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10년 만에 최대 수준의 무역적자를 기록했다. 2017년 취임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른바 ‘무역 불균형’을 해소하겠다며 무역전쟁을 펴고 있는데 되레 무역적자는 늘었다. 경제학자들은 지난해 미국 경기가 좋았던 데 따른 결과라고 설명하고 있다. ‘호황의 역설’인 셈이다. 관세 인상을 앞두고 수입이 늘어난 측면도 있다. 이는 ‘무역전쟁의 역설’이다.
美 무역적자 10년 만에 최대…'트럼프의 전쟁' 제 발등 찍었나
6일(현지시간) 미국 상무부는 지난해 무역적자 규모가 2017년보다 12.5% 늘어난 6210억달러(약 700조원)에 달했다고 발표했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일어난 2008년 이후 최대다. 수출이 증가(6.3%)하긴 했지만 수입이 더 많이 늘어난(7.5%) 결과다.

대부분 적자는 원자재나 농산물, 자동차 등 상품무역 부문에서 발생했다. 상품수지는 8912억달러 적자였다. 반면 관광 교육 컨설팅 등 서비스무역 쪽에서는 2702억달러 흑자를 낸 것으로 집계됐다.

경제학자들이 꼽는 지난해 무역적자가 급증한 이유는 미국 경기다. 트럼프 정부의 감세 정책으로 지난해 미국 경제는 2.9% 성장했다. 호황기에는 개인이나 기업 소비가 늘어나게 마련이다.

케네스 로고프 하버드대 교수는 월스트리트저널에 “미국 경제가 아주 좋았던 게 무역적자 확대의 원인”이라고 했다. 케빈 해싯 백악관 경제고문도 “미국인들은 상대적으로 높은 소득을 올리고 있는 데다, 다른 나라들이 아직 경기 부진에 시달릴 때 호황을 누렸기 때문에 적자 폭이 더 커질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트럼프 대통령으로선 난감한 상황이다. 경기 호황은 자랑할 만하지만, 무역적자에 대해서는 그동안 ‘나쁜 것’이라고 강하게 비판해왔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이 한 해 8000억달러 무역적자를 내는 것은 ‘아주 멍청한’ 무역협정과 정책 때문”이라며 “무역적자는 전 정부 실책의 결과”라고 주장했다. 그는 또 “우리의 일자리와 부(富)가 다른 나라에 가고 있고 그들은 지금까지 우리 지도자들이 얼마나 바보 같았는지 비웃고 있다. 더 이상은 안 된다”고 했다.

그동안 많은 경제학자는 트럼프 대통령의 무역관이 잘못됐다고 꼬집었다. 무역적자는 성장하는 경제에선 별로 문제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돈을 주고 상품과 서비스를 사 온 거래의 결과이기 때문에 일방적으로 한쪽 나라의 부가 다른 나라로 유출되는 과정이 아니기도 하다.

트럼프 대통령의 무역정책이 적자를 심화시킨 부분도 있다. 미국이 중국과 무역분쟁을 벌이면서 중국은 작년 대두(콩) 수입처를 미국에서 브라질로 바꿔버렸다. 이 때문에 작년 중순 미국산 대두 값이 폭락하는 일도 벌어졌다. 작년 미국 대두 수출(171억달러) 규모는 2017년의 80%에 그쳤다. 상품무역 수지가 악화된 원인 중 하나다. 중국산 제품에 고율관세(25%)를 매기겠다고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해 선언한 뒤로 관세를 피하기 위해 수입을 앞당긴 업자들도 있었다.

대규모 무역적자가 트럼프 대통령의 지지 기반을 흔들 수 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파이낸셜타임스는 “무역적자는 트럼프 대통령이 지키지 못한 주장 중 하나가 됐다”며 “미국 공장들은 수입 제품과의 경쟁에서 지고 있다”고 평가했다.

이상은 기자 se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