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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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화폐의 해외 송금을 허용해달라”며 가장 처음 ‘규제 샌드박스’를 신청한 블록체인 기반 핀테크업체 ‘모인’의 요청이 기획재정부와 법무부 등의 반발로 무산될 가능성이 커졌다. 당초 정부는 ‘규제 샌드박스 신청 1호’라는 상징성 때문에 적극 검토했지만 외환변동성에 취약한 국내 경제여건을 감안할때 부작용이 클 수 있다는 여러 경제부처의 지적으로 처리에 난색을 보이고 있는 상황이다.

11일 정부 관계자에 따르면 기재부와 법무부는 지난 1월 모인이 신청한 규제 샌드박스 관련 정부 협의 과정에서 “가상화폐를 통한 해외송금업무를 허용해줄 경우 ‘불법 외환거래(환치기)’를 조장할 우려가 있다”는 의견을 제시한 것으로 나타났다. 규제샌드박스란 신산업 신기술 분야에서 새로운 제품, 서비스를 내놓을 때 기존 법에 제한을 받을 경우 일정 기간 동안 기존의 규제를 면제해주거나 유예시켜주는 제도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이 안건에 대해 심의한 결과 부처간 이견이 많아 다음달 시행 예정인 금융위의 ‘금융 규제 샌드박스’에서 다시 논의키로 했다고 지난 6일 발표했다. 여러가지 제도적 한계에 부딪히자 사실상 공을 금융위에 넘긴 것으로 금융권은 해석하고 있다. 또 모인이 신청한 5가지 규제 샌드박스 요청 가운데 4건은 샌드박스 요건에 적합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 관계자는 “모인의 5가지 요청 가운데 ‘가상화폐의 해외송금허용’만이 심의 대상”이라며 “나머지는 신기술과 무관한 단순 규제 개선 과제이기 때문에 규제 샌드박스 신청 대상이 아니다”고 말했다.

◆모인 “해외송금수수료 대폭 절감”

모인은 지난 1월 17일 과기정통부의 정보통신기술(ICT) 관련 규제 샌드박스 시행일 첫날 가장 먼저 5건을 접수했다. △3만 달러(약 3300만원)로 제한된 해외송금액 완화 △외화 수취시 고객 절차 간소화 △거래내역 보고절차 간소화 △외화송금 해외업체 국내 등록 △가상화폐의 해외송금 허용 등이다.

작년 1월 기재부로부터 소액해외송금업 면허를 받은 스타트업인 모인은 전세계 블록체인 네트워크인 스텔라를 기반으로한 가상화폐 해외송금 시스템으로 기존 은행보다 대폭 저렴하게 송금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의지를 정부에 나타냈다. 한국의 A가 모인을 통해 미국의 B에게 송금을 요청하면 A와 B는 현금을 보내고 받지만 그 과정에서 핀테크 업체끼리 가상화폐로 주고 받는 구조다. 모인측은 ‘송금은행→송금망(스위프트)→수취은행’ 등을 거치며 송금액의 4~6%를 수수료로 내야하는 기존 제도권 송금시스템과 달리, 스위프트망을 거치지 않고 블록체인을 통해 가상통화로 송금하기 때문에 송금수수료가 1~2%수준으로 저렴해진다고 주장했다. 블록체인 기술을 통해 은행권으로 흐르는 송금수수료를 소비자에게 되돌려주겠다는 취지다. 국내에서 연간 처리하는 해외송금시장 규모는 14조원에 달한다.

◆외환시장 교란, 테러자금 및 금융범죄에 활용될 가능성

정부와 법조계 관계자는 모인의 방안이 현실화될 가능성은 낮다고 전망했다. 가상화폐에 대한 법적 지위가 불명확하기 때문이다. 가상화폐는 한국은행법상 법정통화가 아니며 전자금융거래법상 전자화폐도 아니다. 자본시장법상 금융투자상품에도 해당되지 않고 특정금융거래정보보고법상 금융거래정보에도 해당되지 않는 등 규제체계가 갖춰지지 않았다.

당장 모인의 사업구조가 현실화된다면 외국환거래법 위반이다. 정순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교수는 “모인이 주장하는 방식을 정부가 받아들인다면 우리나라 지급결제제도의 대수술이 필요하다”며 “달러화와 원화의 가치를 고정하지 않은 상태에서 송금시 발생하는 가상화폐의 가치변동을 어떻게 처리하느냐가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는 “만약 이 규제를 푼다면 외국환거래법이 있는 나라에선 유일한 사례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기재부는 주요 20개국(G20)에서도 아직 가상화폐나 이를 통한 해외송금에 대한 어떠한 합의도 없는 상태에서 섣불리 규제를 풀면 부작용이 클 것으로 우려했다. 외환 통계에 잡히지 않는 다는 게 가장 큰 문제다. 기재부 관계자는 “각국 정부는 은행을 통해 외환에 대한 보고와 확인 의무를 부과하고 있고, 국제적으로도 공인된 송금망(스위프트)를 통해 외환을 관리하고 있다”며 “가상화폐로 해외송금을 하면 정부의 외환 모니터링에서 벗어나게 되는 문제가 생긴다”고 말했다. 해외 블록체인업체나 국내 가상화폐취급업체는 정부가 요청해도 해외송금 내역을 보고할 의무가 없다. 소액에 대한 해외송금만 허용해준다고 가정해도 모인을 시작으로 해외송금업무를 영위하는 가상화폐업체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길경우 외환시장을 교란할 수 있다는 게 기재부의 우려다. 이 관계자는 “가상화폐는 자금세탁방지법 적용도 받지 않아 테러자금이나 금융범죄에 활용될 수 있고”고 지적했다.

법무부는 투기수요가 촉발되거나 이를 통해 음성적 마약거래 등에 악용될 우려가 있다고 우려했다. 최근들어 대부분 마약거래는 IP추적이 불가능한 다크웹이나 가상화폐로 거래되고 있는 상황이다. 법무부 관계자는 “규제샌드박스에서 허가가 된다는 의미는 관련 법규를 고쳐야한다는 의미”라며 “현행 법상 대외지급수단은 오로지 달러화만 가능한데, 여기에 가상화폐를 넣자는 것은 달러와 가상화폐를 동등한 지위에 두자는 얘기”라고 말했다. 모인에 허가를 한다면 외국환거래법 자금세탁방지법 등 고쳐야할 법이 한두개가 아니라는 설명이다. 정부가 파악한바로도 선진국 가운데 어느 정부도 아직 가상화폐를 통한 해외송금에 적극 나서는 곳은 없는 상태다. 법무부에 따르면 영국 금융당국은 한 민간기업에 대해 가상화폐를 통해 6개월간(2016년) 남아프리카공화국에 송금하는 시험을 허락했지만 안전성에 검증에 실패해 이후 정식 허가를 내지 않고 있다. 최근 화제가 되고 있는 미국 JP모건과 일본 미쓰비시UFJ간 가상화폐를 통한 금융거래도 ‘송금’이 아닌 ‘정산’목적이라고 법무부 관계자는 설명했다.

◆부처간 온도차. 부처간 떠넘기기 재연 우려

금융권에선 모인의 규제 샌드박스 신청이 기재부와 법무부의 ‘아킬레스건’을 건드려 더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분석했다. 기재부는 1997년 외환위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등을 계기로 외환시장에 대한 철저한 통제와 모니터링에 정책에 주안점을 두고 있다. 법무부는 박상기 장관이 지난해 초 ‘가상화폐 거래소 폐쇄’발언으로 청년층의 반발을 사 낙마할 위기를 겪기도 했다.

모인의 규제 샌드박스 신청이 자칫 부처간 ‘떠넘기기’식으로 변질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외국환거래법은 기재부가, 블록체인 기술은 과기정통부가, 금융 규제는 금융위가 담당하는 구조다. 과기정통부는 지난 1~2월 심사에서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금융위에 이번 안건을 넘긴 상태다. 하지만 과기정통부는 기재부, 법무부와 달리 모인의 규제 샌드박스 신청 취지에 맞게 규제를 풀어야한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과기정통부 관계자는 “신기술서비스가 나왔을때 국민의 생명이나 안정, 개인정보보호에 지장이 없다면 제한된 범위내에서 개선을 검토하는 게 규제샌드박스의 취지”라고 말했다. 한 정부 관계자는 “문재인 정부들어 ‘규제샌드박스 1호 신청기업’이라는 상징성 때문에 정부 각부처는 이 안건을 배제시키지 못하고 눈치만 보고 있다”고 말했다.

안대규 기자 powerzani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