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WALL STREET JOURNAL 칼럼] 표류하는 미국 외교 정책
세계 정치에서 ‘미국 여론이 적극적이고 전략적인 미 외교정책을 계속 지지할까’보다 더 중요한 의문은 없다. 냉전 때부터 수년 전까지 미국 외교정책이 대중의 지지를 받고 있다는 사실을 의심할 이유는 별로 없었다. 미국인은 종종 외교의 우선순위를 두고 격렬하게 토론하긴 했지만, 공화·민주 양당에는 미국의 국익을 지키기 위해 지속적인 관여가 필요하다는 폭넓은 공감대가 있었다.

그 공감대가 지금 흔들리고 있다. 미국이 약속을 지킬지 알 수 없다는 의문이 고개를 들면서 세계 각국 외교부와 국방부는 밤늦도록 야근하며 궁리를 거듭하는 처지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지난주 중국이 필리핀이나 남중국해 영토를 공격하면 미·필리핀 상호방위조약 제4조가 즉각 발동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폼페이오가 자국을 대표해 기재한 수표를 과연 미국 국민이 보증할까?

美여론, 슈퍼파워 원하지 않아

가장 가능한 대답은 ‘아마도 그럴 것 같다’일 것이다. 시카고카운슬이 최근 진행한 여론조사에선 응답자의 70%가 미국이 세계정세에 적극 참여하기를 원한다고 답했다. 반면 지난해 퓨리서치센터 조사에서 중국의 파워를 제한하는 게 미국의 중요한 장기 외교 과제라고 답한 비율은 불과 32%였다. 국방 문제고 당파적 성격이 강한 문제라면 모순적인 사고방식이 더욱 두드러진다. 민주당 지지자의 52%가 러시아의 힘을 억제하는 것이 국가의 최우선 과제라고 보면서도 이들 지지자의 대부분은 국방비를 삭감해야 한다고 했다.

여론조사 결과는 미국이 세계에서 차지하는 위상과 관련해 젊은 사람들이 냉전시대의 사고방식과 점점 더 멀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20~30대 유권자 중 미국이 국제사회의 인도적 개입을 지원하는 특별한 나라라고 여기거나 미국은 러시아 중국 북한 이란 같은 나라의 힘을 억제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비율은 40대 이상 미국인에 비해 훨씬 적다.

국제공조주의자들이 우려해야 할 또 다른 경향은 외교정책에 엘리트와 비엘리트의 견해차가 깊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국민 중 상당수는 특정 문제에 관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비판하는 엘리트층에 대한 지지로 결속력을 보이고 있다. 자유무역의 중요성이나 동맹국과의 관계 개선 필요성, 이민의 가치 같은 문제다. 그런데 미국의 관여 범위와 관련해선 엘리트층과 일반 유권자 간 큰 격차가 존재한다.

美 외교방향 여전히 수수께끼

유라시아그룹의 조사는 이런 첨예한 대립의 일부를 보여준다. 이에 따르면 전문가의 47%는 “미국의 리더십은 세계 안정, 나아가 미국의 평화와 번영을 위해 필요하다”는 생각에 공감한다고 답했다. 하지만 일반 시민은 9.5%만이 이 의견에 공감했다. 엘리트와 일반 시민 사이에 이 정도 격차가 있다면 유권자에 의해 선출된 관료들은 조사 결과를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미국의 우방국과 동맹국에 수수께끼가 남아 있다. 미국의 포괄적 전략이 앞으로 어디로 향할 것인가. 전략적 공감대가 부족하고 당파성에 따라 분리된 국가가 과연 신뢰할 수 있는 파트너가 될 수 있을까. 일본 인도 사우디아라비아 독일 영국 심지어 이스라엘 정부 내에서도 이런 질문이 떠오르고 있다. 이 궁금증은 트럼프 대통령이 백악관을 떠난 뒤에도 계속될 것이다.

정리=오춘호 선임기자 ohchoon@hankyung.com

이 글은 월터 러셀 미드 미국 바드대 교수·허드슨연구소 연구원이 ‘Allies Worry Over U.S. Public Opinion’이라는 제목으로 월스트리트저널에 기고한 내용을 정리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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