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칼럼] 조울증에 빠진 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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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년 블랙먼데이 때 美 정신병원 입원 급증
요즘 한국 청년·노년층 조울증 증가세 뚜렷
성장을 통한 富 축적 기회의 중요성 알아야
안동현 < 서울대 교수·경제학 >
요즘 한국 청년·노년층 조울증 증가세 뚜렷
성장을 통한 富 축적 기회의 중요성 알아야
안동현 < 서울대 교수·경제학 >
‘블랙 먼데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1987년 10월 19일의 세계 주식시장 폭락 사태는 금융시장 참여자들에게 여전히 쓰라린 기억으로 남아 있다. 이날 미국 다우지수는 하루 만에 22.6%나 폭락했다. 미국 주식시장 역사상 최악의 하루로 꼽힌다.
이 사건을 조금 다른 시각에서 조망한 흥미로운 연구가 몇 년 전 발표됐다. 미국 UC샌디에이고의 엥겔버그와 파슨스, 두 교수가 금융저널(Journal of Finance)에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블랙 먼데이 당일 정신병원 입원율은 정상적인 수준에 비해 5% 이상,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수준으로 급증했다고 한다. 폭락 다음날인 화요일에는 주식시장이 절반 이상 회복됐음에도 입원율 하락 현상이 나타나지 않았다고 하니 주가 폭락이 사람들에게 얼마나 큰 정신적 충격을 줬는지 짐작할 만하다.
이 논문이 학문적으로 주목받은 이유는 분석 결과가 재귀적 효용(recursive utility)으로 불리는 새로운 효용함수에 대한 강력한 증거로 받아들여질 수 있기 때문이다. 전통적으로 경제학은 특정 경제주체가 현재 시점에서 체감하는 효용은 현재 소비 규모에서 창출된다고 가정했다. 반면 재귀적 효용은 현재 소비 못지않게 미래 소비에 대한 기대 효용이 현시점의 효용에 투영돼 결과적으로 현재 보유한 부의 정도가 현재 효용에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쉽게 말해 왜 사람들이 부의 변화에 민감한지를 더욱 극명하게 설명할 수 있다. 경기 침체나 주가 폭락이 왜 개인의 효용에 그렇게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지를 설명할 수 있다.
이렇듯 경제적인 상황이 정신 건강에 영향을 주는 사례는 적지 않다. 경기 침체와 사망률 및 기대 수명의 관계 역시 간간이 반대되는 분석 결과가 나오지만 대체로 높아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분석 시기나 지역에 관계없이 경기 침체와 자살률은 강력한 양(+)의 상관관계를 보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거시적인 경제 성장 문제가 개인의 정신 건강에 지대한 영향을 주는 셈이다.
최근 국민건강보험공단 발표에 따르면 한국의 조울증 환자 수는 2013년부터 2017년 사이 연평균 4.9% 증가했다고 한다. 특히 70대 이상은 12.2%, 20대는 8.3%로, 전 세대 중에서도 유독 청년층과 노년층의 증가율이 두드러졌다. 인구 구조의 변화로 노년층 인구가 증가하는 것을 감안하더라도 12.2%의 증가율은 주목할 만한 수치며, 전체 인구에서 비중이 점점 줄어드는 청년층이 두 번째로 높은 증가율을 보인 것 역시 놀라운 현상이다. 한국 사회의 경제 현안 중에서도 가장 풀기 어려운 난제로 꼽히는 청년 실업과 노인 빈곤 문제가 극명하게 투영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전문가들은 조울증이 현대인의 대표적 정신질환으로, 사회적·경제적 실패와 좌절이 주된 원인이라고 설명한다. 조울증의 구체적인 증상을 살펴보면 극단적인 낙관에 빠져 있는 조증(mania) 상태에서는 모든 일에 자신감과 활력이 넘친다. 언뜻 보면 좋은 것처럼 들릴 수 있으나 지나친 고양감이 판단력을 흐리게 해 과소비나 극단적인 투자 또는 신체적으로 위험한 행동을 거리낌없이 하게 되기도 한다. 반면 우울증(depression) 상태에서는 정반대로 의욕이 저하되고 자신감이 떨어진다.
위에 언급한 엥겔버그·파슨스 교수의 연구 결과와 지난 몇 년간 지속된 한국의 성장률 저하를 결합해보면 최근의 조울증 환자 급증 현상은 단순히 개인의 정신 건강상 추이 변화가 아니라 경제 성장률 부진과 밀접한 관련이 있을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특히 청년층과 노인층 환자 급증 현상을 보면 더욱 그렇다. 성장률 하락은 개인의 노력 범위 안에서 성취할 수 있는 기회 집합을 현저히 축소시킨다. 최선을 다해 노력해도 좋은 결과를 얻기 어려우니 자발적 실업 등 아예 무언가를 포기하는 선택으로 내몰리고, 정상적인 방식의 노력으로는 원하는 결과를 얻기 어려우니 가상화폐 투기와 같이 낮은 확률의 도박성 투자에 지나치게 집착하게 되기도 한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이 발표한 조울증 추이 결과는 결국 성장을 통한 부(富)의 축적 기회가 개인에게 얼마나 중요한지를 다시금 일깨운다.
이 사건을 조금 다른 시각에서 조망한 흥미로운 연구가 몇 년 전 발표됐다. 미국 UC샌디에이고의 엥겔버그와 파슨스, 두 교수가 금융저널(Journal of Finance)에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블랙 먼데이 당일 정신병원 입원율은 정상적인 수준에 비해 5% 이상,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수준으로 급증했다고 한다. 폭락 다음날인 화요일에는 주식시장이 절반 이상 회복됐음에도 입원율 하락 현상이 나타나지 않았다고 하니 주가 폭락이 사람들에게 얼마나 큰 정신적 충격을 줬는지 짐작할 만하다.
이 논문이 학문적으로 주목받은 이유는 분석 결과가 재귀적 효용(recursive utility)으로 불리는 새로운 효용함수에 대한 강력한 증거로 받아들여질 수 있기 때문이다. 전통적으로 경제학은 특정 경제주체가 현재 시점에서 체감하는 효용은 현재 소비 규모에서 창출된다고 가정했다. 반면 재귀적 효용은 현재 소비 못지않게 미래 소비에 대한 기대 효용이 현시점의 효용에 투영돼 결과적으로 현재 보유한 부의 정도가 현재 효용에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쉽게 말해 왜 사람들이 부의 변화에 민감한지를 더욱 극명하게 설명할 수 있다. 경기 침체나 주가 폭락이 왜 개인의 효용에 그렇게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지를 설명할 수 있다.
이렇듯 경제적인 상황이 정신 건강에 영향을 주는 사례는 적지 않다. 경기 침체와 사망률 및 기대 수명의 관계 역시 간간이 반대되는 분석 결과가 나오지만 대체로 높아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분석 시기나 지역에 관계없이 경기 침체와 자살률은 강력한 양(+)의 상관관계를 보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거시적인 경제 성장 문제가 개인의 정신 건강에 지대한 영향을 주는 셈이다.
최근 국민건강보험공단 발표에 따르면 한국의 조울증 환자 수는 2013년부터 2017년 사이 연평균 4.9% 증가했다고 한다. 특히 70대 이상은 12.2%, 20대는 8.3%로, 전 세대 중에서도 유독 청년층과 노년층의 증가율이 두드러졌다. 인구 구조의 변화로 노년층 인구가 증가하는 것을 감안하더라도 12.2%의 증가율은 주목할 만한 수치며, 전체 인구에서 비중이 점점 줄어드는 청년층이 두 번째로 높은 증가율을 보인 것 역시 놀라운 현상이다. 한국 사회의 경제 현안 중에서도 가장 풀기 어려운 난제로 꼽히는 청년 실업과 노인 빈곤 문제가 극명하게 투영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전문가들은 조울증이 현대인의 대표적 정신질환으로, 사회적·경제적 실패와 좌절이 주된 원인이라고 설명한다. 조울증의 구체적인 증상을 살펴보면 극단적인 낙관에 빠져 있는 조증(mania) 상태에서는 모든 일에 자신감과 활력이 넘친다. 언뜻 보면 좋은 것처럼 들릴 수 있으나 지나친 고양감이 판단력을 흐리게 해 과소비나 극단적인 투자 또는 신체적으로 위험한 행동을 거리낌없이 하게 되기도 한다. 반면 우울증(depression) 상태에서는 정반대로 의욕이 저하되고 자신감이 떨어진다.
위에 언급한 엥겔버그·파슨스 교수의 연구 결과와 지난 몇 년간 지속된 한국의 성장률 저하를 결합해보면 최근의 조울증 환자 급증 현상은 단순히 개인의 정신 건강상 추이 변화가 아니라 경제 성장률 부진과 밀접한 관련이 있을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특히 청년층과 노인층 환자 급증 현상을 보면 더욱 그렇다. 성장률 하락은 개인의 노력 범위 안에서 성취할 수 있는 기회 집합을 현저히 축소시킨다. 최선을 다해 노력해도 좋은 결과를 얻기 어려우니 자발적 실업 등 아예 무언가를 포기하는 선택으로 내몰리고, 정상적인 방식의 노력으로는 원하는 결과를 얻기 어려우니 가상화폐 투기와 같이 낮은 확률의 도박성 투자에 지나치게 집착하게 되기도 한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이 발표한 조울증 추이 결과는 결국 성장을 통한 부(富)의 축적 기회가 개인에게 얼마나 중요한지를 다시금 일깨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