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정·이두온…日 파고드는 '장르소설 한류'
“한국 문학계 흐름을 뒤엎을 장르소설의 커다란 물결이 (일본에) 일고 있다. 이 물결의 중심에 젊은 여성 작가 정유정이 있다. 그는 ‘한국의 스티븐 킹’이라고 불린다.”

‘일본 미스터리 소설의 여왕’으로 불리는 작가 미야베 미유키가 지난 3일자 일본 요미우리신문에 쓴 서평 내용이다. 미야베는 일본 대중소설 작가에게 주는 가장 큰 상인 나오키 상(1998년)을 비롯해 시바 료타로 상(2002년) 등을 휩쓴 대중소설계 거장 중 한 명이다. 우리나라에서도 2006년부터 그의 소설 40여 권이 출간돼 ‘미미(미야베 미유키 앞글자를 따서 붙인 별명) 여사’라는 애칭으로 불린다. 그런 그가 일본 유력 일간지 지면에 이례적으로 한국 추리소설을 극찬해 눈길을 끈 것이다.

일본서 위상 높이는 한국 장르문학

일본문학계가 한국 장르문학에 주목하고 있다. 요미우리신문은 3일자에 ‘한국 문학계의 새로운 물결’이라는 제목의 미야베 서평을 싣고, 정 작가가 쓴 소설 《종의 기원》과 이두온 작가의 《시스터》(일본판 제목: 그 아이는 이제 없어)를 집중 조명했다.

미야베는 정 작가에 대해 “일본 헤이세이(平成)시대(1989년 1월 8일~현재)에 장르소설계에서 여성 작가들이 활약, 시장을 넓히고 작품 세계를 풍부하게 해 온 것과 겹치는 모습이어서 기쁘다”고 했다. 함께 서평에 언급된 추리소설 《시스터》는 지난달 8일 출간돼 한 달 만에 일본 아마존 기타외국문학 분야 판매량 4위에 올랐다. 일본 문학평론가인 센가이 아키유키는 출간 당시 “이 작품이야말로 한류 서스펜스의 진면목”이라고 극찬했다.

미야베, 히가시노 게이고 등 걸출한 장르소설 작가를 보유해 ‘현대 추리소설의 본토’라고 불리는 일본에서 한국 장르소설이 출간은 물론, 언론의 조명까지 받는 일은 흔치 않다. 현재 일본 아마존 기타외국문학 분야 1위에 올라있는 조남주 작가의 《82년생 김지영》처럼 한국에서 큰 인기를 얻은 베스트셀러 가운데 일부가 일본에서 출간되는 게 현실이다.

국내 문학·출판계는 여전히 ‘척박’

이와 달리 국내에선 한국소설과 일본소설 간 역조 현상이 심각하다. 교보문고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에서 판매된 소설 가운데 일본소설 점유율은 31.0%로, 한국소설 점유율(29.9%)을 처음으로 추월했다. 반대로 일본에서 한국 소설의 위상은 미약하다. 일본 아마존 기타외국문학 분야 4위인 《시스터》는 한국문학이 아니라 중국문학 1위에 올라있다. 한국문학 카테고리가 일본 아마존에 아예 없기 때문. 일본 아마존 관계자는 “일본에 번역, 출간되는 한국소설이 워낙 적기 때문에 한국문학 카테고리가 생성되기는 어려울 것 같다”고 전했다.

미야베도 “한국의 문학 출판물이 순수문학 중심이어서 추리나 공상과학(SF) 등 장르소설이 별로 나올 게 없었던 것 같다”고 지적했다.

자국 작가와 콘텐츠를 철저하게 보호하고 관리하는 일본 출판계와 달리 한국은 외국 작품에 의존하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는 게 원인으로 지목된다. 작가와 작품을 개발하는 비용에 비해 에이전시를 통해 이미 시장에서 검증된 외국 도서 판권을 산 뒤 번역, 출간만 하는 게 시간과 비용 면에서 훨씬 저렴하기 때문이다.

익명을 요구한 문학전문 출판사 관계자는 “외국 소설이 점령한 한국 시장에 매력을 못 느낀 국내 창작자들은 역량이 충분해도 소설을 포기하고 방송작가나 다른 분야로 길을 찾는 형국”이라며 “특히 스릴러 같은 장르문학은 그 자리를 대부분 수입서가 채워 우리 독자들은 일본인, 미국인, 프랑스인들이 주인공인 소설을 소비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라고 안타까워했다.

■장르소설

추리소설은 추리를 기초로 사건이 발달·전개되는 소설을 말한다. 미스터리소설은 초자연적 이야기, 공포, 수수께끼 등의 요소가 중요 역할을 하는 작품으로 괴기소설 추리소설 공상과학(SF)소설 등을 포함한다. 장르소설은 여기에 무협, 판타지, 호러, 로맨스 등 ‘대중소설’로 통칭되는 소설 하위 장르를 모두 아우른 가장 넓은 개념이다.

은정진 기자 silv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