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닝썬 사태'의 발단이 된 김상교씨가 19일 오전 명예훼손 사건의 피고소인 신분으로 서울 종로구 서울지방경찰청에 출석하며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 연합뉴스
'버닝썬 사태'의 발단이 된 김상교씨가 19일 오전 명예훼손 사건의 피고소인 신분으로 서울 종로구 서울지방경찰청에 출석하며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 연합뉴스
경찰이 ‘버닝썬 폭행’ 사건의 피해자 김상교 씨(28)를 체포하면서 현행범인체포서를 허위로 작성했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국가인권위원회는 19일 작년 11월 24일 경찰이 김 씨를 체포했던 과정에 대해 “현저히 합리성을 잃은 공권력 행사의 남용”이라면서 체포의 필요성을 고려해 체포하도록 범죄수사규칙을 개정하라고 경찰청장에 권고했다.

인권위는 112신고사건처리표, 현행범인체포서, 사건 현장과 지구대에서 확보한 폐쇄회로(CC)TV 영상 등을 확인한 결과 경찰의 체포서가 사실과 상당부분 다르게 작성됐다고 밝혔다. 경찰이 작성한 체포서에는 ‘20여 분간 클럽 보안업무를 방해하였고 경찰관에게 수많은 욕설을 하였다. 피해자가 폭행 가해자 장모씨를 폭행하였다’고 기재돼 있다. 하지만 인권위 확인 결과 피해자는 2분간 클럽 앞에서 쓰레기통을 발로 차고 직원들과 실랑이를 벌인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관에게 욕설을 한 것도 한 차례 뿐이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체포 과정에 대한 경찰의 해명도 거짓이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인권위는 “경찰관들이 피해자에게 진정하라고 몇 차례 말한 사실이 있으나 신분증 제시를 요구하는 과정은 없었다”고 말했다. 당시 출동한 역삼지구대 경찰관들의 입장은 “피해자에게 행패를 부릴 경우 폭행 등 혐의로 체포할 수 있다고 경고했는데 피해자가 신분증도 제시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김 씨가 병원 후송을 거부했다는 경찰 측 주장도 거짓으로 밝혀졌다. 경찰은 “지구대에서 119에 신고했지만 피해자가 후송을 거부했다”며 “119 구급대원들도 ‘응급을 요하는 상황이 아닌 것 같다’면서 돌아갔다”고 주장해 왔다. 하지만 인권위는 “경찰관이 ‘조사가 진행 중이고 응급상황이 아니다’는 이유로 피해자의 병원 후송을 막았던 것으로 확인됐다”면서 “병원 진료가 필요하다는 119 구급대원의 의견이 있었다”고 밝혔다. 도주나 증거인멸의 염려가 없고 피해자가 통증을 호소하면서 치료를 요청하는데도 지구대에 대기하게 했다가 경찰서로 인계한 행위는 피해자의 건강권을 침해한 것이라는게 인권위의 판단이다.

인권위는 경찰관이 현장 도착 후 3분 만에 피해자를 체포하는 등 체포에 합리성도 없었다고 판단했다. 인권위는 “피해자가 약 20초간 경찰관에게 항의하자 (경찰관이) 피해자를 갑자기 바닥에 넘어뜨려 현장 도착 후 3분 만에 체포했다”고 밝혔다. 경찰은 이 과정에서 수갑을 채운 후에야 체포한다고 말하는 등 미란다원칙도 어겼다. 인권위는 “미란다 원칙을 고지하지 못할 정도로 급박한 사정이 있었다고 볼 수 없다”고 했다.

경찰관들의 초동조치도 적절하지 않았다는 게 인권위 측 지적이다. 인권위는 “경찰관들이 피해자와 클럽 직원 간의 실랑이를 보고도 곧바로 하차해 제지하지 않았다”면서 “피해자와 클럽 직원들을 분리하지 않은 상태에서 피해자의 신고 내용을 청취해 2차 말다툼이 발생하게 했다”고 밝혔다. 또 “신고자의 피해 진술을 충분히 청취하거나 이를 직접 확인하려는 적극적인 조치가 부족했다”고 덧붙였다.

인권위에 따르면 김 씨의 어머니는 작년 12월 23일 버닝썬 폭행사건과 관련해 진정을 제기했다. 피해자 김 씨가 클럽 직원들로부터 폭행을 당해서 112에 신고했는데 오히려 현행범으로 체포됐고, 김 씨가 제대로 치료조차 받을 수 없게 경찰이 막았다는 내용이다.

인권위는 체포의 필요성을 고려해 체포하도록 범죄수사규칙을 개정하라고 경찰청장에게 권고했다. 인권위는 “현행범 체포가 현장에서 오·남용되면 영장주의 원칙이 퇴색된다”고 설명했다. 인권위는 또 강남경찰서장에게도 당시 폭행 사건을 담당했던 책임자급 경찰관들에 대해 주의조치를 내리고 직무교육을 실시하라고 권고했다. 인권위는 “체포된 사람에게 신병 확보가 반드시 요구되지 않는다면 적절한 치료를 받을 수 있게 해야 한다”면서 “업무 관행을 개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울지방경찰청 합동조사단장은 이에 대해 “해당 사안에 대해 관련자료 확인 및 외부자문 등 조사 절차가 마무리 단계인만큼 인권위의 권고를 충분히 검토해 조만간 공식입장과 개선책을 발표하겠다”고 밝혔다.

이날 서울지방경찰청 사이버수사대에 피고소인 신분으로 출석한 김 씨는 사건 당시 출동했던 강남 역삼지구대 경찰관들의 유착 의혹에 대해 “확신할 수는 없지만 전체적인 상황을 봤을 때는 의혹을 가질만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또 “저 말고도 유사한 피해자가 많다는 것을 느꼈다”면서 “피해자와 제보자 등이 많이 나타났는데 (그들의) 이야기를 들었을 때 국민들에게 알려야 한다고 생각이 들었다”고 밝혔다.

장씨와 사건 당일 출동했던 경찰관 2명은 김씨의 주장이 허위사실이라며· 정보통신망법상 명예훼손 혐의로 김씨를 고소했다.

조아란 기자 arch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