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가사키현의 작은 섬 히라도는 한국인 여행객에겐 낯선 곳이지만 한 해 700만 명이 넘는 관광객이 찾는 관광 명소다. 매화꽃이 만발한 히라도 다자이후텐만궁. 이민희 여행작가
나가사키현의 작은 섬 히라도는 한국인 여행객에겐 낯선 곳이지만 한 해 700만 명이 넘는 관광객이 찾는 관광 명소다. 매화꽃이 만발한 히라도 다자이후텐만궁. 이민희 여행작가
일본 규슈 남단 나가사키현에 있는 작은 섬인 히라도는 한국인 관광객에게는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2017년 무려 714만 명이 넘는 관광객이 찾은 관광 명소다. 일본 본토에서 다리로 연결돼 철도가 다니는 히라도는 일본 최서단역인 히라도구치역이 있는 곳이기도 하다. 히라도는 서구 문명이 들어온 통로가 된 곳이기도 하다. 일본 최초의 빵과 비스킷, 담배에 서양식 맥주까지 문물이 들어왔다. 히라도는 매력적인 자연을 갖춘 곳이기도 하다. 대마도가 한눈에 보이는 ‘천국의 계단’에서 학처럼 우아한 히라도성에 주상절리와 선셋대로, 온천까지 갖추고 있다. 일본의 숨은 비경 히라도로 여름 여행을 떠나보면 어떨까?

서양의 문물이 들어온 관문 히라도

바다가 보이는 히라도의 일본식 료칸.
바다가 보이는 히라도의 일본식 료칸.
히라도는 16세기 인도네시아와 필리핀을 거쳐 북상한 서양 선박들이 태평양과 동중국해의 거친 파도를 피해 일본 본토 쪽으로 항해하면 반드시 거쳐 갈 수밖에 없는 곳이었다. 1550년에 서양선박인 포르투갈 선박이 이곳에 기항했다. 이 배에는 예수회 출신 선교사인 프란시스코 사비에르가 타고 있었다. 일본에서 그리스도교를 최초로 전파한 사람이 바로 사비에르 신부였다. 히라도 항구 언덕 위에는 그를 기리는 프란시스코 사비에르 기념교회가 서 있다.

포르투갈 선박이 다녀간 이후 스페인, 네덜란드, 영국 등 당시 세계를 좌지우지했던 제국들이 히라도를 찾았다. 서양과의 왕래가 잦아지면서 새로운 문명이 홍수처럼 쏟아져 들어왔다.

1550년 히라도에 최초로 발을 디딘 포르투갈 선원들이 먹던 빵(Pn)이 히라도를 통해 일본 전역에 퍼졌고 지금도 최고의 품질을 자랑하는 나가사키산 카스텔라가 전래된 것도 이때였다. 포르투갈 선원들이 식용(상비용)으로 가지고 온 비스킷도 이때 처음 들어왔다.

일본이 세계적인 제과류 강국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무려 470년 전부터 빵과 비스킷, 카스텔라가 전파돼 일본식으로 발전했기 때문이다. 일본 최초의 담배와 맥주가 들어온 것은 1600년께였다. 해상 교통의 요충지인 이곳에는 1609년 네덜란드 상관에 이어 4년 뒤 영국 상관이 세워졌다. 특히 네덜란드의 자취가 강하게 남아 있는데 항구의 북동쪽 입구에 네덜란드 상관이 자리 잡았다. 네덜란드 상관 외벽에 칠해진 페인트도 일본 최초라는 타이틀을 얻었다. 주변에는 관사와 우물, 네덜란드에서 온 선박이 접안했던 일본 최초의 계단식 부두가 있다. 또 포구 안쪽 영국 상관이 있던 히라도시청 앞에는 오란다 다리로 불리는 석교가 있다.

매력적인 자연에 천주교 유적 갖춰

히라도에서 맛볼 수 있는 가이세키 저녁정식.
히라도에서 맛볼 수 있는 가이세키 저녁정식.
사실 히라도는 일본에서도 구석진 곳에 있는 작은 섬이지만 자연 풍경만큼은 일본의 이름 있는 섬보다 빼어나다. 히라도의 대표적인 자연 관광지는 가와치도게라고 불리는 초원이다. 높이 200m 정도의 작은 언덕이지만 정상에 있는 ‘천국의 계단’에 올라서면 서규슈의 경관이 박진감 있게 펼쳐진다. 청명한 날이면 대마도가 뚜렷하게 보인다. 가와치도게에는 소금 장수의 전설이 숨어 있는 작은 돌기둥이 있다.

나가사키와 히라도 섬을 잇는 이키쓰키대교는 길이가 800m 정도로 특히 야경이 아름답다. 이키쓰키대교 근처에 있는 이키쓰키 대어람관음(生月 大魚籃觀音)상은 높이가 무려 18m나 되는 거대한 불상이다. 가네코 이와조라는 이키쓰키 출신 농림수산상이 고향 어민의 안전을 기원하기 위해 만들었다고 한다. 시오다와라 주상절리도 볼 만하다. 마치 제주도의 서귀포 앞바다와 비슷한 기둥 모양의 주성절리가 연이어 펼쳐져 있다. 바다로 이어지는 선셋도로는 일몰이 아름다운 곳으로 도요타를 비롯한 일본 자동차의 CF 촬영 장소로 유명하다.

섬 끝에는 100m 절벽 위에 무인등대가 세워져 있다. 등대는 일종의 전망대 역할까지 담당한다. 등대 위로 올라가면 멀리 서해안의 모습이 감동적으로 펼쳐진다.

로마네스코식으로 지어진 다비라 성당도 꼭 봐야 할 관광지다. 다비라 천주당은 세계문화유산 후보 건축물로 붉은 벽돌이 인상적이다. 정작 성당을 지은 건축가 데스카와 요스케시는 한평생 불교신자로 살았다고 한다. 성당 위에 우뚝 솟은 종루(鐘樓) 안에는 1931년 프랑스에서 가지고 온 ‘안젤루스 종’이 있는데, 오전 6시와 낮 12시, 오후 6시에 종이 울린다. 성당을 건축하던 중 자금이 부족해져 벽돌과 벽돌 사이를 연결하는 접착제(석회)를 구입할 수 없게 되자 신자들은 조개껍데기를 불에 구워서 석회를 만들어 충당했다고 한다.

한반도와 다양한 인연으로 얽혀 있어

히라도는 한반도와 가까워서 다양한 인연을 맺었다. 히라도는 왜구의 본산지이기도 했다. 기록에 따르면 일본 최초의 왜구가 히라도에서 신라 해안을 공격했다고 한다. 히라도는 1541년 13세에 히라도 영주가 된 마쓰라 다카노부가 중국 해적의 두목을 히라도에 초청하면서 사무역의 길을 열었고 이를 토대로 왜구의 본거지가 됐다.

히라도는 임진왜란 때도 침략의 교두보 역할을 했다. 마쓰라 시게노부 히라도 번주는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때, 700정의 조총으로 무장하고 각각 3000명의 군인을 이끌고 임진왜란 제1군으로 출진했다. 그는 전쟁에서 가장 마지막에 퇴각하며 조선인들을 끌고왔다. 그 가운데 경남 진해의 도공도 있었다. 이들은 히라도에서 가마를 열고 도자기를 생산했는데 처음 만든 가마터와 무덤, 근래 세운 고려비 등을 볼 수 있다. 히라도에 끌려온 진해 웅천 출신의 사기장 거관을 비롯한 도공들은 후에 사세보시 미카와치로 옮겨 가마를 열었다. 지금도 이곳에는 조선 도공의 후손들이 가마를 운영하고 있다. 히라도로 가는 여행상품은 여행박사를 비롯해 KRT, 지구투어, 코레일투어, 아름여행사, 퍼시즌여행사, 보군여행사, 해밀여행사 등에서 판매한다.

김하민 여행작가 ufo2044@gmail.com

취재협조 발해투어, 한국대표여행사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