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토퍼 힐 "영변 폐기했다면 비핵화 진행 신호 됐을 것
"제재는 다시 부과될 수 있다는 것 북한도 알아"
前6자회담 美수석대표의 조언…"트럼프, 北 영변카드 받았어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의 2차 정상회담 당시 영변 핵 시설 폐기 카드를 꺼내 든 북측의 제안을 수용했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조지 W 부시 행정부 시절 6자 회담 미국 측 수석대표를 지낸 크리스토퍼 힐 전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는 10일(현지시간) 의회 전문매체 '더힐'에 기고한 '트럼프를 위한 딜:북의 제안을 수용하고 그것을 토대로 하라'라는 기고문에서 이같이 제언했다.

트럼프 행정부가 단계적 해법에 기대었다 실패한 전임 행정부들의 전철을 밟지 않겠다는 인식에 따라 '올 오어 낫싱'식 일괄타결에 매달리다 낭패를 볼 수 있다는 것이다.

힐 전 차관보는 이날 기고문에서 "여러 가지 의견이 있을 수 있고, 영변의 노후화된 시설 해체로 북한의 핵 시설 전체가 해결되는 건 아니라는 것도 분명하다"며 "영변 핵시설 폐기가 핵분열성 물질의 포기나 무시무시한 신형 미사일 (개발)에 제한을 가하지는 못할 것"이라고 전제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노후화하긴 했지만, 영변은 북한이 보유하고 있는 유일한 플루토늄 생산시설이며, 플루토늄은 북한 내 핵분열성 물질 비축량의 주요 부분을 차지해왔다"며 '민수경제와 인민 생활에 지장을 주는 항목'의 제재 해제 시 '플루토늄뿐 아니라 우라늄을 포함한 영변 내 모든 핵물질 생산시설을 미국 전문가들의 입회하에 영구적으로 완전히 폐기하겠다는 리용호 북한 외무상의 기자회견 내용을 환기했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28일 2차 북미정상회담 결렬 직후 북측이 영변 핵시설 폐기 의사를 밝히며 전면적 제재해제를 요구했으나 제재를 풀려면 '플러스알파'(+α)가 더 필요하다며 북측의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밝힌 바 있다.

힐 전 차관보는 트럼프 대통령과 그 팀은 북한이 제재완화를 요구하며 영변 핵시설 폐기의 값어치를 과다평가한 것으로 결론 내린 것으로 보인다며 "그러나 제재는, 유엔 제재의 경우 조차도 북한이 추가 비핵화 조치를 망설인다면 다시 부과될 수 있다.

북한도 이 사실을 잘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이 제재를 풀어줄 경우 수십억 달러가 북한에 유입돼 영변 핵 시설을 재건하거나 이를 대체하는 다른 시설의 건설 자금으로 쓰일 수 있다는 참모들의 논리에 설득당한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영변 핵시설을 폐기하는 '부분적 협상'이 트럼프 대통령이 선호하는 '일괄타결'이 아닌 그 이전 행정부들의 단계적 협상 타결과 비슷하게 보일 것이라는 점은 분명하다"면서도 "미국과 국제 전문가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주요 시설을 폐기하는 것은 북한의 비핵화가 단순한 '마케팅 술책'이 아니라 진짜로 진행되고 있다는 신호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러한 접근이 과거 시도들과 흡사해 보일까 봐 우려하는 대통령 주변의 사람들에게 말하고 싶은 것은 다음에 어떠한 조치가 추가로 나올 것이냐에 달렸다는 점"이라고 덧붙였다.

힐 전 차관보는 "트럼프 대통령이 너무 많은 양보를 해서 궁극적으로는 북한에 자유의 여신상이라도 가져다줄 수 있다고 우려했던 이들이 보기에는 트럼프 대통령이 하노이에서 협상 타결 자체에 과도하게 애태우지 않으며 잘 처신했다고 생각할 수 있다"면서도 트럼프 대통령이 종전선언이나 연락사무소 설치와 같은 이슈에서 조자 뒷걸음질 친 이유에 대해서는 의아하게 생각해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의 제안을 좀 더 면밀하게 살펴본 뒤 참모들에게 옥신각신하길 멈추고 후속 단계들에 대한 구상에 착수하라고 해야 했다"며 북측의 제안을 수용하고 그 토대 위에서 다음 조치들을 향해 나아갔어야 한다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