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리스마를 풍기던 그 회장님은 어디 간 거지?"

지난 6일 도쿄구치소에서 구금된 지 108일 만에 보석으로 풀려난 카를로스 곤(64) 전 닛산자동차 회장이 구치소를 나설 때 입었던 복장이 얘깃거리가 되고 있다.

지난 5일 3번째 보석 신청이 받아들여진 곤 전 회장이 보석금 10억엔(약 100억원)을 현금으로 납부한 것은 하루 만인 6일 정오쯤으로 알려졌다.

곤 전 회장이 곧 풀려날 것으로 알려지면서 도쿄구치소 정문 앞에는 취재진이 장사진을 쳤다.

6일 오후 3시 조금 넘어 차량 지붕에 작업용 사다리가 붙은 스즈키의 경승합차 '에브리'가 구치소 현관에 정차했다.

공사 현장에서 흔히 쓰는 차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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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때문에 200여 명의 취재진은 이 차량에 눈길을 주지 않았다.

공사 관계자가 이용하는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오후 4시가 넘어서자 도요타 고급승용차 한 대가 스즈키 차량 뒤로 다가와 멈춰섰다.

취재진은 곤 전 회장이 이 차를 타고 나갈 것으로 예상하고 카메라의 초점을 맞췄다.

이어 15분쯤 뒤 스즈키 차량에서 내린 군청색 작업복 차림의 여성이 구치소 직원과 함께 종이가방을 들고 안으로 들어갔다.

오후 4시 30분쯤 같은 작업복 차림의 두 명이 제복을 입은 구치소 직원 8명에 둘러싸여 밖으로 나왔다.

그중 한 명은 노란색 반사(反射) 조끼까지 붙은 작업복 차림에 남색 모자를 푹 눌러쓰고 흰색 마스크를 했다.

검은 뿔테 안경을 착용해 얼굴에서 눈 분위만 드러났지만 매서운 눈초리를 한 그 사람이 곤 전 회장임을 알 수 있었다.

한 일본인 카메라 기자는 "여성이 들고 간 종이 가방에 곤 전 회장이 입고 나올 옷이 들어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일본 언론은 이를 곤 전 회장의 '변장(變裝) 출소'라고 묘사하면서 배경 분석에 열을 올리고 있다.

곤 전 회장은 취재진의 허를 또 찔렀다.

허름한 작업 차량 뒤에 주차돼 있던 고급승용차를 타고 구치소를 나갈 것으로 생각했지만 그가 오른 것은 작업 차량이었다.

이 같은 변장 퍼포먼스는 변호인들이 아이디어를 제시하고 곤 전 회장이 흔쾌히 수락해 이뤄진 것이었다고 한다.

변호인단은 사이타마(埼玉)현에 실제로 있는 건축 도장회사에 부탁해 스즈키 차량을 빌렸다.

곤 전 회장이 쓴 모자와 작업복은 역시 사이타마현에 있는 철도차량 설계업체인 일본전장(電裝) 것이라고 한다.

마이니치신문은 차량, 작업복, 모자 등 모든 것을 변호인단이 준비한 것이라며 무슨 이유로 곤 전 회장을 작업 인부 차림으로 변장시켜 출소 장면을 연출했는지 분명치 않다고 전했다.

이와 관련, 히로나카 준이치로 변호인은 "무죄를 호소하기 위해선 당당하게 나오는 것이 좋다는 의견도 있었지만 그런대로 유머러스했다는 지적도 있다"면서 "한 변호사가 아이디어를 내고 곤 전 회장이 변장도 재밌겠다"고 동의해 이뤄진 것이라고 뒷얘기를 전했다.

마이니치는 변호인 측은 보석 후 머물게 될 주거가 언론에 노출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슬그머니 빠져나가는 것을 생각했지만 결과적으로 더 주목받는 결과를 낳았다고 지적했다.

일본 언론이 곤 회장의 변장 출소에 초점을 맞춰 흥미 위주로 보도하는 것에 대해 인터넷 여론은 엇갈리고 있다.

올해 핼러윈 때 곤 전 회장의 작업원 복장이 유행할 것이라며 단순 화젯거리로 접근하는 시각이 있는가 하면 '언론이 변장 얘기만 한다"며 황색 저널리즘을 질타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이런 가운데 변장 아이디어를 낸 것으로 알려진 다카노 다카시(高野隆)변호사는 8일 자신의 블로그에 "곤 전 회장의 명성에 욕을 보인 결과가 됐다"며 사죄하는 글을 올렸다.

한편 변호인단은 무죄를 주장하는 곤 전 회장의 기자회견을 내주 이후 여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곤 전 회장은 2011~2015년 유가증권보고서에 5년간의 연봉 50억엔(약 500억원)을 축소 신고한 혐의(금융상품거래법 위반) 등으로 지난해 11월 19일 도쿄지검 특수부에 의해 전격 체포됐고, 3번째 보석 신청이 도쿄지법에 받아들여져 석방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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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