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선의 'ASEAN 톺아보기'(16)] 하노이행 야간열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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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선 < 서울대 아시아연구소 객원연구원 前 한·아세안센터 사무총장 >
“자신이 원하는 무언가를 이루려 할 때,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고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쏟아내라.” 영화 ‘리스본행 야간열차’에서 주인공 그레고리우스가 던진 메시지다. 이번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베트남 열차여행을 보면서 여러 생각이 교차했다.
지난달 27~28일 베트남 하노이 미·북 정상회담은 ‘환상적인 영화’를 연출하지 못한 채 결렬됐다. 북한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에 대한 기대가 높았던 만큼 당혹감과 아쉬움이 컸다. 2차 미·북 정상회담 개최 장소로 하노이가 결정된 것에 많은 의미 부여가 있었다. 베트남은 미국과 북한에 공히 상징성이 큰 장소다. 북한은 베트남과 반미·반제국주의의 사회주의 연대를 과시한 혈맹이었다. 베트남의 국부 호찌민 주석이 1957년 방북한 데 이어 김일성 주석이 1958년과 1964년 베트남을 방문했다. 베트남 전쟁 시 북한은 많은 무기와 물자를 지원하고 비행전투단과 공군병력을 파병해 하노이 사수를 도왔다. 베트남은 적국 미국과 관계 정상화를 이룬 뒤 눈부신 경제 성장을 달성했다. 오늘날 미국은 베트남의 최대 수출국이다. 한국과도 베트남 전쟁 때 처절한 전투를 치렀지만 이제는 가장 중요한 협력파트너가 됐다.
'환상적인 영화' 연출 못한 美·北
북한이 주목한 점은 베트남이 어떻게 적국 미국과 화해하고 개혁·개방 정책을 통해 경제적 번영을 구가하고 있는가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도 이 점을 누차 강조했다. 북한의 발전 가능성은 엄청나며, 베트남처럼 경제 발전을 할 수 있도록 돕겠다고 했다.
김 위원장의 베트남 방문은 출발부터 주목받았다. 김 위원장의 평양발 열차는 사흘 밤을 달려 66시간 만에 중국과의 국경 근처인 베트남 동당역에 도착했고, 다시 자동차로 2시간 반을 달려 하노이에 도착하는 이벤트를 연출했다. 할아버지 김일성 주석 따라하기를 통해 백두혈통을 과시하고 정통성을 높이려는 시도였다. 누군가는 김 위원장의 열차여행을 “탁월한 선택”이라고까지 평했다. 긴 여정의 매 순간 세계의 주목을 받으며 중요한 정치적 메시지를 발신했다는 것이다. 하노이 정상회담이 결실을 맺었다면 김 위원장의 열차여행은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을지도 모르겠다.
김 위원장은 트럼프 대통령과의 대화에서 그간 많은 고민과 인내, 그리고 노력이 있었다고 토로했다. 그러나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에 이르는 여정에서 지금 이 순간은 시작에 불과하다. 좌절의 경험이 없는 김 위원장이 세계정세를 올바로 읽고 역사를 직시하는 기회가 됐기를 바란다. 베트남은 김일성 주석이 방문했던 국가에서 엄청나게 변화했다. 오늘날의 북한 경제는 베트남의 1980년대 중반 수준에 불과할 뿐이다. 오랜 과거의 향수에 젖어 있을 수만은 없다.
북한이 베트남의 ‘도이머이(쇄신)’ 모델을 따라 개혁·개방 정책을 추진할 수 있을까. 베트남 측 인사는 베트남이 어떻게 1986년 도이머이 정책이라는 대담한 결정을 했는지, 그 이후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는지 간과해선 안 된다고 강조한다.
1975년 통일을 이룩한 베트남은 부분적인 개혁조치를 통해 경제 발전을 꾀했으나 실패의 연속이었다. 1986년 전면적 개혁·개방 정책을 채택하면서 비로소 변화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성과가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그로부터 수년 뒤였다. 한국과 수교(1992년)하고 미국과의 관계를 정상화(1992년 임시연락사무소, 1995년 수교, 2000년 무역협정)한 후 아세안(동남아국가연합)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에 가입함으로써 국제사회에 편입됐다. 헌법을 개정해 ‘사회주의를 지향하는 시장경제’ 노선을 분명히 하고 해외직접투자를 유치해 수출주도 정책을 추진했다.
개혁·개방만이 北 체제안정 도와
북한이 베트남 모델을 그대로 따르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베트남은 공산당 1당 체제이긴 하나 권력이 분산돼 있다. 경제적으로 베트남은 시장경제 체제를 추구하고 있는데 북한은 자력갱생의 사회주의 건설 노선을 떨쳐버리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북한이 비핵화를 이룰 경우 한국, 미국을 비롯한 많은 나라가 도울 준비가 돼 있다. 무엇보다도 한민족의 우수성과 근면성이 발전 동력이 될 것이다. 북한 체제에 이해가 깊은 베트남 인사들은 “김 위원장이 훗날 역사가 제대로 기록해 줄 것이라 믿고 결단력을 발휘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북한의 체제 안정은 개혁을 통해서만 보장될 수 있다. 개혁만이 국민의 생활과 삶의 질을 개선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 하노이 미·북 정상회담은 긴 여정의 시작에 불과하다. “비핵화 의지가 없다면 하노이에 오지 않았을 것”이라고 한 김 위원장의 말을 믿고 싶다. 어떤 국가나 문명의 흥망성쇠는 시대의 흐름을 제대로 읽지 못하거나 자만에 빠져 적절한 대응을 하지 못했을 때 그 결과가 자명했다. 머지않은 장래에 김 위원장이 열차여행을 했듯이 서울을 출발해 평양을 경유하는 하노이행 야간열차 여행을 하는 날을 꿈꿔 본다.
지난달 27~28일 베트남 하노이 미·북 정상회담은 ‘환상적인 영화’를 연출하지 못한 채 결렬됐다. 북한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에 대한 기대가 높았던 만큼 당혹감과 아쉬움이 컸다. 2차 미·북 정상회담 개최 장소로 하노이가 결정된 것에 많은 의미 부여가 있었다. 베트남은 미국과 북한에 공히 상징성이 큰 장소다. 북한은 베트남과 반미·반제국주의의 사회주의 연대를 과시한 혈맹이었다. 베트남의 국부 호찌민 주석이 1957년 방북한 데 이어 김일성 주석이 1958년과 1964년 베트남을 방문했다. 베트남 전쟁 시 북한은 많은 무기와 물자를 지원하고 비행전투단과 공군병력을 파병해 하노이 사수를 도왔다. 베트남은 적국 미국과 관계 정상화를 이룬 뒤 눈부신 경제 성장을 달성했다. 오늘날 미국은 베트남의 최대 수출국이다. 한국과도 베트남 전쟁 때 처절한 전투를 치렀지만 이제는 가장 중요한 협력파트너가 됐다.
'환상적인 영화' 연출 못한 美·北
북한이 주목한 점은 베트남이 어떻게 적국 미국과 화해하고 개혁·개방 정책을 통해 경제적 번영을 구가하고 있는가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도 이 점을 누차 강조했다. 북한의 발전 가능성은 엄청나며, 베트남처럼 경제 발전을 할 수 있도록 돕겠다고 했다.
김 위원장의 베트남 방문은 출발부터 주목받았다. 김 위원장의 평양발 열차는 사흘 밤을 달려 66시간 만에 중국과의 국경 근처인 베트남 동당역에 도착했고, 다시 자동차로 2시간 반을 달려 하노이에 도착하는 이벤트를 연출했다. 할아버지 김일성 주석 따라하기를 통해 백두혈통을 과시하고 정통성을 높이려는 시도였다. 누군가는 김 위원장의 열차여행을 “탁월한 선택”이라고까지 평했다. 긴 여정의 매 순간 세계의 주목을 받으며 중요한 정치적 메시지를 발신했다는 것이다. 하노이 정상회담이 결실을 맺었다면 김 위원장의 열차여행은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을지도 모르겠다.
김 위원장은 트럼프 대통령과의 대화에서 그간 많은 고민과 인내, 그리고 노력이 있었다고 토로했다. 그러나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에 이르는 여정에서 지금 이 순간은 시작에 불과하다. 좌절의 경험이 없는 김 위원장이 세계정세를 올바로 읽고 역사를 직시하는 기회가 됐기를 바란다. 베트남은 김일성 주석이 방문했던 국가에서 엄청나게 변화했다. 오늘날의 북한 경제는 베트남의 1980년대 중반 수준에 불과할 뿐이다. 오랜 과거의 향수에 젖어 있을 수만은 없다.
북한이 베트남의 ‘도이머이(쇄신)’ 모델을 따라 개혁·개방 정책을 추진할 수 있을까. 베트남 측 인사는 베트남이 어떻게 1986년 도이머이 정책이라는 대담한 결정을 했는지, 그 이후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는지 간과해선 안 된다고 강조한다.
1975년 통일을 이룩한 베트남은 부분적인 개혁조치를 통해 경제 발전을 꾀했으나 실패의 연속이었다. 1986년 전면적 개혁·개방 정책을 채택하면서 비로소 변화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성과가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그로부터 수년 뒤였다. 한국과 수교(1992년)하고 미국과의 관계를 정상화(1992년 임시연락사무소, 1995년 수교, 2000년 무역협정)한 후 아세안(동남아국가연합)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에 가입함으로써 국제사회에 편입됐다. 헌법을 개정해 ‘사회주의를 지향하는 시장경제’ 노선을 분명히 하고 해외직접투자를 유치해 수출주도 정책을 추진했다.
개혁·개방만이 北 체제안정 도와
북한이 베트남 모델을 그대로 따르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베트남은 공산당 1당 체제이긴 하나 권력이 분산돼 있다. 경제적으로 베트남은 시장경제 체제를 추구하고 있는데 북한은 자력갱생의 사회주의 건설 노선을 떨쳐버리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북한이 비핵화를 이룰 경우 한국, 미국을 비롯한 많은 나라가 도울 준비가 돼 있다. 무엇보다도 한민족의 우수성과 근면성이 발전 동력이 될 것이다. 북한 체제에 이해가 깊은 베트남 인사들은 “김 위원장이 훗날 역사가 제대로 기록해 줄 것이라 믿고 결단력을 발휘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북한의 체제 안정은 개혁을 통해서만 보장될 수 있다. 개혁만이 국민의 생활과 삶의 질을 개선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 하노이 미·북 정상회담은 긴 여정의 시작에 불과하다. “비핵화 의지가 없다면 하노이에 오지 않았을 것”이라고 한 김 위원장의 말을 믿고 싶다. 어떤 국가나 문명의 흥망성쇠는 시대의 흐름을 제대로 읽지 못하거나 자만에 빠져 적절한 대응을 하지 못했을 때 그 결과가 자명했다. 머지않은 장래에 김 위원장이 열차여행을 했듯이 서울을 출발해 평양을 경유하는 하노이행 야간열차 여행을 하는 날을 꿈꿔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