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핵무기 개발은 6·25전쟁 직후로 거슬러 올라간다. 미국 외교문서에 따르면 김일성은 전쟁 중 “미국이 언제 핵폭탄을 터뜨릴지 모른다”며 불안해했다. 1954년 ‘핵무기 방위’ 조직을 만든 뒤 과학자들을 당시 소련에 보내 핵무기 제조 기술을 배우게 했다. 1962년 평안북도 영변에 원자력연구소를 설립했다. 김일성은 “핵은 우리를 지켜줄 정의의 보검(寶劍)”이라며 “반드시 핵무기를 만들어내라”고 지시했다. 이 말이 유훈이 돼 아들 김정일과 손자 김정은에게 이어졌다.

김정일과 김정은의 핵무기에 대한 시각은 2017년 출간된 《야전열차》에 고스란히 녹아있다. 이 책은 김정일이 2011년 초부터 그해 12월 17일 사망할 때까지 지방 출장 때 사용한 야전열차와 집무실에서 김정은과 주고받은 대화를 기록한 다큐멘터리성 소설이다.

김정일은 “제재와 군사적 위협, 대화 놀음은 미국이 정세 변화에 따라 우리에게 늘 써먹는 주패장(카드)”이라고 했다. 그러자 김정은이 “역사를 보면 핵국가 대 핵국가가 직접 맞붙지는 못했다. 기어이 미국의 야망을 꺾겠다. 미국은 조선 땅에서 전쟁이 터지면 본토도 무사하지 못하다는 것을 각오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김정일이 “주먹이 세면 말씨름을 하지 않아도 된다. 핵무기 보검을 틀어쥐었는데 미국 따위가 감히 뺏을 수 있겠나”라고 하자 김정은은 “핵 억제력만이 우리의 존엄을 지켜줄 것”이라고 맞장구 쳤다.

이라크 후세인 정권과 리비아 카다피 정권 붕괴에 대한 시각도 담겨있다. 김정일은 미국의 비핵화 요구에 대해 “우리를 무장해제시키고 이라크나 리비아처럼 손쉽게 가로타고 앉으려는 흉책”이라고 규정했다. 그러면서 “리비아가 먼저 양보했지만 보상은 받지 못했고, 미국의 농락물이 되고 말았다”고 했다. 북한이 선(先)비핵화-후(後)보상의 ‘리비아식 모델’에 대해 반발하는 배경을 짐작할 수 있다.

북한은 핵을 체제 유지의 ‘보검’으로 여긴다. 온전한 북한 비핵화를 기대하기 힘든 이유다. 하노이 정상회담 이후 미·북 사이에 다시 이상 신호가 나타나고 있다. 북한이 폐기를 약속한 동창리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장 시설을 일부 복구하는 움직임이 포착됐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이에 대해 “맞는다면 매우 매우 실망스러울 것”이라고 했다. 미국은 대북 제재 고삐를 다시 죄고 있다.

그런 상황에서 문재인 정부가 개성공단·금강산 관광 재개 등 남북협력을 “속도감 있게 추진하겠다”고 나서면서 한·미 불화설이 불거지고 있다. 정부는 북한 비핵화가 궁극적 목표라고 밝히면서도 이를 이끌어낼 방법론으로 경제 지원 등을 통한 ‘선(先)관계 개선’을 주장하고 있다. 《야전열차》 내용을 어떻게 이해한 건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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