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치.’ 일본 전자상거래업체 라쿠텐의 블록체인 개발팀 이름이다. 한국 정보기술(IT)업계에서 일하던 한국인 소프트웨어 개발자들이 지난해 라쿠텐으로 한꺼번에 옮겨 갔기 때문에 붙었다고 한다.

올 들어서는 국내 1위 인터넷포털 네이버에서 핵심 개발자들이 줄줄이 회사를 떠났다. 일부는 현대자동차로 자리를 옮겼다. 구글코리아는 처음으로 경력 개발자를 채용할 예정이어서 국내 업계에 경계령이 내려졌다.

국내외 업계에 우수한 소프트웨어 개발자를 확보하려는 쟁탈전이 벌어지고 있다. 헤드헌터를 최대한 활용하고, 고액 연봉과 같은 인센티브를 제시하고 있다. 개발자 수요를 공급이 못 따라가 빚어지는 현상이다.
해외업체 가세…개발자 몸값 ‘高高’

IT를 기반으로 한 융복합 산업이 성장하면서 개발자 구인난은 더욱 심해지고 있다. 다른 업종의 업체나 경쟁 업체 간 개발자를 뺏고 빼앗기는 일이 빈번해졌다. 해외 IT 공룡까지 가세했다.

지난 1월 네이버에서는 송창현 최고기술책임자(CTO)가 그만뒀다. 그는 로봇·자율주행 등 네이버의 신산업을 이끌던 핵심 인력이었다. 지난달엔 네이버에서 인공지능(AI) 통·번역 서비스 ‘파파고’를 개발한 김준석 리더가 현대자동차로 자리를 옮겼다.

최근 윤동원 네이버랩스 로보틱스 프로젝트 매니저도 현대차로 갔다. 그는 네이버에서 에어카트(로봇기술을 적용해 누구나 쉽게 물건을 운반할 수 있는 기구)를 개발했다. 세계 최대 전자쇼 ‘CES 2019’에서 호평받은 기술이다.

구글코리아는 7일 서울 삼성동에서 채용 설명회를 연다. 국내 소프트웨어 개발자 4000여 명이 지원했다는 후문이다. 구글은 자체 심사를 통해 200여 명만 초청했다. 채용 분야는 AI, 클라우드 등이다. 최종 채용 인원은 미정이다.

IT업계 관계자는 “구글에서 구글코리아의 주요 역할은 국내 광고수입 관리와 인력 확보인데 대규모 채용 행사를 여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말했다. 유튜브로 중계도 할 예정이다.

구글은 한국 내 개발자를 선점하기 위해 자체 교육 프로그램도 활용하고 있다. 구글코리아는 개발자를 대상으로 하는 AI 교육 프로그램 ‘머신러닝 스터디 잼’의 인원을 향후 5년간 5만 명으로 확대하겠다고 6일 발표했다.

빨간불 켜진 국내 IT기업

국내 IT기업들은 비상이 걸렸다. 네이버와 구글이 개발자들을 빨아들이면 인력난이 심해지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소프트웨어정책연구소에 따르면 AI, 빅데이터, 클라우드, 증강·가상현실 등 주요 IT 분야에서 부족한 국내 개발자는 향후 5년간 3만1833명에 달할 전망이다. A사의 인사담당자는 “급하게 인력을 구하느라 실수로 우리 회사 직원에게 ‘오퍼’를 낸 적도 있다”고 전했다.

고액 연봉을 제시하는 일은 예사다. 블록체인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 관계자는 “메인넷(독립된 블록체인 네트워크) 개발자 연봉은 3억~5억원까지 치솟았다”고 말했다. 블록체인 기술을 개발할 수 있는 인력이 워낙 적기 때문이다. 고액 연봉이 외부에 공개되는 것을 꺼리는 개발자를 위해 비상장 자회사를 활용하는 상장 IT기업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상장사는 연봉 5억원 이상 직원의 이름과 액수를 공개해야 한다. 다른 업체에서 유능한 개발팀을 통째로 데려가는 사례도 있다. 라쿠텐이 그 예다.

직접 인력 육성하기도

인력난은 IT 대기업의 최고경영자(CEO)들도 공개적으로 토로할 정도다. 한성숙 네이버 대표는 지난해 12월 ‘2018 인터넷 기업인의 밤’ 행사에서 “개발자를 구하는 것이 가장 큰 현실적인 어려움”이라며 “페이스북과 유튜브에서 5만 명의 개발자를 확보하겠다고 하면 우리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고민된다”고 말했다. 같은 자리에서 여민수 카카오 공동대표는 “우리 인재만은 뺏어가지 마세요”라고 하소연했다.

음식 배달서비스 앱(응응프로그램) ‘배달의민족’을 운영하는 우아한형제들은 개발자 양성에 직접 나섰다. 지난달 기존 개발자 인턴십 과정인 ‘우아한테크캠프’를 개선한 전문 개발자 양성 교육과정 ‘우아한테크코스’를 발표했다.

우아한테크코스는 8개월간 진행되는 개발자 교육 프로그램이다. 우아한테크코스 이수자가 협업에 곧바로 배치돼 일해도 좋을 정도의 실력을 쌓게 하는 것이 목표다. 우아한형제들은 우아한테크코스를 이끌 책임자로 NHN NEXT 출신인 박재성 이사를 영입했다. NHN NEXT는 네이버가 운영했던 개발자 대상 교육기관이다.

김주완/배태웅/김남영 기자 kjw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