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포럼] 역사적 과오를 반성하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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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을 內戰으로 내몬 '드레드 스콧 판결'
역사의 '멍청한 오류' 반복하지 않으려면
모두의 책임이란 시각서 잘잘못 되짚어야
윤성근 <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 >
역사의 '멍청한 오류' 반복하지 않으려면
모두의 책임이란 시각서 잘잘못 되짚어야
윤성근 <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 >
흑인 노예 드레드 스콧은 노예제를 금지하는 주(州)로 이사해 자유의 몸이 됐다며 소송을 냈다. 당시 미국은 ‘미주리협정’에 따라 노예제를 허용하는 주와 금지하는 주가 나뉘어 있었고 이를 둘러싼 사회적 갈등이 심각했다. 스콧은 연방 관할을 주장하며 연방법원에 제소했다. 연방대법원은 1857년 대법원장인 로저 태니가 대표 집필한 판결을 통해, 스콧은 미 연방의 시민권자가 아니어서 연방법원에 제소할 자격이 없고, 연방의회는 각 주에 거주하는 개인의 소유권을 적법 절차 없이 함부로 박탈할 수 없는데 미주리협정은 노예 소유주의 사유재산권을 침해하고 있으므로 위헌, 무효라고 판결했다. 이 판결은 미국 대법원 역사상 최악의 판결로 손꼽힌다.
이 판결을 인용하면서 ‘노예는 사람이 아니고 재산권의 객체라고 판결했다’고 단순화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판결문은 200쪽에 이르며 많은 소수의견이 포함돼 있다. 다수의견은 미 연방의 성립과 시민권의 취득, 연방 관할, 개별 시민과 각 주의 자율권을 존중하는 입장에서 바라본 연방의회 권한의 한계 등에 관해 나름의 법리적, 정책적, 역사적 근거와 철학을 가지고 구성돼 있다. 태니 대법원장은 이 판결로써 노예제를 둘러싼 정치적 갈등이 종국적으로 봉합될 것으로 기대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 판결로 인해 미국 사회는 더 큰 분쟁의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들었고 결국 남북전쟁이 일어났다.
역사적으로나 법리적으로나 이 판결은 큰 오류를 범하고 있다. 다만 태니 대법원장이 개인적인 부당한 동기나 악마적인 성향에 의해 이런 결론을 주도한 것은 아니다. 최고의 법률가들이 모여 토론하고 내린 판결에서 7 대 2로 이 같은 결론에 도달했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 판결을 멍청한 판결이라고 비난하기는 쉽지만 그와 비슷한 멍청한 오류를 다시는 반복하지 않기 위해 교훈을 얻으려면 진지한 지적 노력이 필요하다. 외견상 훌륭한 입장이 어떻게 이런 어처구니없는 결론에 도달한 것인지 잘 살펴 반성하지 않는다면 비슷한 오류는 역사의 고비마다 반복될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인혁당(인민혁명당) 재건위 사건이 최악의 판결로 꼽힌다. 이 일을 기획한 것은 정치권력과 중앙정보부였고 재판의 형식을 갖춰 사형을 선고한 것은 군법회의였으며 사형을 집행한 것은 법무부였다. 함께 재판받았던 민청학련(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 당사자들은 재판 결과와 상관없이 석방됐고 인혁당 재건위 당사자들에 대해서만 신속하게 사형이 집행됐다. 결국 정치권력이 자신의 뜻대로 사람을 죽이는 것부터 풀어주는 것까지 마음대로 한 것이고 재판은 장식에 불과했다. 당시 대법원 판결(인혁당 재건위 사건과 민청학련 사건이 함께 상고됐다)을 보면 여러 대법관이 소수 의견을 내고 일부 파기환송도 했다. 아마 이 정도도 상당한 용기였을 것이다. 그러나 역사의 법정에서 판사들에게 요구하는 용기는 그 이상이다.
현재 법원에 근무하는 어떤 판사도 이 재판 당시 판사였던 사람은 없다. 대부분은 그 당시 태어나지도 않았다. 나는 그들과 다르고 그들의 잘못은 나와 상관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국민은 기한 없이 연대책임을 묻고 있다. 법원에 반성을 요구하는 역사 정신은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
대통령 긴급조치를 통해 수사 과정에서 법원의 영장 없이 압수, 수색, 구속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정규 법원을 무력화한 채 특별법원을 설치해 민간인까지 군법회의에서 재판하도록 한 것이 비극 발생의 큰 원인이기도 하다. 지금까지도 영장 기각을 놓고 수사기관이 법원을 비난하고 영장발부 요건을 완화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나 정치권에서 특별법원 설치를 주장하는 것을 보며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공격의 대상을 악당으로 단순화한 뒤 강력하고 선명한 공격을 퍼붓는 것은 역사적 과오에 대한 반성을 통해 사회가 발전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선량하고 훌륭한 사람이 어떤 과정을 거쳐 그런 역사적 과오를 저질렀는지 탐구하는 게 비슷한 잘못을 되풀이하는 것을 막는 데 필수적이다. 역사적 과오에 대해서는 그 시대적 배경과 문맥을 고려하고 우리 모두의 잘못이라는 시각에서 자기를 포함해 주체적, 적극적으로 반성해야 한다.
이 판결을 인용하면서 ‘노예는 사람이 아니고 재산권의 객체라고 판결했다’고 단순화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판결문은 200쪽에 이르며 많은 소수의견이 포함돼 있다. 다수의견은 미 연방의 성립과 시민권의 취득, 연방 관할, 개별 시민과 각 주의 자율권을 존중하는 입장에서 바라본 연방의회 권한의 한계 등에 관해 나름의 법리적, 정책적, 역사적 근거와 철학을 가지고 구성돼 있다. 태니 대법원장은 이 판결로써 노예제를 둘러싼 정치적 갈등이 종국적으로 봉합될 것으로 기대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 판결로 인해 미국 사회는 더 큰 분쟁의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들었고 결국 남북전쟁이 일어났다.
역사적으로나 법리적으로나 이 판결은 큰 오류를 범하고 있다. 다만 태니 대법원장이 개인적인 부당한 동기나 악마적인 성향에 의해 이런 결론을 주도한 것은 아니다. 최고의 법률가들이 모여 토론하고 내린 판결에서 7 대 2로 이 같은 결론에 도달했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 판결을 멍청한 판결이라고 비난하기는 쉽지만 그와 비슷한 멍청한 오류를 다시는 반복하지 않기 위해 교훈을 얻으려면 진지한 지적 노력이 필요하다. 외견상 훌륭한 입장이 어떻게 이런 어처구니없는 결론에 도달한 것인지 잘 살펴 반성하지 않는다면 비슷한 오류는 역사의 고비마다 반복될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인혁당(인민혁명당) 재건위 사건이 최악의 판결로 꼽힌다. 이 일을 기획한 것은 정치권력과 중앙정보부였고 재판의 형식을 갖춰 사형을 선고한 것은 군법회의였으며 사형을 집행한 것은 법무부였다. 함께 재판받았던 민청학련(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 당사자들은 재판 결과와 상관없이 석방됐고 인혁당 재건위 당사자들에 대해서만 신속하게 사형이 집행됐다. 결국 정치권력이 자신의 뜻대로 사람을 죽이는 것부터 풀어주는 것까지 마음대로 한 것이고 재판은 장식에 불과했다. 당시 대법원 판결(인혁당 재건위 사건과 민청학련 사건이 함께 상고됐다)을 보면 여러 대법관이 소수 의견을 내고 일부 파기환송도 했다. 아마 이 정도도 상당한 용기였을 것이다. 그러나 역사의 법정에서 판사들에게 요구하는 용기는 그 이상이다.
현재 법원에 근무하는 어떤 판사도 이 재판 당시 판사였던 사람은 없다. 대부분은 그 당시 태어나지도 않았다. 나는 그들과 다르고 그들의 잘못은 나와 상관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국민은 기한 없이 연대책임을 묻고 있다. 법원에 반성을 요구하는 역사 정신은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
대통령 긴급조치를 통해 수사 과정에서 법원의 영장 없이 압수, 수색, 구속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정규 법원을 무력화한 채 특별법원을 설치해 민간인까지 군법회의에서 재판하도록 한 것이 비극 발생의 큰 원인이기도 하다. 지금까지도 영장 기각을 놓고 수사기관이 법원을 비난하고 영장발부 요건을 완화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나 정치권에서 특별법원 설치를 주장하는 것을 보며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공격의 대상을 악당으로 단순화한 뒤 강력하고 선명한 공격을 퍼붓는 것은 역사적 과오에 대한 반성을 통해 사회가 발전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선량하고 훌륭한 사람이 어떤 과정을 거쳐 그런 역사적 과오를 저질렀는지 탐구하는 게 비슷한 잘못을 되풀이하는 것을 막는 데 필수적이다. 역사적 과오에 대해서는 그 시대적 배경과 문맥을 고려하고 우리 모두의 잘못이라는 시각에서 자기를 포함해 주체적, 적극적으로 반성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