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생각해도 진짜 말을 잘 들었던 것 같아요.”

작은 체구에 고등학생 같은 동안 외모. 일반 복장으로 갈아입은 그에게선 더욱더 운동선수 느낌이 나지 않았다.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투어를 대표하는 ‘작은 거인’ 박민지(21·사진) 얘기다. 지난해 11월 최종전 ADT캡스 챔피언십에서 정상에 오르며 2년 연속 우승이라는 금자탑을 쌓은 그를 최근 서울의 한 골프용품회사 사옥에서 만났다. 박민지는 “우승이 잡힐 듯하다 멀어져 지난해 2승은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했다”며 “그러다 갑자기 우승이 찾아왔다. 나 혼자 울컥해 우승 후 그렇게 울었던 것 같다”며 쑥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박민지는 조용히 강하다. 데뷔 해인 2017년 우승 1회를 포함해 상금 약 3억6600만원을 모았다. 2년차였던 지난해 4억4871만원을 모아 데뷔 후 2년 만에 한 시즌 상금 4억원을 돌파했다. 드라이브 비거리는 작년 평균 245.76야드(25위)로 2017년(15위·252.27야드)보다 다소 달래 치는 모습이다. 그러나 평균타수(8위), 그린 적중률(8위), 페어웨이 적중률(8위) 등에서 모두 상위 10위에 들며 약점 없는 선수라는 평가를 받았다.

박민지의 인내심은 상상을 초월한다. 충수염을 참으며 시험 보는, 영화에서나 등장하는 그런 캐릭터를 떠올리게 한다. 중학교 1학년 때는 9홀 파3 골프장을 하루 7번 돌았다고 한다. 노력을 강조하는 어머니의 강한 ‘정신교육’으로 버텨냈다. 박민지의 어머니는 1984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 여자 핸드볼 은메달리스트 김옥화 씨(60)다.

“키가 크지 않은 이유도 성장기 때 새벽 2시30분에 일어나 라운드해서 그런 것 같다”고 박민지가 농담처럼 던진 말에서 그동안의 노력을 가늠할 수 있다. 그는 “이른 아침 쇼트게임 연습 시설이나 파3 골프장에 도착해 중간 도시락 먹는 시간을 빼면 해질 때까지 샷과 퍼트만 했다”며 “운동선수 하려면 오직 이것 아니면 안 된다는 생각으로 전념해야 한다는 말을 어머니가 하셨다. 수많은 노력이 필요하다는 말이었고 새겨들었다”고 했다.

골프에만 올인하는 박민지는 소셜미디어(SNS)를 하거나 휴대폰을 손에 달고 다니는 타입이 아니다. 그는 “팔로와 팔로어가 헷갈렸고, SNS와도 맞지 않는다고 생각해 얼마 안 돼 그만뒀다”며 해맑게 웃었다. 그러면서 “도자기 체험에 관심 있고 방송댄스도 배우고 싶다”고 했다.

박민지는 국가대표로 2016 세계여자아마추어팀선수권에 출전해 21타 차 우승을 일군 ‘삼총사’ 멤버들과 KLPGA투어 무대에서 다시 뭉친다. 최혜진(20)은 지난해부터 KLPGA투어에서 뛰었고, 작년까지 드림(2부)투어에서 뛰던 박현경(19)이 1부투어에 올시즌부터 합류했다. 옛 동료들과 다시 한무대에서 뛰게 된 그는 목표를 ‘1승’으로 잡았다. 은퇴하기 전까지 매 시즌 1승을 거둬 20승을 거두는 게 최종 목표라고 한다.

“멕시코에서 우승을 차지하고 (우승하면 주어지는 KLPGA투어) 정회원 자격을 획득해 기뻐하며 서로를 ‘프로’라고 부른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최혜진, 박현경과) 선의의 경쟁을 하고 싶어요. 또 꾸준히 위에 있는 선수가 되고 싶습니다. 죽어라 연습만 했던 골프가 프로에 왔더니 이제야 재밌어지네요. 하면 할수록 골프가 참 재밌습니다. 올해부턴 진지한 표정을 조금 벗어던지고 확실하게 세리머니도 해볼게요.”

조희찬 기자 etwood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