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미국)가 쿼드러플 보기를 기록하며 고개를 숙였던 장소를 하루 만에 다시 찾았다. 이번에는 박장대소했다. ‘제5의 메이저’ 미국프로골프(PGA)투어 플레이어스 챔피언십(총상금 1250만달러)이 열리고 있는 미국 플로리다주 폰테베드라비치의 TPC 소그래스(파72·7189야드) 17번홀(파3)에서다.

우즈는 17일(한국시간) 열린 대회 3라운드 17번홀에서 홀 1m 거리에 공을 붙인 뒤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다가 먼저 퍼트한 재미동포 케빈 나(36)의 퍼트를 보고 웃음을 참지 못했다. 케빈 나 역시 1m가 조금 넘는 짧은 버디 퍼트를 했는데 공이 홀 안에 들어가기도 전에 손을 뻗어 공을 주우려는 제스처를 취했기 때문. 이는 평소 케빈 나가 습관처럼 하는 행동이다. 갤러리 사이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고, 어깨를 으쓱하며 천연덕스러운 표정을 짓는 케빈 나를 본 우즈도 치아를 드러내며 웃음을 참지 못했다.

우즈도 질 수 없다는 듯 자신의 공이 퍼터를 떠나자마자 재빨리 공을 집으려 오른손을 뻗었다. 해본 적이 없어서인지 케빈 나만큼 신속하지 못했고 어설펐다. 우즈는 또 웃었고 이를 본 갤러리들은 함께 웃으며 환호를 보냈다. 우즈는 케빈 나와 ‘피스트범프’(주먹끼리 맞대는 인사)를 하더니 어깨를 잡고 대화하며 홀을 나섰다. 이 홀은 전날 우즈가 공을 물에 두 번 빠뜨려 4타를 잃고 고개를 숙인 곳이다. 이 대회 시그니처 홀인 17번홀은 좁은 그린을 해저드가 둘러싸고 있어 ‘아일랜드홀’로 불린다. 선수들의 타수를 앗아가는 악명 높은 곳이다.

우즈는 경기 후 인터뷰에서 “공이 홀에 도착하기도 전에 공을 주우려 하는 것 같았다”며 계속해서 웃음을 참지 못했다. 자신의 차례에 그 행동을 따라했을 땐 “재밌게 할 수 있을 것 같았다”며 “하지만 라인에 확실히 맞춰 치는 것을 신경써야 했다”고 덧붙였다.

케빈 나는 모두를 웃긴 뒤 그린을 빠져나오면서 우즈에게 “내가 이렇게 했던 걸 본 적 있죠?”라고 물었고 우즈는 “본 적 있지만 직접 본 건 처음”이라고 답했다. 케빈 나는 또 우즈가 “왼손을 쓰지 않았기 때문(동작이 어설펐다)”이라며 “나중에 레슨해 주겠다”는 유머까지 선사했다.

케빈 나는 한때 백스윙 입스 때문에 스윙 준비 시간이 길어 대표적인 ‘슬로 플레이어’라는 오명을 썼다. 그러나 입스를 고친 뒤 2016년 투어챔피언십에서 혼자 뛰어가면서 1시간59분52초 만에 라운드를 끝내 오해를 풀었다. 이날 우즈와 함께 펼친 개그쇼까지 더해 이제는 ‘성질 급한 골퍼’라는 별명까지 얻을 기세다. 케빈 나는 “홀을 마치려고 안달이 난다”며 “공이 어두운 데 있는 걸 싫어하기 때문”이라고 농담을 섞어 답했다.

쿼드러플 보기를 치고도 1타를 줄인 전날과 달리 우즈는 이날 17번홀에서 버디를 잡고도 이븐파에 그쳤다. 그는 사흘 합계 3언더파 213타 공동 43위에 올랐다. PGA투어 16년 만에 우즈와 처음 동반 라운드한 케빈 나도 최종 성적은 부진했다. 사흘합계 3오버파 219타를 적어내며 2차 커트 탈락(MDF) 대상에 들어갔다.

욘 람(스페인)이 이날만 8타를 줄여 중간합계 15언더파 201타로 단독 선두에 올랐다. 로리 매킬로이(북아일랜드)와 토미 플리트우드(잉글랜드·이상 14언더파 202타)가 1타 차 공동 2위다.

안병훈(28)은 1타를 잃고 중간합계 6언더파 210타 공동 24위로 밀려났다. 2017년 정상에 올라 이 대회 최연소 우승 기록을 보유하고 있는 김시우(24)는 3언더파 213타 공동 43위다.

조희찬 기자 etwood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