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총 '戰雲' 기관·헤지펀드 공세 주주제안 역대 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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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117건…작년보다 70%↑
▶마켓인사이트 3월 12일 오후 3시15분
정기 주주총회 시즌이 본격 개막한 가운데 일반 주주들이 의안을 직접 제시하는 주주제안이 사상 최다를 기록했다. 스튜어드십 코드(수탁자 책임원칙)를 도입한 국민연금 등 기관투자가들이 주주권 행사 수위를 높이고 있는 데다 외국계 행동주의 펀드도 줄줄이 상륙하면서다.
주주가치 제고를 위한 건전한 제안도 있지만 단기 투자차익만을 노린 채 기업가치를 훼손할 우려가 있는 요구도 빗발치고 있다.
12일 한국경제신문이 올 들어 이날까지 나온 상장법인(12월 결산) 정기 주총 공시를 전수 조사한 결과, 주주제안으로 주총에 상정된 안건은 117건(33개 상장사)에 달했다. 지난해(72건)보다 70.8% 늘어난 수치로 기존 최다인 2015년 주주제안 건수(116건)를 이미 넘어섰다. 12월 결산법인은 이번주까지 주주제안 안건을 공개해야 한다.
스튜어드십 코드를 도입한 국내 밸류파트너스자산운용과 페트라자산운용은 미국계 행동주의펀드 SC펀더멘털 등과 손잡고 태양, 강남제비스코, KISCO홀딩스 등에 주주제안을 했다. 미국계 행동주의펀드 엘리엇매니지먼트는 현대자동차 현대모비스에 지난해 영업이익을 웃도는 규모의 배당을 요구했다. 외국계 헤지펀드의 주주제안 안건은 지난해 3건에서 올해 22건으로 급증했다.
내용을 보면 자신들이 추천하는 이사·감사를 선임하라는 안건이 72건(61.5%)으로 가장 많았다. 배당을 높이라는 등 주주 친화책을 요구하는 안건이 23건(19.6%)으로 뒤를 이었다.
외국계 행동주의펀드 주주제안 7배 늘어…"기업가치 훼손될라" 속앓이
주주총회 시즌을 맞아 전운(戰雲)이 감돌고 있다. 기관투자가와 소액주주들이 주주제안을 쏟아내면서 역대 가장 치열한 표 대결을 예고하고 있기 때문이다. 상장사들은 이들의 연대 가능성에 긴장하는 한편 배당을 확대하는 등 주주 달래기에 나섰다.
‘우후죽순’ 행동주의 펀드
올해 주주제안이 역대 최대 수준으로 늘어난 것은 스튜어드십 코드 영향이 크다는 분석이다. 한국기업지배구조원에 따르면 연기금과 보험사 자산운용사 등 90곳이 스튜어드십 코드를 도입했다. DGB자산운용 등 36곳도 조만간 스튜어드십 코드를 도입할 예정이다.
행동주의를 표방하는 펀드도 속속 등장했다. VIP자산운용과 밸류시스템자산운용은 행동주의 전략을 구사하는 펀드를 나란히 선보여 각각 300억원, 500억원의 투자금을 모았다.
외국계 행동주의펀드의 상륙도 잇따르고 있다. 미국 행동주의펀드 홀드코자산운용은 세이브존I&C에 주주제안을 하며 국내 자본시장에 얼굴을 알렸다. 올 들어 엘리엇(15건) SC펀더멘털(2건) 홀드코자산운용(5건) 등은 국내 상장사에 주주제안 22건을 올렸다. 지난해 외국계 행동주의펀드의 주주제안(3건)에 비해 7배가량 늘었다.
부산도시가스 예스24 성도이엔지 등에는 개인투자자들이 뭉쳐서 주주제안을 올렸다.
투자은행(IB)업계 관계자는 “올해가 사실상 ‘주주 행동주의’ 원년”이라며 “기업구조 개선과 배당 확대를 요구하는 주주들의 목소리가 봇물처럼 터져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일부 기관투자가들은 주주제안의 영향력을 높이기 위해 세를 결집하고 있다. 이른바 ‘늑대무리(wolf pack) 전략’의 일환이다. 미국 투자회사인 돌턴인베스트먼트는 미국 운용사인 브랜디스인베스트먼트, 국내 행동주의펀드로 분류되는 케이씨지아이(KCGI) 및 밸류파트너스자산운용 등과 연대하기로 가닥을 잡았다. 이들은 공동 홈페이지 운영에 나선 데 이어 공동 주주제안도 할 계획이다.
국민연금은 한진칼에 적극적 주주권을 행사하기로 결정하면서 주총 영향력을 키우고 있다. 지분 10% 이상을 보유하고 있거나 국내 주식 투자 포트폴리오 가운데 비중이 1% 이상인 상장사의 주총을 앞두고 의결권 행사 방향을 사전에 공개하기로 했다. 의결권 행사 방향을 미리 공개하면 국민연금 자금을 받아 운용하는 기관과 소액 주주에도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주주 행동주의의 명과 암
주주제안이 늘면서 국내 자본시장이 재평가받을 것이라는 기대가 있다. 2018년 상장사 결산 배당금이 처음으로 30조원을 넘어선 배경에는 주주 행동주의 영향이 깔려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국민연금과 KCGI가 주주제안을 제기한 한진칼은 2018년 배당성향(배당÷당기순이익)을 50%로 2017년(3.1%)보다 대폭 높였다. 국민연금이 주주권 행사 여부를 저울질했던 현대그린푸드도 배당성향을 2017년 6.61%에서 2018년 17.79%로 상향 조정했다.
하지만 일부 상장사들은 무리한 주주제안에 속앓이를 하고 있다. 한솔홀딩스 일부 소액주주는 12일 종가(4840원)보다 두 배 이상 높은 가격(1만1000원)에 주식 136억원어치를 사들여 소각하라고 제안했다. 이 회사의 지난해 말 순현금(현금성자산에서 차입금을 제외한 항목·218억원) 상당액을 주식 매입에 쓰라는 요구다.
한국경제연구원은 글로벌 10대 행동주의 펀드가 2013~2014년 공격한 해외기업 48곳을 대상으로 경영개입 전후 3년의 지표를 분석한 결과 상당수 회사의 기업가치가 훼손됐다고 분석했다.
김세용 KB증권 연구원은 “행동주의펀드로부터 공습을 받거나 공격 위협에 노출된 기업들은 실적에 관계없이 배당을 확대하는 경향을 보인다”고 말했다. 이어 “자산매각과 지나친 배당 등 과도한 요구는 기업 신용도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고 설명했다.
김익환 기자 lovepen@hankyung.com
정기 주주총회 시즌이 본격 개막한 가운데 일반 주주들이 의안을 직접 제시하는 주주제안이 사상 최다를 기록했다. 스튜어드십 코드(수탁자 책임원칙)를 도입한 국민연금 등 기관투자가들이 주주권 행사 수위를 높이고 있는 데다 외국계 행동주의 펀드도 줄줄이 상륙하면서다.
주주가치 제고를 위한 건전한 제안도 있지만 단기 투자차익만을 노린 채 기업가치를 훼손할 우려가 있는 요구도 빗발치고 있다.
12일 한국경제신문이 올 들어 이날까지 나온 상장법인(12월 결산) 정기 주총 공시를 전수 조사한 결과, 주주제안으로 주총에 상정된 안건은 117건(33개 상장사)에 달했다. 지난해(72건)보다 70.8% 늘어난 수치로 기존 최다인 2015년 주주제안 건수(116건)를 이미 넘어섰다. 12월 결산법인은 이번주까지 주주제안 안건을 공개해야 한다.
스튜어드십 코드를 도입한 국내 밸류파트너스자산운용과 페트라자산운용은 미국계 행동주의펀드 SC펀더멘털 등과 손잡고 태양, 강남제비스코, KISCO홀딩스 등에 주주제안을 했다. 미국계 행동주의펀드 엘리엇매니지먼트는 현대자동차 현대모비스에 지난해 영업이익을 웃도는 규모의 배당을 요구했다. 외국계 헤지펀드의 주주제안 안건은 지난해 3건에서 올해 22건으로 급증했다.
내용을 보면 자신들이 추천하는 이사·감사를 선임하라는 안건이 72건(61.5%)으로 가장 많았다. 배당을 높이라는 등 주주 친화책을 요구하는 안건이 23건(19.6%)으로 뒤를 이었다.
외국계 행동주의펀드 주주제안 7배 늘어…"기업가치 훼손될라" 속앓이
주주총회 시즌을 맞아 전운(戰雲)이 감돌고 있다. 기관투자가와 소액주주들이 주주제안을 쏟아내면서 역대 가장 치열한 표 대결을 예고하고 있기 때문이다. 상장사들은 이들의 연대 가능성에 긴장하는 한편 배당을 확대하는 등 주주 달래기에 나섰다.
‘우후죽순’ 행동주의 펀드
올해 주주제안이 역대 최대 수준으로 늘어난 것은 스튜어드십 코드 영향이 크다는 분석이다. 한국기업지배구조원에 따르면 연기금과 보험사 자산운용사 등 90곳이 스튜어드십 코드를 도입했다. DGB자산운용 등 36곳도 조만간 스튜어드십 코드를 도입할 예정이다.
행동주의를 표방하는 펀드도 속속 등장했다. VIP자산운용과 밸류시스템자산운용은 행동주의 전략을 구사하는 펀드를 나란히 선보여 각각 300억원, 500억원의 투자금을 모았다.
외국계 행동주의펀드의 상륙도 잇따르고 있다. 미국 행동주의펀드 홀드코자산운용은 세이브존I&C에 주주제안을 하며 국내 자본시장에 얼굴을 알렸다. 올 들어 엘리엇(15건) SC펀더멘털(2건) 홀드코자산운용(5건) 등은 국내 상장사에 주주제안 22건을 올렸다. 지난해 외국계 행동주의펀드의 주주제안(3건)에 비해 7배가량 늘었다.
부산도시가스 예스24 성도이엔지 등에는 개인투자자들이 뭉쳐서 주주제안을 올렸다.
투자은행(IB)업계 관계자는 “올해가 사실상 ‘주주 행동주의’ 원년”이라며 “기업구조 개선과 배당 확대를 요구하는 주주들의 목소리가 봇물처럼 터져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일부 기관투자가들은 주주제안의 영향력을 높이기 위해 세를 결집하고 있다. 이른바 ‘늑대무리(wolf pack) 전략’의 일환이다. 미국 투자회사인 돌턴인베스트먼트는 미국 운용사인 브랜디스인베스트먼트, 국내 행동주의펀드로 분류되는 케이씨지아이(KCGI) 및 밸류파트너스자산운용 등과 연대하기로 가닥을 잡았다. 이들은 공동 홈페이지 운영에 나선 데 이어 공동 주주제안도 할 계획이다.
국민연금은 한진칼에 적극적 주주권을 행사하기로 결정하면서 주총 영향력을 키우고 있다. 지분 10% 이상을 보유하고 있거나 국내 주식 투자 포트폴리오 가운데 비중이 1% 이상인 상장사의 주총을 앞두고 의결권 행사 방향을 사전에 공개하기로 했다. 의결권 행사 방향을 미리 공개하면 국민연금 자금을 받아 운용하는 기관과 소액 주주에도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주주 행동주의의 명과 암
주주제안이 늘면서 국내 자본시장이 재평가받을 것이라는 기대가 있다. 2018년 상장사 결산 배당금이 처음으로 30조원을 넘어선 배경에는 주주 행동주의 영향이 깔려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국민연금과 KCGI가 주주제안을 제기한 한진칼은 2018년 배당성향(배당÷당기순이익)을 50%로 2017년(3.1%)보다 대폭 높였다. 국민연금이 주주권 행사 여부를 저울질했던 현대그린푸드도 배당성향을 2017년 6.61%에서 2018년 17.79%로 상향 조정했다.
하지만 일부 상장사들은 무리한 주주제안에 속앓이를 하고 있다. 한솔홀딩스 일부 소액주주는 12일 종가(4840원)보다 두 배 이상 높은 가격(1만1000원)에 주식 136억원어치를 사들여 소각하라고 제안했다. 이 회사의 지난해 말 순현금(현금성자산에서 차입금을 제외한 항목·218억원) 상당액을 주식 매입에 쓰라는 요구다.
한국경제연구원은 글로벌 10대 행동주의 펀드가 2013~2014년 공격한 해외기업 48곳을 대상으로 경영개입 전후 3년의 지표를 분석한 결과 상당수 회사의 기업가치가 훼손됐다고 분석했다.
김세용 KB증권 연구원은 “행동주의펀드로부터 공습을 받거나 공격 위협에 노출된 기업들은 실적에 관계없이 배당을 확대하는 경향을 보인다”고 말했다. 이어 “자산매각과 지나친 배당 등 과도한 요구는 기업 신용도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고 설명했다.
김익환 기자 lovep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