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권익위원회가 경찰의 압수수색을 우려해 지난 11일 밤 11시에 황급히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을 찾아 가수 정준영 씨 불법 동영상 유포 의혹 사건에 대한 수사자료를 넘긴 것으로 나타났다. 검찰이 경찰 고위급이 연루된 버닝썬 사태에 대해 본격적인 수사에 들어가면서 향후 검경 수사권 조정을 앞두고 양 기관 간 자존심을 건 수사 경쟁이 벌어질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권익위, 전방위 압수수색에 압박느껴

13일 법조계에 따르면 권익위 직원 한 명은 11일 대검찰청을 방문해 밀봉된 수사자료를 제출했다. 수사자료에는 공익 제보자인 방정현 변호사가 입수한 2015년부터 2016년 사이 6개월간 남성 연예인 등의 불법 촬영 유포 정황이 담긴 카카오톡 단체 대화방 내용이 포함돼 있었다. 권익위는 방 변호사의 제보를 받아 20일간 사건을 검토한 뒤 검찰에 수사를 의뢰한 것이다.

이 사건을 잘 아는 법조계 관계자는 “권익위가 밤 11시에 부랴부랴 대검을 찾아 수사자료를 넘긴 것은 경찰이 긴급하게 권익위를 압수수색하려고 했기 때문”이라며 “이 사건이 경찰 고위직과 연루됐다는 것을 파악한 권익위는 경찰이 압수수색하면 증거를 인멸할 우려가 있다고 판단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 경찰 관계자는 “우리는 계속 권익위에 자료 제출 및 협조 요청을 했는데 권익위가 응하지 않아 강제수사 방법으로 확보하려 했다”고 말했다. 방 변호사는 한 라디오 방송에 나와 “(단톡방 채팅) 내용에 (버닝썬과) 경찰의 유착 관계를 의심할 수 있는 정황이 많이 담겨 있었다”며 “특히 서울 강남경찰서장보다 높은 직급 경찰과의 유착 정황도 확인됐다”고 말했다.

실제 경찰은 이번 사건과 관련해 전방위적인 압수수색을 하고 있다. 강남경찰서는 이 사건과 관련해 클럽 아레나에 대한 세무조사를 벌인 서울지방국세청을 지난 8일 압수수색했다.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대는 13일 사건과 관계된 남성 연예인이 휴대폰을 맡긴 사설 수리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을 했다. 검찰 관계자는 “권익위 압수수색이 막히니 사설 휴대폰 업체를 압수수색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경찰, 정준영 위해 증거인멸 시도

경찰은 2016년 8월 정씨가 당시 교제하던 한 여성의 신체 일부를 몰래 촬영했다는 혐의로 고소당한 사건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증거를 인멸하려 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사건을 수사하던 성동경찰서 소속 경찰관 A씨는 정씨 휴대폰의 포렌식 작업을 하던 한 사설 업체에 전화해 “데이터 복구가 불가능하다는 확인서를 써달라”고 요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업체 측은 끝내 이 요구를 거부했고, 경찰은 포렌식 결과조차 받아보지 않은 채 사건을 검찰에 송치했다. 이후 여성이 고소를 취하하자 정씨는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서울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 측은 이에 대해 “당시 사건 경위를 비롯한 사실관계를 확인하는 중”이라고 밝혔다.

버닝썬 사건놓고 검경간 자존심 싸움

검찰은 권익위가 제출한 수사자료를 검토한 뒤 14일 일선 검찰청에 사건을 배당해 수사에 들어간다는 계획이다. 검찰 관계자는 “서울중앙지검에 보낼지, 이 사건에 연루된 경찰 고위직의 주소 관할 검찰청에 보낼지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법조계에선 검찰과 경찰의 미래가 달린 검경 수사권 조정을 앞두고, 검찰과 경찰이 이번 사건을 통해 수사력을 제대로 입증하지 못하면 궁지에 몰릴 우려가 있다고 분석했다. 연예인 성접대 의혹이 불법 촬영 유포로 번지면서 사건이 일파만파 커지고 있는 버닝썬 사태가 검경 수사권 조정의 승자를 가늠하는 시험대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경찰은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는 검경 수사권 조정을 통해 1차 수사권과 수사 종결권을 거머쥐게 된다. 경찰이 고위 경찰이 연루된 이번 사건에서 수사력을 입증하지 못하고 검찰이 실체적 진실을 규명하면 이번 수사권 조정안은 검찰에 유리한 방향으로 바뀔 가능성이 있다. 검찰도 이번 사건을 제대로 파헤치지 못하면 기존 조정안이 탄력을 받게 될 전망이다.

안대규 기자 powerzani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