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편견을 버리면 시장이 보인다
“화장품은 서방국가들의 러시아 제재와 아무 상관없는 품목입니다. 정확히 알지 못한 채 겁먹고 비즈니스가 위축되면 안 됩니다.”

올초 산업통상자원부와 KOTRA가 기업들을 상대로 연 ‘세계시장 진출전략 설명회’에서 미국에 화장품을 수출하는 업체가 러시아 제재를 두려워해 거래를 못 하는 사례를 해당 지역 본부장이 소개하자 여기저기서 청중의 탄성이 들렸다.

글로벌 시장에 대한 편견과 오해가 많다. 미개척 신흥시장일수록 더 그렇다. 아프리카 지역은 내전, 에볼라 등을 연상하면서 ‘멀다, 위험하다, 어렵다’고 인식한다. 중동 지역은 테러, 이슬람, 사막 등을 떠올려 ‘위험하다, 억압적이다, 힘들다’고 생각한다. 러시아는 어떤가. 1년 내내 춥고 생필품이 부족하며 옛 소련 시절 비밀경찰(KGB)이 아직도 행인들을 감시, 통제한다고 여긴다. 인도는 힌두교의 독특한 장례문화, 카스트제도, 길거리를 돌아다니는 소 등을 떠올려 느리고 게으르고 지저분한 곳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 실제 모습은 많이 다르다. 아프리카 대륙 전체가 내전과 빈곤에 시달리는 미개한 지역은 아니다. 우간다는 4500만 명 인구 중 휴대폰과 인터넷 사용자가 3000만 명을 넘는다. 모바일 금융과 온라인 유통도 이미 생활 깊숙이 들어와 있다. 르완다는 드론을 활용해 오지의 의료진에 혈액과 의료용 소모품을 배송하는 서비스를 하고 있다.

중동은 30대 미만이 전체 인구의 절반을 넘는 젊은 대륙이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여성의 운전을 허용하는 등 여성의 사회 진출이 늘고 있다. 소득도 증가해 소비재 시장이 급성장하고 있다. 유가 회복으로 인프라 및 건설 프로젝트 시장도 활기를 띠고 있다. 러시아, 인도, 중남미의 시장 잠재력은 따로 설명이 필요 없을 것 같다.

이런 잠재력에도 불구하고 편견 탓에 이들 지역에 대한 우리의 수출과 투자 진출은 미약한 수준이다. 중국과 미국, 동남아시아 등 일부 지역에 편중된 나머지 진출 기회를 잃고 있지 않은지 돌아봐야 한다. 무관심해서 무지하고, 무시하게 되는 어리석음을 반복하지 말아야 한다.

올해 교역환경이 어렵다고 하소연만 할 수는 없다. 미개척 시장에 대한 편견부터 바로잡아야 한다. “멀고 어렵고 위험해 보여 망설였는데, 막상 와보니 기대됩니다.” 지난해 11월 남아프리카공화국 케이프타운에서 열린 한류 소비재 행사에 참가한 한 기업인에게 들은 얘기다. 이렇게 말하면서 미개척 시장의 출장길을 동행하는 우리 기업인들을 앞으로 많이 볼 수 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