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영자총협회가 주최한 ‘통상임금 신의칙 심포지엄’이 19일 서울 세종대로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렸다. 왼쪽부터 김준기 한국자동차산업협회 실장, 조영길 법무법인 아이앤에스 대표변호사, 김희성 강원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이정 한국외국어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김강식 한국항공대 경영학부 교수, 이지만 연세대 경영학과 교수.  /김범준  기자  bjk07@hankyung.com
한국경영자총협회가 주최한 ‘통상임금 신의칙 심포지엄’이 19일 서울 세종대로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렸다. 왼쪽부터 김준기 한국자동차산업협회 실장, 조영길 법무법인 아이앤에스 대표변호사, 김희성 강원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이정 한국외국어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김강식 한국항공대 경영학부 교수, 이지만 연세대 경영학과 교수. /김범준 기자 bjk07@hankyung.com
“대법원의 시영운수 판결로 기업들이 걷잡을 수 없는 혼란에 빠졌다.”(김희성 강원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통상임금 범위 확대로 임금 상승과 수출 감소가 우려된다.”(김강식 한국항공대 경영학부 교수)

법원의 원칙 없는 통상임금 판결로 기업들의 혼란만 커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한국경영자총협회가 19일 서울 세종대로 프레스센터에서 연 ‘통상임금 신의칙 심포지엄’에서다. 비판은 지난달 나온 대법원 판결에 집중됐다. 대법원이 신의성실의 원칙 적용 기준을 명확하게 제시하지 않았다는 지적이다. 되레 신의칙을 엄격하고 신중하게 적용해야 한다는 ‘가이드라인’을 내놔 노사 갈등을 부채질하고 있다는 비판도 제기됐다.

사실상 사라진 ‘신의칙’

한국경영자총협회가 주최한 ‘통상임금 신의칙 심포지엄’이 19일 서울 세종대로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렸다. 왼쪽부터 김준기 한국자동차산업협회 실장, 조영길 법무법인 아이앤에스 대표변호사, 김희성 강원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이정 한국외국어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김강식 한국항공대 경영학부 교수, 이지만 연세대 경영학과 교수.  김범준  기자  ♣♣bjk07@hankyung.com
한국경영자총협회가 주최한 ‘통상임금 신의칙 심포지엄’이 19일 서울 세종대로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렸다. 왼쪽부터 김준기 한국자동차산업협회 실장, 조영길 법무법인 아이앤에스 대표변호사, 김희성 강원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이정 한국외국어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김강식 한국항공대 경영학부 교수, 이지만 연세대 경영학과 교수. 김범준 기자 ♣♣bjk07@hankyung.com
이날 심포지엄이 열린 계기는 지난달 14일 나온 대법원의 통상임금 관련 판결이다. 대법원은 인천 시영운수 소속 버스기사 22명이 “정기상여금을 포함한 통상임금을 재산정해 이에 따른 추가 수당을 지급하라”며 회사를 상대로 낸 임금청구소송 상고심에서 원심을 깨고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근로자의 요구가 신의칙에 위배된다”며 추가 수당을 주지 않아도 된다고 한 기존 1·2심 판결을 뒤집었다. 기업이 경영위기에 빠질 가능성에 대한 판단 기준을 더 엄격하게 적용해야 한다는 모호한 기준까지 덧붙였다. 재판부는 “경영난을 이유로 통상임금 재산정에 따른 추가 법정수당 청구를 배척한다면 기업 경영의 위험을 사실상 근로자에게 전가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심포지엄에선 우선 법리적 문제부터 제기됐다. 2013년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기업에 중대한 경영상 어려움이 발생하면 ‘노사 모두에’ 위험하다는 취지로 신의칙이란 기준을 제시했다. 이번 판결로 인해 이 원칙이 사실상 사라졌다는 주장이다. 김희성 교수는 “기업 경영에 따른 위험이 근로자에게만 전가될 수 있다는 대법원의 이번 판결은 기존 전원합의체 의견에 정면으로 반하는 것”이라며 “새로운 전원합의체 판결을 거치지 않고 소부(민사 2부)가 다른 법리를 제시한 것은 위법 소지가 있다”고 주장했다.

대법원이 내놓은 ‘경영상 어려움’의 근거도 설득력이 부족한 것으로 지적됐다. 대법원은 시영운수의 연간 매출과 인건비, 이익잉여금 등을 고려했을 때 추가 수당을 지급하더라도 안정적으로 사업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조영길 법무법인 아이앤에스 대표변호사는 “시영운수의 보유 현금은 5400만원에 불과하고 부채 비율은 1233%에 달하는데, 이 같은 재무 여건이 모두 간과됐다”며 “이익잉여금(3억원)을 근거로 임금 지급 여력이 있다고 판단한 것은 회계에 대한 무지를 드러낸 것”이라고 비판했다.

인건비 상승·일자리 감소 우려

통상임금 범위 확대에 따른 인건비 상승과 일자리 감소 등 ‘도미노 파장’을 걱정하는 목소리도 이어졌다. 김강식 교수는 “자동차 및 철강, 전자 등 주요 산업 대부분이 통상임금 범위 확대로 직격탄을 맞게 될 것”이라며 “임금 상승으로 수출액은 연간 8억7000만~75억3000만달러, 외국인 직접투자는 연간 2490만~9790만달러 감소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노민선 중소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대기업에 의존하는 중소기업의 임금과 고용에도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내다봤다.

‘오락가락’ 판결의 폐해를 꼬집는 비판도 제기됐다. 조영길 대표변호사는 “대법원이 1·2심 판결을 뒤집으면서 기업만 엄청난 혼란과 충격에 빠지게 됐다”고 했다.

각급 법원에서 진행 중인 100여 건의 통상임금 관련 소송에서 기업들의 ‘줄패소’가 이어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경총 관계자는 “대법원이 하급심 재판부에 사측의 ‘경영난 주장’을 어지간하면 받아들이지 말라는 신호를 준 것”이라고 답답해했다.

■신의성실의 원칙

계약 관계에 있는 당사자들이 권리를 행사하거나 의무를 이행할 때 상대방의 정당한 이익을 고려하고 신뢰를 저버리지 않도록 행동해야 한다는 민법(제2조 1항)상 원칙. 대법원은 2013년 근로자의 통상임금 소급 적용 청구로 회사에 중대한 경영상 위기가 발생하면 이 원칙에 위배돼 허용할 수 없다고 판결했다.

장창민/박상용 기자 cmj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