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준동의 데스크 시각] 금융허브, 서울만도 쉽지 않다
미국에서 금융허브(금융중심지)는 뉴욕이 첫손가락, 시카고가 두 번째 손가락에 꼽힌다. 뉴욕이 은행과 증권 중심이라면 시카고는 선물 중심이다. 시카고에서 금융이 싹튼 것은 1840년대부터다. 중서부의 상인들이 시작했다. 이들은 밀 옥수수 콩 등을 뉴욕 보스턴 등 미국 동부로 보냈는데 때론 큰 손실을 입기도 했다. 동부와의 거리는 멀고 작황과 기후는 예측할 수 없다 보니 곡물값이 폭락하는 일도 꽤 있었다. 이런 예기치 못한 손실을 줄이기 위해 선물거래에 집중했다. 선물상품의 규격과 거래 규칙을 만들었다. 이를 취급하는 거래소도 설립했다.

시카고는 뉴욕과 경쟁관계

시카고 금융은 규모 측면에선 뉴욕에 다소 뒤진다. 선물과 옵션이 현물에서 파생됐기 때문이다. JP모간, 골드만삭스 등 대형 은행과 증권사는 모두 뉴욕에 있다. 시카고는 하지만 뉴욕에 애걸복걸하지 않았다. 큰 은행 본점을 시카고로 보내달라고 한 적이 없다. 연방정부에 도움을 요청하지도 않았다.

대신 선택한 전략은 자체 경쟁력 강화. 시카고는 취급 상품을 확대했다. 세계 최초 타이틀도 많다. 시카고상업거래소(CME)그룹은 홈페이지에서 통화선물(1972년), 금리선물(1972년), 주가지수선물(1982년), 날씨선물(1999년) 등을 처음으로 시작했다고 소개하고 있다. CME그룹은 11년 전 뉴욕상업거래소(NYMEX)도 흡수합병했다. 뉴욕이 가상화폐 규제에 골몰하는 틈을 타 가상화폐 선물거래도 시작했다. 이 때문에 미국은 물론 세계 주요 금융사는 시카고에 선물옵션 데스크를 두고 있다.

미국처럼 한 국가에 금융허브라고 할 만한 도시가 두 곳 있는 나라는 중국밖에 없다. 중국의 금융허브는 홍콩과 상하이다. 홍콩이 중국에 반환된 이후 선전은 금융에선 범(汎)홍콩권으로 친다. 중국에서 제2 금융허브가 가능한 것은 미국처럼 땅이 넓어서다. 홍콩이 남쪽에 치우쳐 있다 보니 상하이는 자연스레 동북부의 기업과 금융소비자를 차지할 수 있었다. 상하이 푸둥 금융가가 커지다 보니 외국 금융사도 이곳에 거점을 차렸다.

부산은 서울과 윈윈 모색해야

한국 정부가 2009년 1월 서울과 부산을 동시에 금융허브로 키우겠다고 나섰지만 부산은 물론 서울도 금융허브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영국계 컨설팅업체 지옌그룹이 공표하는 국제금융센터지수(GFCI) 순위가 이를 말해준다. 이달 평가에서 서울이 36위, 부산은 46위다. 지옌은 10위 바깥 도시에 대해선 이유도 코멘트하지 않는다. 금융허브로 대접하지 않는 것이다.

서울도 금융허브 경쟁력 순위가 올랐던 때가 있다. 여의도에 서울국제금융센터(IFC)가 완공되고 외국 금융사가 입주할 때였다. 30~50위권에 맴돌다 2015년 9월 6위까지 올랐다. 하지만 그게 전부였다. 이후 미끄럼틀을 탔다. 자산관리공사 주택금융공사 신용보증기금 등 금융공기업이 지방으로 이전한 여파가 크다. 허브라는 말대로 모여 있어야 하는데 흩어지다 보니 경쟁력이 없다.

이 와중에 부산은 산업은행 수출입은행 등 국책은행 이전을 요구하고 있다. 이대로 되면 제로섬 게임이다. 시카고가 보여줬던 포지티브섬과는 정반대다. 부산은 서울 것을 뺏지 않고 경합하며 성장해야 한다. 윈윈 전략이다. 목표로 내건 대로 해양과 파생 분야에 집중해야 한다. 시간이 오래 걸릴 수밖에 없다.

전주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반드시 금융허브를 해야 하는지 묻고 싶다. 제3의 길이 아예 없지는 않을 것 같다.

jdpow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