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김정은 말에 기댄 '비핵화 모래성'
‘남 탓’은 현실을 부정하는 이들의 공통된 속성이다. 지난달 27~28일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미·북 2차 정상회담이 결렬된 것을 둘러싼 평가에서도 이런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정치권 일각에선 타결 실패의 원인을 일본 탓으로 돌리는 모양이다. 일본은 북핵에 관한 한 일체의 양보를 거부하는 동북아시아 유일의 국가다. 하노이 회담 마지막 날 확대회담에 예고 없이 등판하면서 회담 결렬의 원인 제공자로 지목된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보좌관은 일본이 가장 공들여 ‘관리’하는 미국 관료로 알려져 있다. 한 외교 소식통의 말을 빌리면 “지난 1월 스톡홀름에서 미·북 실무협상이 처음 열렸을 때도 외교부가 가장 우려한 것은 일본의 방해였다”고 하니 근거 없는 얘기는 아닐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위기로 몰아넣고 있는 미국 정치를 결렬의 원인으로 꼽는 이도 많다. 트럼프 대통령도 지난달 28일 기자회견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의 대화 첫날 ‘마이클 코언 청문회’를 연 의회를 향해 분노를 감추지 못했다. 트럼프 대통령에게 미 의회가 “차라리 노딜이 낫다”고 격려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미국의 정치 사정이 하노이 회담에 영향을 끼친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이 같은 ‘남탓론(論)’엔 한 가지 중요한 게 빠져 있다. 문재인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의 입을 빌려 줄곧 비핵화 의지를 강조했던 ‘김정은의 말’에 금이 갔다는 점이다. 볼턴 보좌관 등 하노이 협상단에 포함된 미 관료들의 말을 종합해보면 김정은은 트럼프 대통령이 제안한 ‘올인’ 담판을 거부했다. 제재 해제 및 대북 투자를 대가로 완전한 비핵화를 제안했지만 김정은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번 ‘하노이 결렬’에 성과가 있었다면 희망과 교훈 두 가지를 얻었다는 점이다. 우선 미·북이 대화의 끈을 놓지 않았다는 점은 성과다. 두 번째는 더 이상 김정은의 비핵화 의지에만 의존한 협상은 지속 불가능하다는 게 입증됐다는 점이다.

‘하노이 드라마’가 세계에 각인시킨 중요한 교훈은 잊은 채 앞날의 희망만 외치는 것은 모래성 위에 집을 짓는 것과 같다. 문재인 정부가 미·북 중재에 앞서 새겨둬야 할 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