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형 실업부조의 밑그림이 그려졌다. 6일 노사정(노동자·사용자·정부)은 고용보험 적용을 받지 못하는 ‘중위소득 50% 이하 저소득 실업자’에게 월 50만원씩 6개월간 지급하기로 합의했다. 한국형 실업부조는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이자, 현 정부 국정과제다. 정책 사각지대에 있는 한계 계층 지원을 늘리는 것은 정부가 할 일이다. 하지만 재원을 어디서 어떻게 마련할지, 대상자를 얼마나 늘릴지 등의 세밀한 밑그림을 짜야 정책 실효성이 생긴다. 이날 발표된 합의안에는 이런 게 빠져 있다. 원칙 없이 ‘퍼주기식 복지’를 밀어붙이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내년 1월 제도를 도입한 뒤 지원 대상을 점차 확대하기로 한 만큼 재원 부담도 눈덩이처럼 불어날 것이라는 우려다.
"저소득 실업자에 50만원씩 6개월 지급"…실업부조, 결국 국민혈세로?
“대상 단계적으로 확대”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산하 사회안전망개선위원회는 이날 전체회의에서 한국형 실업부조 도입, 실업급여 지원 확대, 고용서비스 담당 공무원 증원 등을 담은 ‘고용안전망 강화를 위한 합의문’을 채택했다.

합의안엔 한국형 실업부조의 지원 대상과 기간 등이 구체적으로 제시됐다. 사회안전망개선위는 “기본 중위소득 50% 이하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도입해 운영 성과를 평가한 뒤 단계적으로 확대하기로 했다”며 “지원금액은 최저 생계를 보장하는 수준의 정액 급여로, 수급 기간은 6개월을 원칙으로 한다”고 설명했다. 현행 국민기초생활보장법에 따른 생계급여의 선정기준 및 최저보장 수준은 1인 가구 기준 월 51만2102원이다. 기존 실업급여는 고용보험 가입자가 낸 보험료로 충당하는 데 비해 이 제도는 국민이 낸 세금으로 준다.

이번에 노사정 합의안이 나온 만큼 정부도 제도 도입에 속도를 낼 것이라는 관측이다. 고용노동부는 올초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내년 1월부터 한국형 실업부조를 시행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내부적으로 대상자는 50만 명 안팎이 될 것으로 예상했다.

재원 대책 마련도 없이…

정부는 한국형 실업부조 도입으로 경제적 약자에 대한 사회안전망이 확대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국민 부담이 얼마나 늘어나는지, 구체적인 재원은 어디서 충당할지 등에 대한 설명은 내놓지 못하고 있다. 합의대로 월 51만원을 6개월간 50만 명에게 지원하면 내년에만 1조5000억원 이상이 든다. 고용 분야 한 전문가는 “이런 복지제도는 한번 지원하기 시작하면 매년 지원액과 대상자가 늘어난다”며 “제도를 도입하기 전 재정 부담에 대한 면밀한 분석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국민 부담을 늘리는 복지제도를 노사정이 주된 구성원인 경사노위에서 합의하는 것 자체가 문제라는 지적도 나온다. 사회안전망 확충은 노동시장의 유연성과 함께 고려해야 한다는 게 노동경제학계의 중론이자 선진국 추세다. 유연안정성(flexicurity)이란 용어가 나온 배경이다.

슬쩍 끼워 넣은 공무원 증원

사회안전망개선위는 이번 합의안에 고용서비스를 선진국 수준으로 확충한다는 명분으로 공무원 증원계획도 담았다. 현 정부 들어 계속 늘어나는 복지 프로그램이나 공공부문 인력 증원에도 막대한 비용이 소요되는 상황에서 추가적인 공무원 증원을 예고한 셈이다.

또 기존 고용보험 제도를 내실화해 실업급여를 확대한다는 데에도 합의했다. 현재 실업급여는 최저임금을 기준으로 정해지는데 실업급여 하루 상한액과 하한액은 각각 6만6000원, 6만120원이다. 고용보험 지원을 확대하려면 근로자와 사업주가 부담하는 고용보험료도 오를 수밖에 없다.

■한국형 실업부조

저소득층 구직자에게 생계 보장과 취업 지원을 위한 급여를 주는 제도. 고용보험에 가입하지 못한 근로 빈곤층과 구직활동을 하는 청년, 폐업 위기에 놓인 자영업자 등에게 일정 기간 지원금을 준다.

심은지 기자/최종석 전문위원 summi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