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포럼] 오픈뱅킹, 파이마겟돈 금융 격변의 개막
지난달 금융위원회가 하반기 ‘금융결제 인프라 혁신 방안’을 발표하면서 ‘오픈뱅킹(open banking)’이 가시권에 들어왔다. 작년 유럽연합(EU)의 오픈뱅킹 도입으로 인해 본격화된 금융산업의 글로벌 트렌드로, 시중은행 결제·송금망과 고객정보의 외부 개방이 핵심이다. 소비자들은 PC, 스마트폰, 태블릿 등 모든 기기와 운영체제(OS)에서 표준화된 결제 프로그램으로 자신의 모든 금융정보 접근과 거래가 가능해진다. 공급 측면에서 제3자들이 개방된 금융결제망과 고객정보에 접근해 서비스를 개발하고 제공하게 된다. 아날로그 질서에 기반한 기존 금융기업의 경쟁우위가 약화되면서 디지털 핀테크(금융기술) 기업이 촉발하는 격변이 개막됐다.

문명은 연결을 통해 가치를 창출한다. 문자로 사람을, 물류로 지역을, 무역으로 세계를 연결하면서 발전해 왔다. 기술 발달로 생겨나는 연결망의 독점적 확보는 차세대 주도권의 확보로 이어졌다. 산업혁명 이후 아날로그 시대의 철도회사, 전화회사, 공중파 방송국 등의 네트워크 사업자들이 성장한 과정이다. 전통적 은행도 각지에 개설한 지점 네트워크를 통한 결제가 핵심 서비스다. 높은 신뢰도와 안정성이 필요한 업무 특성상 결제망과 고객정보는 제3자의 접근을 허용하지 않는 폐쇄적 구조로 운영되는 자연적 진입장벽이었다. 하지만 디지털 기술은 이런 장벽을 모두 없애버렸다. 보안 기술이 발달하고 핀테크로 통칭되는 디지털 기술이 출현하면서 개방적 인터넷망으로도 자금이체 등 높은 신뢰도가 필요한 업무 처리가 가능해졌다.

디지털 기술 발전이 도입 배경인 오픈뱅킹의 핵심은 은행이 독점하던 고객정보에 제3자가 접근하면서 생겨나는 소비자로의 권력이동에 있다. 저명한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는 1990년 《권력이동》에서 미국 의사들의 권력이 환자로 이동하는 과정을 설명했다. 과거 의사들이 라틴어로 처방전을 작성하고, 환자 정보를 독점하면서 누렸던 권위는 인터넷 보급으로 환자들이 자신의 질환을 포함한 다양한 의료정보에 접근하면서 퇴조했다. 마찬가지로 과거 은행이 독점하던 고객정보에 제3자가 접근해 다양한 서비스를 개발하고 제공하는 오픈 뱅킹의 도입은 소비자로의 권력이동을 의미한다.

오픈뱅킹 시대에 은행의 생존전략은 금융서비스 플랫폼 변신으로, 채널과 서비스의 조합이라는 관점에서 네 가지의 전략적 선택지를 생각해 볼 수 있다. 먼저 독자 채널에 독자 금융서비스 중심의 플랫폼을 구성하는 방향이다. 지주사 형태로 은행, 보험, 증권 등 복합서비스 제공 기반을 확보하고 대규모 투자여력이 있는 대형 사업자가 추진할 수 있는 방향이다. 보완적으로 제3자 서비스를 결합해 일종의 금융서비스 포털을 지향한다.

두 번째는 독자 채널에 제3자 서비스를 결합하는 플랫폼이다. 농수축산업, 자영업자 등 특정시장에서 구축한 입지를 기반으로 관련 정보와 서비스를 제공하는 틈새 플랫폼의 개념이다. 세 번째로는 제3자의 채널을 통해 독자 금융서비스를 판매하는 방식으로 중소 규모 금융 사업자의 선택지로 가능하다. 향후 다양한 플랫폼 사업자들이 자신의 고객을 기반으로 금융서비스를 제공하려 할 것이다. 이들의 고객정보를 분석해 적절한 금융서비스를 개발하는 협업 방식이다.

마지막으로 제3자의 채널을 통해 제3자의 서비스를 판매하는 방식이다. 데이터 분석과 상품 개발에 우위를 가진 핀테크 기업들이 금융서비스 개발 전문기업으로 포지셔닝하는 방향이다.

정보기술 발달에도 불구하고 과도한 규제와 기득권으로 인해 국내 금융산업의 혁신은 지체돼 왔다. 오픈뱅킹 도입은 금융산업에서 아날로그 질서가 퇴조하고 디지털 신질서가 수립되는 격변의 기폭제가 될 것이다. ‘아마겟돈(armageddon·대혼란)’ 국면의 자동차산업을 ‘카마겟돈(car-mageddon)’으로 표현하듯이 금융산업의 ‘파이마겟돈(fin-mageddon)’으로 비유할 수 있다. 1997년 외환위기 직후 우리나라 5대 은행이 모두 간판을 내렸던 수준의 판도 변화가 예상되는 격변의 시대로 진입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