法에 보장된 '피고인 방어권'을 '남용'이라고 주장하는 검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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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
'피고인 방어권 남용' 표현은
법조계선 듣도보도 못한 말
고윤상 지식사회부 기자
'피고인 방어권 남용' 표현은
법조계선 듣도보도 못한 말
고윤상 지식사회부 기자
“‘피고인 방어권 남용’이라는 말이 성립이 되나요? 검찰이 이런 표현을 하다니 법률가가 맞나 하는 생각까지 듭니다.”
지난 11일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재판에서 검찰이 피고인 방어권 남용을 주장하자 고위 검찰 출신 변호사가 내놓은 반응이다. 검찰의 기소에 맞서 무죄를 증명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우리 법률 체계의 기본을 망각한 처사라는 이유에서다. 또 다른 판사 출신인 변호사도 ‘피고인 방어권 남용’은 ‘듣도 보도 못한 개념’이라며 혀를 찼다.
검찰은 이날 공판에서 “임 전 차장이 변호인들을 사임시키는 등의 방법으로 일부러 재판을 늦추는 전략을 펴고 있다”며 “재판장은 피고인에게 엄중히 경고해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면서 “(임 전 차장이) 재판의 장기화를 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판단한 것 같다”며 “그것이 사실이라면 방어권 남용”이라고 말했다.
‘피고인 방어권 남용’이라는 표현은 법조계에서 통용되지 않는다. 변호인단 교체나 진술 증거 부동의는 피고인의 당연한 권리로 통한다. 오히려 통상 ‘남용’이란 표현과 묶이는 건 수사권이다. 수사권은 수사기관이 피의자를 수사하는 일방적 상황에서 행사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검찰이 법원에 공소장을 제출하는 순간 상황은 바뀐다. 피의자는 피고인이 되고 검찰과 피고인의 위치는 동등해진다. 수사기관이 권력을 남용하더라도 이를 방어할 수 있도록 하는 게 헌법상 보장된 피고인의 방어권이다. 피고인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형사소송법상의 대(大)원칙도 같은 취지다.
판사 출신 한 변호사는 “우리 헌법은 피고인이 스스로 자신의 권리를 최대한 지킬 수 있도록 지켜주자고 한다”며 “피고인 방어권에 남용이라는 개념이 어울리지 않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검찰은 그동안 수사권을 남용한다는 말을 많이 들어왔기 때문에 법정에서 다툼을 벌이는 상대방에게도 남용이라는 말을 쓸 수 있다고 봤을 수도 있다. 그러나 자신과 피고의 법률적 지위를 망각한 이런 발언은 단순한 실언이 아니라 여전히 ‘권위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검찰의 한계를 보여준다는 지적이다.
kys@hankyung.com
지난 11일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재판에서 검찰이 피고인 방어권 남용을 주장하자 고위 검찰 출신 변호사가 내놓은 반응이다. 검찰의 기소에 맞서 무죄를 증명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우리 법률 체계의 기본을 망각한 처사라는 이유에서다. 또 다른 판사 출신인 변호사도 ‘피고인 방어권 남용’은 ‘듣도 보도 못한 개념’이라며 혀를 찼다.
검찰은 이날 공판에서 “임 전 차장이 변호인들을 사임시키는 등의 방법으로 일부러 재판을 늦추는 전략을 펴고 있다”며 “재판장은 피고인에게 엄중히 경고해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면서 “(임 전 차장이) 재판의 장기화를 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판단한 것 같다”며 “그것이 사실이라면 방어권 남용”이라고 말했다.
‘피고인 방어권 남용’이라는 표현은 법조계에서 통용되지 않는다. 변호인단 교체나 진술 증거 부동의는 피고인의 당연한 권리로 통한다. 오히려 통상 ‘남용’이란 표현과 묶이는 건 수사권이다. 수사권은 수사기관이 피의자를 수사하는 일방적 상황에서 행사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검찰이 법원에 공소장을 제출하는 순간 상황은 바뀐다. 피의자는 피고인이 되고 검찰과 피고인의 위치는 동등해진다. 수사기관이 권력을 남용하더라도 이를 방어할 수 있도록 하는 게 헌법상 보장된 피고인의 방어권이다. 피고인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형사소송법상의 대(大)원칙도 같은 취지다.
판사 출신 한 변호사는 “우리 헌법은 피고인이 스스로 자신의 권리를 최대한 지킬 수 있도록 지켜주자고 한다”며 “피고인 방어권에 남용이라는 개념이 어울리지 않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검찰은 그동안 수사권을 남용한다는 말을 많이 들어왔기 때문에 법정에서 다툼을 벌이는 상대방에게도 남용이라는 말을 쓸 수 있다고 봤을 수도 있다. 그러나 자신과 피고의 법률적 지위를 망각한 이런 발언은 단순한 실언이 아니라 여전히 ‘권위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검찰의 한계를 보여준다는 지적이다.
k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