은 오히려 지지율을 끌어올리는 전기가 되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장기적인 양국 관계 안정을 위해서는 테러 조직에 대한 파키스탄 측의 직·간접적인 지원이 중단돼야 한다.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단체인 카슈미르 반군 자이쉬-에-무함마드(JeM)는 이번 자살테러의 배후를 자처했다. JeM은 파키스탄정보국(ISI)의 지원을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미국과 중국의 대리전 양상
미국은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인도를 지원하고 중국은 미국과 인도를 견제하기 위해 파키스탄을 지지하고 있다. 샤 메흐무드 쿠레시 파키스탄 외교장관은 지난달 27일 왕이 중국 외교장관에게 도움을 요청하기도 했다. 중국은 지금까지 파키스탄에 전함, 전투기, 단거리 미사일, 잠수함, 감시용 무인기 등 재래무기를 다량으로 판매해왔다.
또 파키스탄의 과다르항은 중국의 일대일로(一帶一路: 육해상 실크로드) 사업의 핵심 요충지다. 파키스탄 과다르항에 도착한 원유를 중국까지 운송하기 위한 가스관과 철도·도로망 구축은 양국 간 경제협력의 핵심 사업이다.
반면 미국의 외교적 개입은 이전에 비해 확연히 줄었다. 크리샨 싱 전 인도 대사는 트위터를 통해 “중재자로서 미국의 역할이 보이지 않는다”고 불만을 표했다. 다만 미국은 이번 사태의 불똥이 아프가니스탄으로 튀어 철군 계획에 차질을 빚을까 우려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28일 2차 미·북 정상회담을 마친 뒤 기자회견에서 인도와 파키스탄의 갈등 상황을 언급하기도 했다.
영국 가디언 등은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금융을 요청할 정도로 경제난을 겪고 있는 파키스탄의 칸 총리와 총선을 앞둔 모디 총리 모두 전면전을 벌일 여력이 없다”고 보도했다. 그럼에도 유럽연합(EU) 등 국제사회는 두 나라에 잇따라 자제를 요청하고 있다. 자칫 핵무기 사용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대니얼 마키 미국 존스홉킨스대 교수는 “인도와 파키스탄 사이에 핵 사용 위협이 일상적이지만 이번 사태는 다르다”며 “심도 있게 지켜보면서 핵전쟁으로 가지 않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추가영 기자 gychu@hankyung.com
3057㎞의 국경을 마주하고 있는 두 나라는 1947년 영국에서 독립한 이후 세 차례 전쟁을 치렀다. 하지만 인도 공군이 통제선(LoC)을 넘어 파키스탄 공습에 나선 것은 1971년 이후 처음이다. 1999년 카길 전투 때는 인도, 파키스탄 모두 핵실험에 성공한 뒤라 핵전쟁을 우려한 인도 공군이 통제선을 넘지 않았다.
이번 충돌의 직접적인 원인은 지난달 14일 인도령 카슈미르에서 발생한 파키스탄 반군의 자살폭탄 테러다. 갈등은 고조됐고 군사 충돌로 이어졌다. 문제는 정치적 상황이 카길 전투 때와 다르다는 데 있다.
재선을 노리는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와 취임한 지 1년도 안된 임란 칸 파키스탄 총리가 정치 입지를 다지기 위해 상대국과의 갈등을 활용할 가능성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파키스탄이 억류 중이던 인도 공군 조종사를 지난 1일 송환하면서 갈등 해결의 실마리를 찾았지만 접경지대에서 여전히 포격전이 계속되는 등 불씨가 좀처럼 가라앉지 않고 있다. ‘화약고’ 카슈미르 국경 분쟁
인도(힌두교)와 파키스탄(이슬람교)이 종교에 따라 쪼개지면서 분쟁이 시작됐다. 첫 격돌은 1947년 영국이 철수하고 두 나라로 분리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 카슈미르를 놓고 벌어졌다. 카슈미르는 인도와 파키스탄, 중국의 경계에 있는 산악지대다. 면적은 약 22만㎢로 한반도와 비슷하다.
주민의 다수가 이슬람교도라서 파키스탄에 편입되길 바랐지만 카슈미르의 당시 영주 마흐라자 하리 싱이 힌두교도였기 때문에 인도에 통치권을 넘기기로 했다. 그러자 그해 10월 파키스탄 지원을 받은 무장 부족집단이 주도인 스리나가르를 침공했다. 이듬해 인도와 파키스탄의 전면전으로 확대됐고 이게 1차 카슈미르 전쟁이다. 1949년 유엔 중재로 휴전했지만, 카슈미르는 파키스탄령(아자드-카슈미르)과 인도령(잠무-카슈미르)으로 분단됐다.
1949년 정한 휴전선은 1972년 인도와 파키스탄 간 ‘심라협정’에 따라 정전 통제선으로 바뀌었다. 지난달 26일 인도 공군은 1971년 이후 처음으로 이 통제선을 넘어 파키스탄을 공습했다. 지난달 14일 인도령 카슈미르에서 발생한 자살폭탄 공격의 배후로 파키스탄 테러 조직을 지목한 인도는 미라주 전투기 12대를 투입해 파키스탄령 카슈미르에 폭탄을 투하했다. 이에 다음날 파키스탄 공군기는 인도 공군기를 격추했다.
48년 전과 달리 인도와 파키스탄은 모두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다. 카슈미르의 오랜 갈등은 두 나라의 핵무기 개발 경쟁으로 이어졌다. 인도가 1974년 핵실험을 단행하며 핵보유국이 되자 파키스탄도 1998년 실험을 거쳐 핵보유국 선언을 했다. 칸 파키스탄 총리는 지난달 27일 핵전쟁 가능성을 언급하기도 했다.
인도, 파키스탄 어느 쪽도 전략적 요충지인 카슈미르를 포기할 수는 없다. 인도로선 카슈미르 전체를 지배하면 중앙아시아와 아프가니스탄과의 접경 지대로 향하는 문을 확보할 수 있다. 파키스탄이 카슈미르를 차지하면 안정적인 수자원 확보가 가능해진다. 히말라야 티베트에서 발원한 인더스강은 인도령 카슈미르를 거쳐 파키스탄으로 흐른다. 인도가 제재 수단으로 200% 수입 관세 부과와 함께 수자원 공유를 차단하겠다고 파키스탄을 압박한 이유다.
강화되는 힌두 민족주의
전면전 확대를 피하기 위해선 무엇보다 모디 총리의 결단이 필요하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인도가 자살테러 공격에 대한 보복으로 공습을 감행한 배경엔 강화된 힌두 민족주의가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모디 총리는 지난달 28일 “인도는 하나가 돼 적과 싸울 것이며 적은 우리를 불안하게 하기 위해 테러를 저지른다”고 파키스탄을 정면으로 겨냥했다.
2014년 취임한 모디 총리는 힌두 민족주의를 강조하고 있다. 파키스탄에 강경 대응할수록 정치적으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할 수 있다는 관측이 많다. 모디 총리는 경제 개혁 정책을 밀어붙였지만 취업난을 해결하지 못했다는 비판에 직면해 있다. 집권 인도국민당(BJP)과 야당의 지지율 격차가 줄어들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돌발적으로 발생한 카슈미르에서의 테러 공격은 오히려 지지율을 끌어올리는 전기가 되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장기적인 양국 관계 안정을 위해서는 테러 조직에 대한 파키스탄 측의 직·간접적인 지원이 중단돼야 한다.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단체인 카슈미르 반군 자이쉬-에-무함마드(JeM)는 이번 자살테러의 배후를 자처했다. JeM은 파키스탄정보국(ISI)의 지원을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미국과 중국의 대리전 양상
미국은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인도를 지원하고 중국은 미국과 인도를 견제하기 위해 파키스탄을 지지하고 있다. 샤 메흐무드 쿠레시 파키스탄 외교장관은 지난달 27일 왕이 중국 외교장관에게 도움을 요청하기도 했다. 중국은 지금까지 파키스탄에 전함, 전투기, 단거리 미사일, 잠수함, 감시용 무인기 등 재래무기를 다량으로 판매해왔다.
또 파키스탄의 과다르항은 중국의 일대일로(一帶一路: 육해상 실크로드) 사업의 핵심 요충지다. 파키스탄 과다르항에 도착한 원유를 중국까지 운송하기 위한 가스관과 철도·도로망 구축은 양국 간 경제협력의 핵심 사업이다.
반면 미국의 외교적 개입은 이전에 비해 확연히 줄었다. 크리샨 싱 전 인도 대사는 트위터를 통해 “중재자로서 미국의 역할이 보이지 않는다”고 불만을 표했다. 다만 미국은 이번 사태의 불똥이 아프가니스탄으로 튀어 철군 계획에 차질을 빚을까 우려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28일 2차 미·북 정상회담을 마친 뒤 기자회견에서 인도와 파키스탄의 갈등 상황을 언급하기도 했다.
영국 가디언 등은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금융을 요청할 정도로 경제난을 겪고 있는 파키스탄의 칸 총리와 총선을 앞둔 모디 총리 모두 전면전을 벌일 여력이 없다”고 보도했다. 그럼에도 유럽연합(EU) 등 국제사회는 두 나라에 잇따라 자제를 요청하고 있다. 자칫 핵무기 사용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대니얼 마키 미국 존스홉킨스대 교수는 “인도와 파키스탄 사이에 핵 사용 위협이 일상적이지만 이번 사태는 다르다”며 “심도 있게 지켜보면서 핵전쟁으로 가지 않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추가영 기자 gych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