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채가 17조원에 달하는 대표적인 ‘부실 공기업’ 한국석유공사가 고강도 구조조정안을 마련했다. 이대로라면 ‘공기업 첫 파산’을 피해가기 어려운 상황에 봉착할 것이라 판단에서다. 이 회사의 작년 말 기준 부채비율은 2287%다. 비핵심 자산은 물론 우량 자회사까지 매각하고 인력 구조조정에도 적극 나서기로 했다. 민간 자원개발 전문가 출신인 양수영 사장(62)이 취임한 지 1년 만이다.
부채비율 2287%…석유公, 우량자산 판다
우량 자산 팔고 인력 줄이고

양 사장은 11일 세종시에서 기자간담회를 열어 이 같은 내용의 ‘비상경영계획’을 발표했다. 우선 영국 다나페트롤리엄, 미국 이글포드 등 지금도 수익을 내고 있는 ‘알짜’ 우량 자회사의 지분을 연내 30~40%씩 매각해 8000억~9000억원을 조달하기로 했다. 또 나머지 자산을 패키지로 묶어 총 2조4000억원의 민간 자본을 유치한다는 목표다. 석유공사 관계자는 “우량 자산만 별도로 묶은 클린 컴퍼니를 출범시킨 뒤 추후 증시에 상장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동시에 인력 구조조정을 추진 중이다. 부장(팀장) 이상급 간부 10%(42명)를 감축하고 해외인력 23%(286명)를 줄이기로 했다. 장기 근속자의 명예퇴직도 유도할 계획이다. 이 회사의 전체 인력은 작년 말 기준 1468명이다.

본사 예산은 일괄적으로 30% 감축한다. 작년(5% 감축) 대비 6배 확대했다. 스스로 ‘비상경영 위원장’을 맡은 양 사장은 2년째 임금 50%를 자진 반납하고 있다. 실수령액이 월 450만원 정도라고 한다. 양 사장은 “2008년 유가 급등기에 급하게 진행한 해외투자 사업의 손실이 눈덩이처럼 커진 게 부실의 원인”이라며 “비상계획이 차질 없이 진행되면 부채비율이 연내 1200%대로 낮아질 것”이라고 기대했다.

1~3급 간부들, 구조조정에 반발

양 사장의 개혁이 성공할지는 미지수다. 우선 간부들이 조직적으로 반발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구조조정의 첫 대상이 됐다는 이유에서다. 석유공사 1~3급 간부 40여 명은 최근 ‘민주노조’를 결성한 뒤 울산 중구청에 노조 신고 절차를 마쳤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가입도 추진 중이다. 양 사장은 “회사 부실화의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간부들이 노조를 만들어 집단 반발할 것이라곤 상상하지 못했다”며 “공기업의 철밥통 문화에 크게 실망했다”고 말했다.

국가적으로 해외 자원개발 프로젝트가 사실상 중단된 데 대해서도 안타까워했다. 양 사장은 “해외 자원 개발에 성공하려면 최소 7~8년은 꾸준히 투자하고 기다려야 하는데 지금은 시작 자체가 쉽지 않은 분위기”라며 “회사가 어느 정도 정상화되면 조금씩이라도 자원개발을 재개하겠다”고 말했다.

양 사장은 대우인터내셔널(현 포스코대우)에 근무하던 2000년대 초 주변 반대를 뚫고 미얀마 가스전 사업을 주도했다. 이 가스전은 매년 3000억원 이상 수익을 안겨주는 국내 최대 해외 자원 개발 성공 사례다.

조재길 기자 roa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