靑 '조기수확' 강조…美 언론, 종전선언·남북경협 카드 가능성 보도
"분절된 단계적 협상은 경계"…北 '살라미 전술'과 차별성 관건
'빅딜' 미국과 엇박자 우려에 靑 "최종단계 로드맵에 인식차 없어"
'전부 or 전무' 대신 '괜찮은 중간 딜'로…北美 돌파구 생길까
하노이 회담에서 비핵화 담판이 결렬된 뒤 북미가 '강 대 강' 대치를 이어가는 가운데 청와대가 양측의 교착을 풀고 비핵화 대화를 촉진하는 데 다시 잰걸음 하려는 채비를 하고 있다.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17일 기자들을 만나 "일시에 완전한 비핵화 목표를 달성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지 않나"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올 오어 낫씽'(All or Nothing·전부 아니면 전무) 전략은 재고할 필요가 있다"며 이같이 밝혔다.

이런 입장은 비핵화 로드맵 도출과 같은 합의를 기대했던 하노이 회담 전과 달리 북미가 대화를 재개할 움직임을 보이지 않자 양자 사이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일괄타결식 빅딜을 주장하는 미국과 단계적 해법을 주장하는 북한이 모두 납득할 만한 중재안을 통해 중단된 대화에 동력을 불어넣겠다는 것이다.

미국은 하노이 회담에서 '영변 폐기 플러스 알파'를 요구한 뒤 일괄타결식 빅딜론을 고수하고 있다.

북한은 하노이에서 제안한 '영변 핵시설 폐기 대(對) 민수용 제재 다섯 건 해제' 방안에서 물러설 수 없다는 입장이다.

북한은 최선희 외무성 부상을 내세워 '협상중단'과 '미사일 실험 재개' 가능성까지 거론하며 비핵화 협상 판의 긴장감을 키우는 모양새다.

이 때문에 청와대로서는 교착 상태의 장기화를 막는 동시에 일련의 '스몰 딜'로 비핵화 협상의 동력을 유지해 '빅딜'에 이르는 안을 구상하는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북한이 포괄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로드맵에 합의하게 하고 이런 바탕에서 '스몰 딜'을 '굿 이너프 딜'(충분히 괜찮은 거래)로 만들어가야 하지 않겠나"라고 했다.

이는 '빅딜'을 주장하는 미국과 '단계적 비핵화'를 내세우는 북한이 종국에는 '포괄적 합의와 그것의 단계적 이행'으로 현 상황을 풀어야 한다는 일각의 지적과 일맥상통한다.

청와대 고위관계자도 "비핵화의 의미 있는 진전을 위해 한두 번의 연속적인 조기 수확이 필요하다고 판단하고 있다"며 "상호 신뢰를 구축하고 이를 통해 최종 목표를 달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굿 이너프 딜'로 쓰일 만한 카드로는 지금으로 봐선 힘겨워 보이지만 앞으로 여전히 개연성 있는 옵션인 종전선언이나 개성공단·금강산 관광 재개 등이 거론된다.

워싱턴포스트(WP)도 14일(현지시간) '북한에 대해 크게 가는 건 실패했다.

트럼프는 작게 가야 한다(Going big on North Korea failed. Trump should go small)'라는 제목의 사설에서 종전선언이나 남북경협 카드 등이 돌파구가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관건은 정부의 이같은 구상이 북한의 '살라미 전술'(비핵화 단계를 잘게 나눠 단계마다 보상받는 방식)과 어떻게 차별화되느냐인 것으로 보인다.

이를 의식한 듯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최종 목표와 동떨어진 분절된 단계적 협상, 소위 '살라미 전술'은 충분히 경계해야 한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즉, 청와대의 구상은 '살라미'처럼 하나하나 동떨어진 거래가 아니라 하나의 단계적 조치가 다음 비핵화 조치를 이끄는 '마중물'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청와대가 이처럼 '살라미 전술'에 선을 긋는 배경에는 한미 간 '엇박자'에 대한 우려가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지난해 1차 북미정상회담 이후 비핵화 협상이 공전할 때 미국 정치권에서는 '일괄타결'을 구상하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의 '살라미 전술'에 말려들었다는 비판까지 나왔다.

9·19 공동성명과 같은 포괄적 합의가 나오지 않은 상황에서 '단계적 조치의 작은 합의들을 연달아 만들어 신뢰를 쌓고 비핵화를 진전시킨다'는 구상은 미국이 납득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분석이 제기되는 것도 그런 맥락에서 보면 당연한 측면이 있다.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그러나 "비핵화의 '엔드 스테이트'(최종단계)를 달성하기 위한 로드맵의 기본인식에 한미 간 차이가 전혀 없다"고 강조하며 한미 사이에 근원적 견해차는 없다는 점을 강조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