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5분 분량서 북미회담은 '9분 50초'…싱가포르 땐 15분 달해
'美 주장 반박' 심야 기자회견도 쏙 빼…베트남 방문 성과에 치중


"하노이 수뇌회담에서는…논의된 문제해결을 위한 생산적인 대화들을 계속 이어 나가기로 했습니다."

북한 조선중앙TV가 6일 밤 방영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2차 북미정상회담 및 베트남 공식 방문 기록영화의 내레이션 중 일부다.

중앙TV는 75분 분량의 영상물을 내보내면서 2차 북미정상회담이 양국 관계 개선을 위한 중대한 계기가 됐음을 주민들에게 적극적으로 알렸다.
北 기록영화가 담은 북미회담…'결실' 띄우고 '결렬' 통편집
그러나 회담 결렬로 공동성명 채택이 무산된 이번 정상회담 장면은 중앙TV의 고도의 편집기법에도 용두사미로 기록될 수밖에 없었다.

중앙TV는 첫날 단독회담과 만찬과 둘째 날 확대회담까지 트럼프 대통령이 김 위원장에게 농담을 건네는 듯한 장면을 비롯해 김 위원장이 웃음을 터뜨리는 장면 등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내내 부각했다.

확대회담 장면에서는 회담 배석자 외에 미국 측에서 스티브 비건 미 국무부 대북특별대표와 매슈 포틴저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아시아 담당 선임보좌관, 앨리슨 후커 국가안보회의 한반도 보좌관 등 실무진 3명이 뒷줄에 앉은 모습이 화면에 잡혔다.

이에 비해 김혁철 대미특별대표 등 북측 실무진은 영상 어디에도 등장하지 않아 당시 회담장에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앞서 확대회담 정식 배석자도 북미가 각각 2명과 3명으로 '불균형'을 이뤄 통상적인 정상회담 관례에 어긋난다는 분석이 나온 바 있다.

기록영화는 둘째 날 회담 결렬 후 북미 양 정상이 악수하며 헤어지는 장면은 17초 정도만 짧게 비췄다.

특히 이 대목에서 김 위원장 뒤에 서 있던 리용호 외무상의 굳은 표정은 회담 결과에 대한 북측의 실망감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한 손에 수첩과 A4 용지로 된 서류를 들고 있던 김영철 당 부위원장도 어색한 미소를 지은 채 트럼프 대통령과 악수했다.

김 위원장도 웃는 얼굴로 트럼프 대통령과 작별하긴 했지만, 첫날 회담에서 파안대소했던 표정과 비교하면 '씁쓸한 미소'에 가까웠다.

예상치 못한 회담 결과는 이번 기록영화 분량에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1박 2일 간 북미정상회담은 전체 75분 분량 중 9분 50초 분량으로 담겼다.

당일치기였던 지난해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 기록영화는 두 정상이 만나서 회담하고 공동성명을 채택하는 장면 등 15분에 달했던 것과 대조적이다.

이와 함께 결렬 당일 리용호 외무상이 최선희 부상과 함께 트럼프 대통령의 기자회견 내용을 조목조목 반박하며 심야에 전격적으로 진행한 기자회견은 언급 한 줄 없이 '통편집'됐다.

영상이 김 위원장의 동선을 중심으로 편집돼 리 외무상의 기자회견 장면은 제외된 것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김 위원장 없이 시찰에 나선 북한 간부들의 모습은 포함된 점을 고려하면 의도적인 편집으로 해석된다.

아울러 조선중앙통신 등 북한매체는 김 위원장 베트남 출발 당시만 해도 '김정은 동지께서 제2차 조미수뇌상봉과 회담을 위하여 평양을 출발하시였다'라고 기사 제목을 달았지만, 기록영화는 '김정은 동지께서 베트남사회주의공화국을 공식 친선방문하시었다.

주체 108(2019). 2.23∼3.5'로 제목에서 북미회담을 삭제했다.
北 기록영화가 담은 북미회담…'결실' 띄우고 '결렬' 통편집
한편, 북한은 '빈손'으로 끝난 북미정상회담 대신 55년 만에 이뤄진 북한 최고지도자의 베트남 방문에 상대적으로 더욱 의미를 두는 듯한 모습이었다.

김 위원장의 베트남 공식방문 일정은 약 45분 분량으로 상세히 소개됐다.

아울러 김 위원장이 동당역에 도착해 전용차를 이용해 하노이로 향하는 장면에서는 화면이 흑백으로 자연스럽게 전환되며 김일성 주석의 방문 당시 영상으로 이어졌다.

또 앞머리를 일부 내린 김 위원장의 모습은 흡사 할아버지의 하노이 방문 당시 모습을 연상케 해 눈길을 끌었다.

국내 정치뿐 아니라 외교에서도 할아버지 따라 하기를 통해 정치적 정통성을 구하려는 의도가 읽히는 대목이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