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장에서 미세먼지 때문에 (라운드를) 취소할 수 없다고 하기도 하고, 또 동반 플레이어들도 크게 신경 안 써서요.”

지난 주말 수도권 골프장을 다녀온 A씨(32)의 말이다. 미세먼지 대란이 1주일을 넘겼지만 대표적 야외 레저스포츠인 골프는 마치 ‘무풍지대’인 듯한 모습이다. 예년보다 따뜻한 날씨 덕분이다. 올 들어 골프장을 찾는 손님이 예년보다 큰 폭으로 늘었다. 당장은 높은 기온이 미세먼지를 누른 셈이다.

골프 예약 거래 국내 1위인 골프예약사이트 엑스골프(XGOLF)에 따르면 지난달 필드 예약은 총 2만4705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만3005건)보다 90% 가까이 늘어났다. 1월에는 1만8504건을 예약한 것으로 조사됐다. 지난해 1월(9087건)보다 두 배 넘게 늘어난 수치다.

미세먼지 공습 속에서 공교롭게도 손님이 늘어난 주된 요인은 포근해진 날씨다. 기상청에 따르면 지난해 12월부터 올해 2월까지 전국 평균 기온은 1.3도로, 평년(0.6도)보다 높았다. 특히 지난달(2.4도)은 평년(1.1도)에 비해 1.3도나 더 따뜻했다. 게다가 눈비가 오는 날도 적었다. 수도권 B골프장 관계자는 “지난해 12월부터 포근하고 건조한 날씨가 이어지면서 골퍼들이 일찍 필드로 나오고 있다”며 “미세먼지가 심각하지만 이로 인해 취소되는 건은 주말의 경우 1~2건에 불과하다”고 전했다.

폭우와 폭설, 혹한 등 최악의 악천후가 아니면 라운드를 취소하지 않는 특유의 ‘관행’도 한몫하고 있다. 경기 북부의 골프장을 찾은 한 40대 아마추어 골퍼는 “미세먼지로 라운드를 취소하자는 얘기는 서로 안 꺼내는 분위기”라며 “오히려 마스크를 쓰고 운동을 하면 산소 공급이 잘 안 돼 건강에 더 안 좋다며 마스크를 안 쓰는 친구들이 많다”고 귀띔했다.

중장기적으로는 골프장도 미세먼지 파도를 피해가지 못할 것이란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포근함은 일시적이지만 미세먼지는 장기적 난제이기 때문이다. 특히 호흡기가 약한 고령층 비중이 높은 국내 골프 인구 구조를 감안할 때 맑은 공기를 찾아 해외로 눈을 돌리는 골퍼가 늘어날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뾰족한 대책은 없다. 이용규 스카이72 홍보실장은 “당장 마스크를 지급하는 등 임시방편을 마련하고 있지만 미세먼지가 골프장에 장기적으로 미칠 영향을 계속해서 관찰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조희찬 기자 etwood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