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선의 'ASEAN 톺아보기' (17)] 마하티르와 '아시아적 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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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선 < 서울대 아시아연구소 객원연구원·前 한·아세안센터 사무총장 >
‘총리가 된 외과의사’ ‘말레이시아 현대화의 아버지’ ‘반(反)서방주의자’ ‘아시아적 가치의 주창자’ ‘동방정책(Look East Policy)의 창시자’…. 마하티르 빈 모하맛 말레이시아 총리에게 붙여진 칭호들이다. 그는 1981년부터 2003년까지 22년간 총리를 지냈고, 지난해 5월 총선을 통해 말레이시아 헌정 사상 최초로 정권교체를 이뤄 정계 은퇴 후 15년 만에 제7대 총리로 재등극했다. 94세의 세계 최고령 지도자로서, 전후 말레이시아 역사의 산증인이자 동아시아 질서 형성에 커다란 리더십을 발휘했던 그는 향후 말레이시아를 어떻게 이끌어갈까.
지난주 말레이시아를 국빈방문한 문재인 대통령은 마하티르 총리와 정상회담을 하고 말레이시아의 동방정책과 한국의 신남방정책이 시너지를 창출할 수 있도록 전략적 협력을 강화하기로 했다. 마하티르 총리는 1982년 일본 및 한국과의 협력을 중시하는 동방정책을 도입했고, 지난해 총리직에 다시 오른 뒤 동방정책을 계속할 것임을 밝혔다. 지난해 11월 한·아세안 정상회의 때 그는 한국이 말레이시아의 모델이라고 하면서 한국의 성장 비결을 배우고 싶다고 했다.
한국의 성장 주목하는 말레이시아
말레이시아 정부는 2024년 고소득국 도약을 목표로 고부가가치산업 육성을 중점 추진하고 있으며 한국을 최적의 파트너로 여기고 있다. 그런 점에서 이번 문 대통령 방문 시 양국 정부가 양자 자유무역협정(FTA) 조기 체결, 4차 산업혁명 시대 공동대응, 사회 인프라 조성 협력, 할랄시장 공동진출 등에 합의한 것은 의미가 크다.
마하티르 총리는 왜 동방정책을 채택했을까. 동방정책은 국가발전 모델을 서구가 아니라 아시아의 일본과 한국에서 찾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동방정책 도입 당시 그의 주변에는 더 발전된 서구를 벤치마킹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반응이 많았다. 이에 대한 마하티르의 생각은 달랐다. 서구의 경험과 업적을 무시하자는 게 아니라 가장 최근에 산업화를 이룬 나라에서 배우는 것이 더욱 효과적일 것이라는 판단이었다. 동방정책의 주된 목표는 일본이었다. 또 마하티르는 회고록에서 한국이 낙후된 국가에서 훌륭한 산업국가로 도약한 가장 최신의 모델을 제시했고, 한국인에게는 일본을 따라잡거나 일본을 능가할 수 있는 뭔가가 존재했기 때문에 한국으로부터 많이 배울 수 있었다고 술회하고 있다.
동방정책의 더 근원적인 배경은 그의 ‘말레이 딜레마(Malay Dilemma)’에서 비롯된 것 같다. 마하티르는 식민통치 및 독립 과정을 겪으면서 말레이인의 문제점에 대해 고뇌했다. 그들은 왜 체념한 채 가난하고 낙후된 생활을 하고 있는가. 그 이유를 서구의 식민지배 잔재에서 찾았고, 말레이인의 자존감을 회복하기 위해 아시아적 전통과 정신에 의거한 ‘아시아적 가치’를 추구했다. 그의 동방정책은 일본과 한국의 산업화 과정을 그냥 본뜨자는 게 아니라 그런 성공의 사회문화적 기반이 무엇인가를 파악해 배우자는 것이었다. 발달된 지식과 기술뿐 아니라 일에 대한 헌신, 근로윤리, 노동문화, 철저함과 근면 등의 가치를 익히길 원했다.
동방정책을 재천명한 마하티르 신정부는 아세안의 결속 강화 등 아시아 외교에 우선순위를 두고 있다. 마하티르는 지난해 아세안 정상회의 때 동아시아 역내 교역에서 공동 결제수단을 활용할 것을 제안하는 등 동아시아 협력을 강조하고 있다. 과거 마하티르는 아세안 및 동아시아 협력 증진에 지대한 공헌을 했다. 당초 5개국으로 출범한 아세안이 1997년 10개국으로 확대되는 데 주도적 역할을 했으며, 동아시아협력그룹(EAEG)을 주창함으로써 훗날 아세안+3(한·중·일) 및 동아시아정상회의(EAS)를 탄생시켰다. 한국이 1989년 아세안과 대화관계를 수립할 때도 큰 도움을 줬다.
新남방정책 성공의 동반자
그러나 마하티르가 마주한 국내외 과제가 만만찮다. 그의 정계 복귀 이유는 나집 라작 전 총리의 부패 및 적폐 청산이었다. 국민의 개혁 열망에 부응하는 동시에 정치통합을 이뤄내야 한다. 특히 안와르 이브라힘 전 부총리(현 인민정의당 대표)에게 총리직을 넘길 것인지, 넘긴다면 언제가 될 것인지가 초미의 관심사다. 안와르는 마하티르 총리 시절이던 1998년 부패 및 동성애 혐의로 축출돼 그와 앙숙 관계였다. 그러나 지난해 총선에서 연대를 이뤄 승리한 뒤 마하티르는 안와르의 총리직 승계를 약속했다. 향후 말레이시아의 민주화 진전은 아세안 여타국의 민주화와 개혁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외교분야에서도 마하티르 총리는 독자적인 목소리를 내고 있다. 미·일의 인도·태평양 전략, 중국의 일대일로(一帶一路) 정책, 인도의 신동방정책 등 지역 질서 재편 과정에서 아세안은 어떤 입장을 취할지, 마하티르 총리는 어떤 ‘아시아적 가치’를 주창할지 관심이다. 이는 우리 신남방정책 성공에 중요한 요소가 아닐 수 없다. “나에게 은퇴란 없다”고 호언했던 마하티르 총리의 행보가 주목되는 이유다.
지난주 말레이시아를 국빈방문한 문재인 대통령은 마하티르 총리와 정상회담을 하고 말레이시아의 동방정책과 한국의 신남방정책이 시너지를 창출할 수 있도록 전략적 협력을 강화하기로 했다. 마하티르 총리는 1982년 일본 및 한국과의 협력을 중시하는 동방정책을 도입했고, 지난해 총리직에 다시 오른 뒤 동방정책을 계속할 것임을 밝혔다. 지난해 11월 한·아세안 정상회의 때 그는 한국이 말레이시아의 모델이라고 하면서 한국의 성장 비결을 배우고 싶다고 했다.
한국의 성장 주목하는 말레이시아
말레이시아 정부는 2024년 고소득국 도약을 목표로 고부가가치산업 육성을 중점 추진하고 있으며 한국을 최적의 파트너로 여기고 있다. 그런 점에서 이번 문 대통령 방문 시 양국 정부가 양자 자유무역협정(FTA) 조기 체결, 4차 산업혁명 시대 공동대응, 사회 인프라 조성 협력, 할랄시장 공동진출 등에 합의한 것은 의미가 크다.
마하티르 총리는 왜 동방정책을 채택했을까. 동방정책은 국가발전 모델을 서구가 아니라 아시아의 일본과 한국에서 찾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동방정책 도입 당시 그의 주변에는 더 발전된 서구를 벤치마킹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반응이 많았다. 이에 대한 마하티르의 생각은 달랐다. 서구의 경험과 업적을 무시하자는 게 아니라 가장 최근에 산업화를 이룬 나라에서 배우는 것이 더욱 효과적일 것이라는 판단이었다. 동방정책의 주된 목표는 일본이었다. 또 마하티르는 회고록에서 한국이 낙후된 국가에서 훌륭한 산업국가로 도약한 가장 최신의 모델을 제시했고, 한국인에게는 일본을 따라잡거나 일본을 능가할 수 있는 뭔가가 존재했기 때문에 한국으로부터 많이 배울 수 있었다고 술회하고 있다.
동방정책의 더 근원적인 배경은 그의 ‘말레이 딜레마(Malay Dilemma)’에서 비롯된 것 같다. 마하티르는 식민통치 및 독립 과정을 겪으면서 말레이인의 문제점에 대해 고뇌했다. 그들은 왜 체념한 채 가난하고 낙후된 생활을 하고 있는가. 그 이유를 서구의 식민지배 잔재에서 찾았고, 말레이인의 자존감을 회복하기 위해 아시아적 전통과 정신에 의거한 ‘아시아적 가치’를 추구했다. 그의 동방정책은 일본과 한국의 산업화 과정을 그냥 본뜨자는 게 아니라 그런 성공의 사회문화적 기반이 무엇인가를 파악해 배우자는 것이었다. 발달된 지식과 기술뿐 아니라 일에 대한 헌신, 근로윤리, 노동문화, 철저함과 근면 등의 가치를 익히길 원했다.
동방정책을 재천명한 마하티르 신정부는 아세안의 결속 강화 등 아시아 외교에 우선순위를 두고 있다. 마하티르는 지난해 아세안 정상회의 때 동아시아 역내 교역에서 공동 결제수단을 활용할 것을 제안하는 등 동아시아 협력을 강조하고 있다. 과거 마하티르는 아세안 및 동아시아 협력 증진에 지대한 공헌을 했다. 당초 5개국으로 출범한 아세안이 1997년 10개국으로 확대되는 데 주도적 역할을 했으며, 동아시아협력그룹(EAEG)을 주창함으로써 훗날 아세안+3(한·중·일) 및 동아시아정상회의(EAS)를 탄생시켰다. 한국이 1989년 아세안과 대화관계를 수립할 때도 큰 도움을 줬다.
新남방정책 성공의 동반자
그러나 마하티르가 마주한 국내외 과제가 만만찮다. 그의 정계 복귀 이유는 나집 라작 전 총리의 부패 및 적폐 청산이었다. 국민의 개혁 열망에 부응하는 동시에 정치통합을 이뤄내야 한다. 특히 안와르 이브라힘 전 부총리(현 인민정의당 대표)에게 총리직을 넘길 것인지, 넘긴다면 언제가 될 것인지가 초미의 관심사다. 안와르는 마하티르 총리 시절이던 1998년 부패 및 동성애 혐의로 축출돼 그와 앙숙 관계였다. 그러나 지난해 총선에서 연대를 이뤄 승리한 뒤 마하티르는 안와르의 총리직 승계를 약속했다. 향후 말레이시아의 민주화 진전은 아세안 여타국의 민주화와 개혁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외교분야에서도 마하티르 총리는 독자적인 목소리를 내고 있다. 미·일의 인도·태평양 전략, 중국의 일대일로(一帶一路) 정책, 인도의 신동방정책 등 지역 질서 재편 과정에서 아세안은 어떤 입장을 취할지, 마하티르 총리는 어떤 ‘아시아적 가치’를 주창할지 관심이다. 이는 우리 신남방정책 성공에 중요한 요소가 아닐 수 없다. “나에게 은퇴란 없다”고 호언했던 마하티르 총리의 행보가 주목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