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태순 신성통상 회장은 지난 11일 서울 둔촌동 본사에서 한국경제신문과 한 인터뷰에서 “품질과 합리적 가격을 동시에 갖춘 패션 브랜드를 키우는 데 주력하겠다”고 말했다.  /김범준  기자  bjk07@hankyung.com
염태순 신성통상 회장은 지난 11일 서울 둔촌동 본사에서 한국경제신문과 한 인터뷰에서 “품질과 합리적 가격을 동시에 갖춘 패션 브랜드를 키우는 데 주력하겠다”고 말했다. /김범준 기자 bjk07@hankyung.com
체크무늬가 들어간 로열블루 더블브레스트 재킷에 몸에 적당히 붙는 네이비 바지, 여기에 새하얀 스니커즈까지. 지난 11일 서울 둔촌동 신성통상 본사에서 만난 염태순 회장은 ‘옷태’가 남달랐다. 올해로 66세인 그는 매일 새하얀 와이셔츠를 꺼내 입는 ‘패피’(패션피플)다. 재킷은 ‘올젠’, 셔츠는 지난달 신성통상이 첫선을 보인 중저가 셔츠 브랜드 ‘매일24365’ 제품이다. “셔츠 한 벌에 3만~5만원대지만 명품 못지않다”고 그는 자부한다. 값싸고 품질 좋은 토종 브랜드로 제대로 패션사업에서 승부를 보겠다는 고집이 엿보였다. 염 회장은 “유니클로가 한국 시장을 무섭게 파고드는 것을 보고 ‘이대론 안 되겠다’고 주먹을 불끈 쥐고 내놓은 게 탑텐 브랜드였다”며 “초기 투자비용이 많이 들어 계속 적자를 내다가 5년 만인 지난해 드디어 흑자를 냈다”고 웃었다. “삼성전자, LG전자가 소니를 꺾었듯 토종 브랜드 ‘탑텐’으로 일본 유니클로를 꺾는 게 꿈”이라고 했다. 장진모 생활경제부장이 염 회장을 만나 2시간가량 이야기를 나눴다.

만난 사람=장진모 생활경제부장
만난 사람=장진모 생활경제부장
▶입고 있는 셔츠가 3만9900원짜리인가요.

“네. 명품 같죠? 품질 좋고 합리적인 가격의 ‘매일24365’ 브랜드입니다. 셔츠는 남성의 피부와도 같거든요. 셔츠만 잘 입어도 옷 잘 입는다는 소리를 들을 수 있어요. 색깔이나 디자인이 다른 셔츠를 매일 빳빳하게 다려서 갈아입어보세요. 패셔니스타 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그 시장을 놓쳐선 안 되겠다 싶어 새로 내놓은 브랜드입니다.”

▶품질과 가격 경쟁력을 함께 갖추는 것은 쉽지 않은데요.

“신성통상은 원단과 옷을 만들어 수출하다가 패션사업에까지 진출했어요. 게스, 갭, 언더아머와 같은 글로벌 브랜드에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방식으로 옷을 납품할 정도로 품질을 인정받고 있습니다. 미얀마 베트남 인도네시아 등에 세운 공장을 통해 가격을 낮출 수 있었죠. 지금은 가성비(가격 대비 품질) 좋은 제품이 아니면 성공하기 어려운 시대잖아요. 똑똑해진 소비자들은 더 이상 브랜드 이름에 값비싼 금액을 지불하지 않아요. 티셔츠와 바지처럼 매일 입는 옷은 싸고 원단이 좋은 걸 입는 거죠. 그런 가치소비 트렌드가 기회라고 봅니다.”

▶2012년 탑텐 브랜드를 내놓은 것도 그런 이유였습니까.

“유니클로를 따라잡자고 만든 거예요. (웃음) 2005년 유니클로가 한국에 진출하면서 ‘매출 3조원을 하겠다’고 발표하는 걸 보고 ‘나도 SPA(제조·직매형 의류)를 해야겠구나’라고 생각했죠. 제대로 된 토종 브랜드로 유니클로를 따라잡아야지 하는 각오였죠.”

▶탑텐은 기획·생산·유통을 총괄하는 SPA 구조여서 수익을 내기가 어려웠을 텐데요.

“박리다매 전략이 핵심이에요. 싸게 많이 파는 게 우스워 보여도 무서운 겁니다. 탑텐이 초기 5년은 적자를 냈는데 그걸 버텨냈죠. 처음엔 시설투자, 유통망 확대, 제품 테스트 등에 돈이 많이 들어갑니다. 버티고 버텼더니 지난해 흑자를 냈습니다. 올해 탑텐으로 2700억원 매출에 영업이익 200억원을 달성할 겁니다. 5년 안에 매출 1조원 브랜드로 만드는 게 목표예요.”

▶유니클로는 한국 매출이 1조3000억원입니다.

“40년 역사를 가진 유니클로를 당장 따라잡긴 어렵겠죠. 그런데 우리라고 왜 못합니까. 탑텐이 흑자전환한 만큼 이제 시작입니다. 1990년대 최고였던 소니를 삼성전자, LG전자가 꺾을지 누가 알았습니까. 패션업계의 삼성전자, LG전자가 되겠다는 각오입니다.”

▶프리미엄 브랜드 계획은 없습니까.

“잘하는 것만 해야 합니다. 브랜드를 함부로 늘릴 생각은 없어요. 2016년 수입 브랜드 유니온베이를 접었습니다. 토종 브랜드만으로 승부를 내려고 합니다.”

▶2017년 ‘평창 롱패딩’ 신화의 숨은 주역이란 평가를 받았는데요.

“당시 100만 장을 팔았습니다. 이뿐만 아니라 신성통상의 자체 브랜드 폴햄·지오지아·탑텐 제품으로도 롱패딩 100만 장을 더 팔았어요. 미얀마 공장 8개 모두에서 우리 브랜드만 만들고 있는 게 경쟁력의 원천입니다. 가격 거품을 확 빼자 소비자가 알아본 겁니다.”

▶창업한 지 25년이 넘었습니다.

“2년간 다니던 중소기업을 그만두고 가방을 만들어 수출하는 가나안을 창업했습니다. 1983년이었죠. 사업이 처음부터 잘됐던 건 아니지만 중소기업(효동기업)에서 보고 배운 걸 다 동원해 공장을 확보하고 판로를 개척했어요. 당시 국내에 공장이 있었습니다. 한국인의 손재주가 뛰어나니까 품질은 일등이었어요. 잔스포츠 이스트팩 노스페이스 등 글로벌 브랜드에 가방을 납품하게 됐습니다. 그런데 1만원에 납품한 가방을 10만원에 파는 걸 보니 화가 났습니다. 그래서 1990년대 초 ‘아이찜(AIZIM)’이란 독자 브랜드를 내놨는데 첫해 120억원의 매출을 올렸습니다. 아이찜 돌풍에 잔스포츠, 이스트팩이 한국에서 철수했죠.”

▶신성통상은 어떤 계기로 인수했나요.

“800원대이던 원·달러 환율이 외환위기 때 달러당 1500원, 2000원까지 치솟았어요. 우리 같은 수출업체들은 가만히 앉아서도 큰돈을 벌었어요. 상당수 수출업체가 그 돈으로 땅과 건물을 샀지만 저는 2002년 신성통상을 인수했어요. 지금은 미얀마, 베트남, 인도네시아, 니카라과에 총 15개 공장을 운영 중입니다. 미국의 게스, 갭, 언더아머, 올드네이비 같은 브랜드 옷도 우리가 만듭니다. 2017년부터는 유럽의 리들, 프라이마크에도 납품하기 시작했습니다.”

▶패션사업 전략을 어떻게 세우고 있습니까.

“지난 16년 동안은 시행착오의 시간이었어요. 성공 확신 없이 열심히만 했는데 이제는 확신을 갖고 제대로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실패도 할 만큼 했고, 지금 운영 중인 브랜드는 모두 1등 할 수 있는 알짜배기입니다. 남성복 올젠·지오지아·앤드지, 캐주얼 브랜드 폴햄·엠폴햄, SPA 브랜드 탑텐까지 포트폴리오를 갖췄다고 봅니다.”

▶K패션의 글로벌 경쟁력에 대해선 어떻게 평가합니까.

“K뷰티와 K패션은 좀 다릅니다. 화장품은 국내 OEM 회사들이 잘 만들지만 해외 공장에서 생산하는 옷은 인프라 구축에 돈과 시간이 많이 들어요. 글로벌 명품 브랜드들은 모두 최소 50년에서 100년의 역사를 갖고 있어요. 전통과 역사가 있어야 스토리텔링도 가능하죠. K패션이 글로벌 브랜드로 성장하는 데는 시간이 걸릴 것으로 봅니다. 우선 내수시장에서 1등을 한 다음 해외로 나갈 겁니다.”

▶요즘 기업 환경이 어렵다고 합니다.

“세계 경기도, 국내 경기도 안 좋아요. 하지만 틈새는 어디에나 있습니다. 난세에 영웅이 나온다고 하죠. 저는 그걸 가성비 좋은 옷으로 본 겁니다. 물론 정답은 다 알고 있으니 얼마나 잘 해내느냐가 관건이겠죠. 탑텐이 5년 만에 흑자를 내는 2000억원대 브랜드로 성장한 걸 보면서 희망을 갖게 됐습니다. 탑텐이 글로벌 브랜드로 성장할 수 있도록 제대로 한판 벌여볼 겁니다.”

▶스스로 어떤 경영자라고 생각합니까.

“저는 사실 바쁘지 않아요. 처음엔 일일이 해외 공장을 돌아다니고 엄청 바빴죠. 그런데 지금은 제가 없어도 시스템으로 잘 돌아갑니다. 최고경영자(CEO)는 생각을 많이 해야지 부지런하게 일만 많이 한다고 능사가 아닙니다. 제일 훌륭한 상사는 ‘똑게’(똑똑하고 게으른 사람)라고 하잖아요.(웃음)”

■염태순 신성통상 회장은…

염태순 신성통상 회장은 1983년 스포츠가방 제조회사 가나안상사를 설립했다. 중소기업에 취직한 지 2년 만이었다. 창업 25년 만에 매출 1조5000억원의 중견기업을 일궜지만 그는 “이제 시작”이라고 강조한다. 패션업계는 그를 두고 “보통 배짱이 아니다”고 한다. 과감하게 투자하고 힘있게 사업을 밀어붙였기 때문이다. 염 회장은 나이키, 아디다스의 스포츠용 가방을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방식으로 회사를 키웠다. 1997년 외환위기는 그에게 기회였다. 환율 급등으로 수출기업이 원화로 손에 쥐는 돈이 크게 늘었기 때문이다. ‘큰돈’을 번 그는 통 큰 결단을 내렸다. 2002년 옛 대우 계열이던 신성통상을 인수했다. 당시 신성통상 매출은 2500억원으로 가나안보다 2.5배 많았다. “새우가 고래를 삼켰다”는 말이 나왔다. 그때부터 미국의 타깃, 월마트, 코스트코 등에 자체브랜드(PB) 의류를 납품하기 시작했다. 그후 남성복 지오지아·올젠·앤드지, 캐주얼 브랜드 폴햄·엠폴햄, 제조·직매형 의류(SPA) 브랜드 탑텐 등을 잇따라 출시하면서 패션시장 전면에 등장했다. 지난해 신성통상과 계열사(가나안, 에이션패션)의 매출은 1조4500억원. 올해는 패션사업을 더 키워 1조6000억원을 올릴 계획이다.

■약력

△1953년 서울 출생
△경동고,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졸업
△1980년 효동기업 입사
△1983년 가나안상사 설립
△2002년 신성통상 대표
△2003년 베트남법인 설립
△2004년 에이션패션 대표, 폴햄 출시
△2007년 인도네시아법인 설립
△2010년 미얀마법인 설립
△2012년 탑텐 출시, 섬유의날 금탑산업훈장 수상


정리=민지혜 기자 spo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