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도 휴식도 공부도 '脫한국'…1월 출국자 291만명 '사상 최대'
취업준비생 홍모씨(33)는 지난해 3개월간 아프리카를 여행했다. 부모님이 “시간을 쪼개 취직 준비를 해도 모자랄 판에 사치를 부리냐”고 반대했지만 여행을 강행했다. 홍씨는 “아무리 노력해도 취업이 안 돼 지치기도 했고 모든 게 지긋지긋해져 충동적으로 떠났다”고 말했다. 그는 “다녀와서 나를 둘러싼 환경이 달라진 건 없지만 뭔가 재충전이 된 느낌”이라고 했다.

최근 서울의 한 지역구 ‘맘카페(지역 엄마들이 모인 인터넷 공간)’에는 ‘미세먼지를 피해 아이를 데리고 한 달간 괌으로 피신한다’는 글이 올라왔다. 이 글에는 ‘정말 부럽다’, ‘한 달 괌 체류비용이 어떻게 되느냐’ 등 댓글이 수십 개 달렸다. 이 카페에는 여행사의 ‘미세먼지 탈출’용 관광상품 정보도 활발히 공유되고 있었다.

해외로 나가는 한국인이 늘고 있다. 내국인 출국자는 작년 한 해 200만 명 이상 늘어난 데 이어 올 1월엔 월별 출국자 사상 최대 기록을 깼다. 올해 총 출국자 수는 인구의 58%인 3000만 명에 달할 전망이다. 지난해 1인당 국민소득이 3만달러를 돌파하는 등 소득 수준이 높아진 데다 저가 여행상품 증가 등 여행 여건이 좋아진 데 따른 것이다. 팍팍해진 삶에 따른 반발 심리도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청년층의 출국이 특히 많이 늘어난 점도 눈에 띈다. 최근엔 사상 최악의 미세먼지 때문에 ‘피신’ 성격으로 한국을 떠나는 사람도 늘고 있다.
여행도 휴식도 공부도 '脫한국'…1월 출국자 291만명 '사상 최대'
출국자 3000만 명 시대

한국관광공사와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 1월 출국자 수는 291만2000명으로 집계됐다. 월 기준으로 작년 1월의 사상 최고 기록(286만7000명)을 갈아치웠다. 출국자 수는 2015년 1931만 명에서 작년 2869만6000명으로 급증했다. 이런 추세 면 올해는 3000만 명을 넘어설 가능성이 높다. 1000만 명에서 2000만 명으로 증가하는 데 6년이 걸렸는데 3년 만에 3000만 명으로 늘어날 것이란 추정이다.

특히 청년들의 해외여행이 급증하고 있다. 20세 미만 출국자 수는 작년 363만 명으로 10년 전보다 2.8배나 늘었다. 같은 기간 전체 출국자는 2.4배 늘어나는 데 그쳤다. 20세 미만 인구가 10년 새 20.9% 감소한 점을 고려하면 청년들의 출국 증가세가 더 두드러진다.

고강섭 한국청년정책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취업난이 갈수록 심해지고 사회에 진출해도 끝없이 이어지는 경쟁에 지친 청년들이 해외여행을 통해 휴식과 재충전을 찾는 것 같다”며 “취업-결혼-출산 등 기존의 사회 구조가 만들어 놓은 틀을 깨려는 움직임도 있다”고 설명했다.

허리띠 졸라매 여행

해외여행객이 늘면서 해외 지출 총액은 늘었지만 1인당 평균 지출 비용은 줄고 있다. 1인당 여행경비는 2008년 179만원이었으나 2013년 164만3000원으로 줄었고 지난해에는 125만6000원으로 급감했다. 과거 고소득층의 전유물로 꼽히던 해외여행이 중산층은 물론 저소득층까지 확대되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저비용항공사가 늘어난 데다 가까운 나라는 국내 여행처럼 쉽게 갔다올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된 점도 있다. 관광공사의 지난해 목적지별 해외여행객 수 통계를 보면 베트남(42.2%) 말레이시아(33.1%) 일본(5.6%) 등의 증가세가 두드러졌다.

반면 미국은 1.2% 증가에 그쳤고 영국(-0.8%) 독일(-2.7%) 호주(-2.8%) 등의 여행객 수는 뒷걸음질쳤다. 유학 비용도 줄었다. 작년 유학지급액은 35억6000만달러로 전년(37억3000만달러)보다 2억달러 가까이 줄었다. 대조적으로 초·중등생의 단기 연수는 증가세다. 고가 여행이나 유학이 줄고 저가 여행을 자주 가는 트렌드로 변화한다는 얘기다.

여행수지 적자 언제까지

해외여행이 늘면서 여행수지 적자는 계속 경상수지의 발목을 잡고 있다. 한은에 따르면 지난 1월 경상수지는 27억7000만달러 흑자로 집계됐다. 2012년 5월부터 시작된 흑자 행진은 81개월째 이어졌다. 하지만 흑자 규모는 작년 4월의 13억6000만달러 이후 9개월 만에 가장 낮은 폭까지 줄었다. 반도체와 대(對)중국 수출이 흔들리면서 상품수지 흑자폭이 줄어든 데다 여행수지 등의 부진으로 서비스수지는 적자를 이어갔다.

1월 상품수지는 56억1000만달러 흑자로 지난해 2월(55억7000만달러) 이후 최저를 기록했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지난해 10월 22.8%였던 수출 증가율은 11월 4.1%로 둔화됐고, 12월과 올 1월엔 마이너스로 돌아섰다.

서비스수지는 36억1000만달러 적자를 기록했다. 작년 1월(44억4000만달러 적자) 이후 가장 컸다. 2014년 12월부터 시작된 적자 행진은 4년1개월째 이어졌다.

세부적으로 보면 여행수지가 18억6000만달러로 가장 적자 폭이 컸다. 가공서비스수지는 8억5000만달러, 지식재산권사용료 수지는 4억9000만달러 적자였다.

서민준/고경봉 기자 kg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