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계 "사회안전망 구축이 우선"…임금격차 해소 방식도 이견
'노동 유연화' 꺼내든 홍영표에 노동계 우려…"편향성 드러내"
더불어민주당 홍영표 원내대표가 11일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노동시장 구조개혁'을 내건 데 대해 노동계에서 우려의 시선이 적지 않다.

경기 악화 상황에 밀려 '우클릭' 행보를 거듭해온 정부 여당이 본격적으로 '노동 유연화'에 나서는 신호가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은 이날 홍 대표의 연설에 대해 논평을 내고 "소득주도성장 표현이 단 한 차례도 등장하지 않은 대신 혁신성장과 공정경제로 포용국가를 완성할 수 있다는 논리와, 양극화 문제 해결을 위한다며 노동시장 구조개혁을 주문하는 모습으로 오만한 편향성을 드러냈다"고 비판했다.

특히, 노동계는 홍 대표가 덴마크 사례를 들며 노동시장 유연성 강화를 제안한 점에 주목하고 있다.

홍 대표는 "덴마크는 기업의 인력 구조조정을 쉽게 허용한다"며 "근속연수가 길다고 해서 고용안정성이 보장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덴마크에서는 직장을 잃어도 재직 당시 소득의 70%에 달하는 실업급여를 최대 2년 동안 받고 안정적인 구직활동 지원도 받는다는 점을 전제로 한 발언이지만, 노동 유연화에 방점이 찍힌 것으로 노동계는 보고 있다.

그러나 한국은 노동 유연화를 거론하기에는 덴마크를 비롯한 유럽 선진국보다 사회안전망이 턱없이 취약하다는 게 노동계의 입장이다.

탄탄한 사회안전망이 구축돼 있으면 실업자가 생계 보장을 받으며 안정적으로 전직 훈련 등 재취업 준비를 할 수 있지만, 사회안전망이 취약하면 실업자는 당면한 생계유지를 위해 전직 준비 없이 질 낮은 일자리로 이동하는 악순환에 빠질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에서는 노동 유연화보다는 사회안전망 구축이 우선이라고 노동계가 주장하는 이유다.

홍 대표도 실업자를 위한 사회안전망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현재 9조원 수준인 실업급여를 26조원으로 대폭 확대할 것을 제안하기도 했다.
'노동 유연화' 꺼내든 홍영표에 노동계 우려…"편향성 드러내"
그러나 그는 업무량 증감에 따른 탄력적 인력 운용과 경기 변동에 따라 불가피하게 발생하는 인력 구조조정의 필요성을 거론하며 노동 유연화를 거듭 강조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임금 격차 해소를 위해 대기업과 공공 부문 정규직이 3∼5년 동안 임금 인상을 자제해야 한다는 홍 대표의 제안도 논란을 낳고 있다.

노동계도 국내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임금 격차가 심각하다는 데는 동의하지만, 근본 원인은 재벌 중심의 경제구조에 있다고 본다.

사회가 창출하는 가치를 재벌 대기업이 독점적으로 흡수하는 경제구조를 깨지 않는 한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격차를 해소할 수 없다는 것이다.

대기업을 중심으로 조직된 강한 노조가 상대적으로 높은 수준의 임금 인상을 끌어낸 것도 사실이지만, 이는 기업별 교섭 중심의 노사관계에 따른 것으로, 산별 교섭 중심으로 전환함으로써 문제를 상당 부분 해결할 수 있다고 노동계는 주장한다.

대통령 직속 사회적 대화 기구인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가 발족할 예정인 양극화 해소 위원회는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임금 격차 해소를 위해 이 같은 의제를 본격적으로 논의할 계획이다.

경사노위는 양극화 해소 위원회 발족 준비를 마쳤지만, 청년·여성·비정규직 대표 3명의 본위원회 불참 '보이콧'으로 발이 묶인 상태다.

기본급이 적은 기형적 임금체계를 고치고 호봉급 비중을 줄이며 직무급을 확대해야 한다는 홍 대표의 주장에 대해서는 노동계도 원론적으로는 동의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

직무급은 호봉급과는 달리 직무를 수행하는 사람이 누구냐와는 상관없이 직무 가치에 따라 기본급을 결정하는 임금체계로,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에 보다 부합한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러나 개별 사업장에서 호봉급을 어떻게 직무급으로 전환할 것이냐는 문제는 노·사 양측의 치열한 논란을 낳을 수 있다.

민주노총은 홍 대표의 연설에 대해 "정부와 여당이, 국회가 어떤 안전장치를 마련했고 정부가 이를 얼마만큼 실행에 옮겼으며 재벌 대기업 문제를 얼마나 고쳤다는 내용은 없고 하나같이 노동자와 시민이 무엇을 양보해야 한다는 주장뿐"이라고 평가절하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