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정부가 자국 항공사들에 보잉 737 맥스8 기종 항공기 운항을 일시 중단하라고 지시했다. 에티오피아에서 10일(현지시간) 추락해 탑승자 전원의 목숨을 앗아간 항공기 기종이다. 지금까지 이 기종을 가장 많이 사들인 중국이 빠르게 사용 중단 명령을 내리면서 미국 보잉사의 실적이 타격을 받을 전망이다. 미·중 무역전쟁 와중에 양국 사이에 또 다른 갈등의 불씨로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美 보잉 항공기 추락하자…96대 보유한 中 "모두 운항 중단"
중국 민용항공국은 11일 웹사이트를 통해 자국 항공사들이 이날 오후 6시까지 안전성이 의심되는 보잉 737 맥스8 기종 운항을 잠정 중단하도록 조치했다고 밝혔다. 해당 기종은 지난해 10월 인도네시아에서 추락사고로 탑승자 전원이 사망한 후 5개월도 되지 않아 비슷한 사고를 냈다. 중국 항공사들은 웹사이트에 공지가 올라오기 전인 10일 저녁부터 운항을 중단했다.

보잉사는 큰 타격을 입게 됐다. 이번에 문제가 된 보잉 737 맥스8은 이 회사가 2017년 5월 처음 선보였다. 현재까지 350대가량이 고객사에 인도 완료됐고, 이 가운데 27%인 96대가 중국에서 운항하고 있다. 이미 16대를 보유하고 있는 중국남방항공은 34대를 더 주문해 둔 상황이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1월 말 기준 보잉사가 주문을 받고 아직 인도하지 않은 737 맥스 계열의 비행기는 모두 4661대에 이른다. 보잉의 지난해 매출(1011억달러) 가운데 이 기종의 매출(약 300억달러) 비중은 30%에 달한다. 블룸버그통신은 “중국이 보잉 737 맥스8 운항을 전면 중단하면 보잉은 큰 손해를 보게 될 것”이라고 했다.

중국이 자국 항공산업을 위해 이런 조치를 취했다는 관측도 있다. 미국 뉴욕타임스는 “중국이 이번 기회를 통해 자국 항공기인 코맥 C919를 세계에 홍보하려 한다”고 분석했다. 중국 정부는 보잉, 에어버스와 경쟁하기 위해 자체 기술로 항공기를 개발하고 있다. 하지만 그동안 중국 외에서 거의 팔리지 않는 등 부진한 성적을 내고 있다.

중국의 이번 대응은 향후 미국과의 무역협상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분석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미국산 항공기 수출 확대를 주요 국정과제로 선정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하노이에서 열린 북·미 정상회담 당시 베트남 현지 항공사를 대상으로 737 맥스8 기종을 판매하기 위해 직접 나서기도 했다. 당시 베트남 비엣젯이 해당 기종 100대를 127억달러(약 14조4000억원)에 구매하기로 했다.

중국에 이어 인도네시아와 에티오피아도 이날 737 맥스8 항공기 운항을 전면 중단하고 특별 점검에 들어갔다. 인도네시아에서는 라이언에어가 10대, 가루다항공이 1대를 보유하고 있다. 에티오피아항공은 총 5대 보유분 중 나머지 4대의 운항을 중단했다.

한편 케냐 나이로비로 향하던 에티오피아항공 737 맥스8 여객기는 지난 10일 아디스아바바공항에서 이륙한 지 6분 만에 떨어졌다. 탑승자 157명 전원이 모두 숨졌다. 지난해 10월 말 인도네시아에서도 라이언에어 소속 동일기종 비행기가 이륙 13분 만에 추락해 탑승자 189명 전원이 사망했다.

현재로선 두 추락사고의 연관성이 파악되지 않고 있지만 이륙한 뒤 얼마 안 돼 사고가 발생하는 등 여러 유사성이 발견됐다. 인도네시아 추락 사고는 새로 설치된 실속(失速) 방지 장치 센서 오작동이 사고 원인으로 지목됐다. 보잉사는 고객들에게 특별히 새로운 지침을 전달할 계획이 없으며 사고 현장에 기술팀을 파견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정연일 기자 nei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