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 샌더스 인스타그램 캡처
사라 샌더스 인스타그램 캡처
‘2·28 하노이 결렬’의 몇 장면은 앞으로도 두고두고 회자될 것이다. 북한의 협상 전술이 통하지 않은 첫 사례로 기록될 것이란 점에서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통일전선부와 외무성의 ‘브레인’들을 대동하고, 인민에게 가져다 줄 ‘큰 선물’을 기대했지만 결과적으로 자신의 취약점을 고스란히 노출하고 말았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와 미국의 대북 경제제재가 얼마나 위력적인 지를 스스로 입증했다.

북한의 협상술을 표현할 때 가장 빈번하게 등장했던 말은 ‘벼랑끝전술’이다. 협상을 막다른 상황으로 몰고 가 최종 순간에 초강수를 두는 일종의 배수진을 말한다. 북한은 과거 핵실험 와중에 미국과 협상을 벌이면서 이 같은 협상술을 자유자재로 구사했다. 핵보유 상황을 어떻해든 막아야한다는 목표에 집착했던 미국 등 북한의 협상 파트너들은 북한의 배수진에 쉽게 공략당하곤 했다.

하노이 회담은 북한이 핵보유국으로서의 지위를 갖고 사실상 처음으로 미국과 협상을 벌인 자리였다. 지난해 6월 싱가포르 1차 미·북 정상회담은 협상이라기보다는 만남 자체에 중점을 뒀다. 핵이란 막강한 무기를 등에 업은 김정은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의 하노이 담판에서 오히려 벼랑끝에 몰렸다는 점은 상당히 역설적이다. 전문가들은 우선 북한의 오판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을 호락호락하게 봤다는 것이다. 미국의 정치적 상황, 노벨상 운운하며 명예욕에 불타 있는 듯한 트럼프 대통령의 성향, 싱가포르 회담의 선례 등이 김정은을 오만과 오판으로 몰고갔을 것이란 추론이다.

더 중요한 요인으로는 진짜 벼랑끝에 서 있는 북한의 상황이 꼽힌다. 6일(현지시간) CNN이 재구성한 하노이 회담 막판의 장면이 이를 웅변해준다. 회담이 결렬로 끝날 무렵, 최선희 외무성 부상이 김정은의 메모를 들고 미국 협상단을 향해 급히 뛰어왔다는 내용이다. 과거 북한의 협상 전례에 비춰보면 매우 이례적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적어도 남북한 경협의 재개만이라도 보장받고, 평양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절박함을 추론해볼 수 있다.

북한이 벼량끝전술을 구사하지 못한 것은 그들이 실제 벼랑끝에 몰려 있기 때문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2016년에 취해진 유엔 안보리의 경제제재는 북한을 코너로 몰기 시작했다. 2017년 트럼프 행정부 들어선 경제제재에 들어 있던 각종 예외조항(민수용은 예외 등)마저 사라졌다. 평양의 ‘달러 박스’가 바닥을 드러내고 있다는 얘기다.

트럼프 대통령은 8일(현지시간) 하노이 회담 이후를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앞으로 1년이면 결과를 알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하노이 회담 이전까지만해도 구체적인 시간표는 없다고 하던 그가 1년이란 구체적인 시간표를 제시했다는 점에서 꽤 의미심장한 발언이다. 이와 관련, 한 외교 소식통은 “올 12월은 북한이 해외에 송출한 자국 근로자들을 모두 본국으로 송환시켜야하는 유엔 안보리 제재의 데드라인”이라고 말했다. 중국 훈춘, 단둥 등지에 진출해 있는 북한 여공, 러시아 벌목공, 중동 근로자 등이한 해 벌어들이는 돈은 평양의 마지막 남은 달러 수입원으로 평가된다. 다가오는 겨울, 이 마저도 끝이난다.

거꾸로 미국은 하노이 회담으로 뜻하지 않은 성과를 거뒀다. ‘슈퍼 매파’로 불리는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 보좌관이 다시 전면에 등장하고, 비둘기파로 분류되는 국무부의 고위 관료가 7일(현지시간) “남북경협을 유엔 제재 면제 대상으로 할 지는 검토 대상이 아니다”고 말한 것은 이 같은 자신감의 반로라고 볼 수 있다. 이 관료는 “북핵에 대한 단계적 접근법은 고려 대상이 아니다”고도 했다.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가 하노이 회담 직전인 1월31일 스탠퍼드대 강연에서 “단계적·병행적 방식”이란 언급을 한 지 채 두 달도 안 돼 대북 전략을 대폭 수정한 셈이다.

이와 관련, 김천식 전 통일부 차관은 8일 안민정책포럼 초청 조찬 강연에서 “앞으로 미국과 북한은 진짜 오랫 동안 냉각기를 가질 수도 있고, 반대로 정말 빨리 협상을 다시 시작할 수도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협상 재개의 관건은 결국 시간이다. 양측이 각자의 패를 보여준 이상, 누가 오래 버틸 수 있느냐가 승부를 가를 것이다. 이런 점에서 지난달 28일 하노이 회담은 향후 미·북 핵협상을 가늠해 볼 중요한 준거점이 될 것이다. 김정은 체제를 향해 ‘진짜 겨울’이 몰려오고 있다.

박동휘 기자 donghui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