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열발전 지진위험…사업자는 과소평가, 정부는 관리방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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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자가 만든 매뉴얼 만으로 시행…정부는 사업자 판단만 믿어
정부조사단 "물 주입 직후 지진 조사했다면 7개월후 본진 막았을텐데"
포항지진은 지열발전이 지진을 일으킬 수 있다는 점을 알고도 그 위험을 과소평가한 사업자와 제때 개입하지 않은 정부의 관리 부실이 빚은 참사로 평가된다.
사업자는 지열발전이 유발할 수 있는 지진을 '관리'할 수 있다고 오판했고, 정부는 사업자 판단을 검증하지 않았으며, 운이 나쁘게도 지열발전소 밑에 아무도 몰랐던 단층이 있었다.
◇ 지진위험 과소평가한 '위험한 물장난'
포항에 짓던 지열발전소는 화산지대가 없는 곳에서도 지하 5km 내외의 지열로 증기를 만드는 '인공 저류층 생성기술'(EGS)을 활용했다.
이 기술은 땅 깊이 물을 주입하는 수리자극을 하는데 물이 암반을 잘 통과하도록 강한 수압으로 균열을 만드는 과정에서 규모가 작은 지진인 미소진동이 발생할 수 있다. 포항지열발전소 사업을 시작했던 2010년 당시에도 외국 사례 등을 통해 국내 학계와 관련 업계에 잘 알려진 내용이다.
바른미래당 이찬열 의원실이 입수한 '포항 EGS 프로젝트 미소진동 관리방안'(이하 관리방안)을 보면 이 보고서를 작성한 지열발전사업 컨소시엄도 지진 발생 위험성을 인지했다.
컨소시엄은 2008년 스위스 바젤에서 발생한 규모 3.4 지진의 가장 주요한 원인으로 지열발전이 지목된 점을 언급하고서 "미소진동이 특정 규모 이상으로 발생하지 않도록 지속적인 모니터링과 적절한 수리자극 수준을 유지하는 안전한 관리방안이 필요하다"고 명시했다.
컨소시엄은 지진위험을 안전하게 관리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이지만, 포항지진 정부조사연구단은 현재 과학기술로는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판단했다.
정부조사연구단은 보고서에서 "물 주입이 유발한 지진이 알려지지 않았던 단층을 활성화했고, 포항 본진을 촉발했다.
지금의 모델로는 이런 복잡성과 단층에 유발된 압력변화가 더 큰 규모의 런어웨이(run-away·폭주하는) 지진을 촉발할 가능성을 충분히 예측하지 못한다"고 밝혔다.
포항지열발전소에는 스위스 바젤 지열발전소 개발자 마커스 해링 등 외국 전문가가 자문으로 참여했지만, 이들도 규모 5.4 지진을 예상하지 못했다.
지열발전소 주관사인 넥스지오 관계자는 "현재 정부조사단 결과 발표를 겸허한 마음으로 면밀히 검토하고 있으며, 검토 후 지열발전 과제 연구단(컨소시엄) 차원에서 입장을 발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 사업자 매뉴얼에만 의존한 위험관리
미국은 2009년 샌프란시스코 북부 '더 가이저(The Geysers)' 지역의 지열발전사업의 지진위험이 논란이 되자 지열발전소와 지진의 연관성을 연구, 발전사업자들이 유발지진에 대응할 수 있는 지침을 2012년 발간했다.
그러나 포항 지열발전소는 유발지진을 안전하게 관리하기 위한 정부 차원의 지침이나 규정 없이 추진됐다.
대신 컨소시엄이 스위스 바젤 등 다른 국가 사례를 참고해 만든 신호등체계(Traffic Light System)를 활용했다.
신호등체계는 지진 규모별로 물 주입 감소·중단, 배수, 정부 보고 등의 조치를 정한 위험관리 방안이다.
산업통상자원부 관계자는 "넥스지오가 자체적으로 만든 매뉴얼인데 넥스지오는 '해외사례를 참고해 만든 글로벌 스탠다드'라고 했다"고 전했다.
신호등체계는 지진 규모가 2.0 이상이면 정부 연구개발사업을 관리하는 에너지기술평가원에 보고하고, 2.5 이상이면 정부에까지 보고하도록 했다.
당초 '관리방안'에서는 2.0부터 정부에 보고하도록 했지만, 실제 적용된 체계는 정부 보고를 2.5 이상으로 완화했다.
정부조사연구단에 따르면 컨소시엄이 지열정 시추를 시작한 2015년 11월부터 2017년 11월 15일 포항지진까지 지열발전소와 연관성이 있는 크고 작은 지진 98건이 발생했다.
그러나 정부에 보고된 건 2017년 4월 15일 발생한 규모 3.1 지진뿐이었다.
이강근 정부조사연구단장은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신호등체계는 당연히 있어야 하는 운영매뉴얼인데 포항은 국제기준에 비춰 좀 완화됐다"며 "장소마다 필요한 수준이 달라 어느 정도가 적합하다고 말하기 어렵지만, 포항은 결과적으로 보면 썩 좋은 신호등체계가 아니었다"고 말했다. ◇ "지진위험 알았을텐데…" 관리 '손 놓은' 정부
산업부는 2017년 4월15일 물 주입 이후 3.1 규모의 지진이 발생한 이틀 뒤인 4월 17일 컨소시엄이 신호등체계에 따라 주입 중단과 배수 조치 등을 했다는 보고를 받았지만 별 조치를 하지 않았다.
이후 넥스지오는 서울대, 지질자원연구원 등과 논의해 물 주입 재개를 결정했다.
산업부는 당시 결정에 대해 해명자료에서 "정부가 결론을 내린 게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지열발전소는 정부 예산을 받는 정부 연구개발사업으로 추진됐지만, 정부는 지진위험에 대해 아무것도 하지 않은 셈이다.
여러 전문가는 4월 15일 지진 직후 제대로 조사했다면 7개월 후인 11월 15일 발생한 규모 5.4의 지진을 막을 수도 있었다고 본다.
이강근 단장은 "우리가 분석한 자료들은 새로운 게 아니라 이미 포항지진 전에 있었던 것"이라며 "4월 15일 지진 이후 바로 조사했다면 좀 더 많이 알 수 있었을 텐데 아쉽다"고 말했다.
포항 지열발전소 컨소시엄에는 주관기관인 넥스지오 외에 정부출연연구기관인 지질자원연구원과 건설기술연구원이 참여했다.
어떤 정부 부처나 기관이 지열발전의 위험을 언제 얼마만큼 알고 있었는지는 향후 정부 조사에서 밝혀질 사안이지만, 적어도 이들 정부출연 연구기관만큼은 지진 가능성을 알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정부 관계자는 "이미 학계 등에 널리 알려진 사실인 만큼 정부도 알고는 있었을 것"이라면서도 "다만 그 정도로 위험한지는 몰랐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사업 추진 과정에서 문제가 없었는지 조사하겠다고 밝혔지만, 실체적 진실 규명보다는 정치적 논쟁 확산을 막는데 신경을 쓰는 눈치다.
산업부는 일부 언론이 지질자원연구원이 2003년 지열부 부존량을 확인하는 경제타당성 조사를 했다는 점을 들어 지열발전이 노무현 정부 시기인 2003년부터 추진됐다고 보도하자 "포항 지열발전사업은 과제 기획부터 공고, 사업자 선정, 사업 착수 등 모든 과정이 2010년부터 추진됐다"고 밝혔다.
/연합뉴스
정부조사단 "물 주입 직후 지진 조사했다면 7개월후 본진 막았을텐데"
포항지진은 지열발전이 지진을 일으킬 수 있다는 점을 알고도 그 위험을 과소평가한 사업자와 제때 개입하지 않은 정부의 관리 부실이 빚은 참사로 평가된다.
사업자는 지열발전이 유발할 수 있는 지진을 '관리'할 수 있다고 오판했고, 정부는 사업자 판단을 검증하지 않았으며, 운이 나쁘게도 지열발전소 밑에 아무도 몰랐던 단층이 있었다.
◇ 지진위험 과소평가한 '위험한 물장난'
포항에 짓던 지열발전소는 화산지대가 없는 곳에서도 지하 5km 내외의 지열로 증기를 만드는 '인공 저류층 생성기술'(EGS)을 활용했다.
이 기술은 땅 깊이 물을 주입하는 수리자극을 하는데 물이 암반을 잘 통과하도록 강한 수압으로 균열을 만드는 과정에서 규모가 작은 지진인 미소진동이 발생할 수 있다. 포항지열발전소 사업을 시작했던 2010년 당시에도 외국 사례 등을 통해 국내 학계와 관련 업계에 잘 알려진 내용이다.
바른미래당 이찬열 의원실이 입수한 '포항 EGS 프로젝트 미소진동 관리방안'(이하 관리방안)을 보면 이 보고서를 작성한 지열발전사업 컨소시엄도 지진 발생 위험성을 인지했다.
컨소시엄은 2008년 스위스 바젤에서 발생한 규모 3.4 지진의 가장 주요한 원인으로 지열발전이 지목된 점을 언급하고서 "미소진동이 특정 규모 이상으로 발생하지 않도록 지속적인 모니터링과 적절한 수리자극 수준을 유지하는 안전한 관리방안이 필요하다"고 명시했다.
컨소시엄은 지진위험을 안전하게 관리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이지만, 포항지진 정부조사연구단은 현재 과학기술로는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판단했다.
정부조사연구단은 보고서에서 "물 주입이 유발한 지진이 알려지지 않았던 단층을 활성화했고, 포항 본진을 촉발했다.
지금의 모델로는 이런 복잡성과 단층에 유발된 압력변화가 더 큰 규모의 런어웨이(run-away·폭주하는) 지진을 촉발할 가능성을 충분히 예측하지 못한다"고 밝혔다.
포항지열발전소에는 스위스 바젤 지열발전소 개발자 마커스 해링 등 외국 전문가가 자문으로 참여했지만, 이들도 규모 5.4 지진을 예상하지 못했다.
지열발전소 주관사인 넥스지오 관계자는 "현재 정부조사단 결과 발표를 겸허한 마음으로 면밀히 검토하고 있으며, 검토 후 지열발전 과제 연구단(컨소시엄) 차원에서 입장을 발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 사업자 매뉴얼에만 의존한 위험관리
미국은 2009년 샌프란시스코 북부 '더 가이저(The Geysers)' 지역의 지열발전사업의 지진위험이 논란이 되자 지열발전소와 지진의 연관성을 연구, 발전사업자들이 유발지진에 대응할 수 있는 지침을 2012년 발간했다.
그러나 포항 지열발전소는 유발지진을 안전하게 관리하기 위한 정부 차원의 지침이나 규정 없이 추진됐다.
대신 컨소시엄이 스위스 바젤 등 다른 국가 사례를 참고해 만든 신호등체계(Traffic Light System)를 활용했다.
신호등체계는 지진 규모별로 물 주입 감소·중단, 배수, 정부 보고 등의 조치를 정한 위험관리 방안이다.
산업통상자원부 관계자는 "넥스지오가 자체적으로 만든 매뉴얼인데 넥스지오는 '해외사례를 참고해 만든 글로벌 스탠다드'라고 했다"고 전했다.
신호등체계는 지진 규모가 2.0 이상이면 정부 연구개발사업을 관리하는 에너지기술평가원에 보고하고, 2.5 이상이면 정부에까지 보고하도록 했다.
당초 '관리방안'에서는 2.0부터 정부에 보고하도록 했지만, 실제 적용된 체계는 정부 보고를 2.5 이상으로 완화했다.
정부조사연구단에 따르면 컨소시엄이 지열정 시추를 시작한 2015년 11월부터 2017년 11월 15일 포항지진까지 지열발전소와 연관성이 있는 크고 작은 지진 98건이 발생했다.
그러나 정부에 보고된 건 2017년 4월 15일 발생한 규모 3.1 지진뿐이었다.
이강근 정부조사연구단장은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신호등체계는 당연히 있어야 하는 운영매뉴얼인데 포항은 국제기준에 비춰 좀 완화됐다"며 "장소마다 필요한 수준이 달라 어느 정도가 적합하다고 말하기 어렵지만, 포항은 결과적으로 보면 썩 좋은 신호등체계가 아니었다"고 말했다. ◇ "지진위험 알았을텐데…" 관리 '손 놓은' 정부
산업부는 2017년 4월15일 물 주입 이후 3.1 규모의 지진이 발생한 이틀 뒤인 4월 17일 컨소시엄이 신호등체계에 따라 주입 중단과 배수 조치 등을 했다는 보고를 받았지만 별 조치를 하지 않았다.
이후 넥스지오는 서울대, 지질자원연구원 등과 논의해 물 주입 재개를 결정했다.
산업부는 당시 결정에 대해 해명자료에서 "정부가 결론을 내린 게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지열발전소는 정부 예산을 받는 정부 연구개발사업으로 추진됐지만, 정부는 지진위험에 대해 아무것도 하지 않은 셈이다.
여러 전문가는 4월 15일 지진 직후 제대로 조사했다면 7개월 후인 11월 15일 발생한 규모 5.4의 지진을 막을 수도 있었다고 본다.
이강근 단장은 "우리가 분석한 자료들은 새로운 게 아니라 이미 포항지진 전에 있었던 것"이라며 "4월 15일 지진 이후 바로 조사했다면 좀 더 많이 알 수 있었을 텐데 아쉽다"고 말했다.
포항 지열발전소 컨소시엄에는 주관기관인 넥스지오 외에 정부출연연구기관인 지질자원연구원과 건설기술연구원이 참여했다.
어떤 정부 부처나 기관이 지열발전의 위험을 언제 얼마만큼 알고 있었는지는 향후 정부 조사에서 밝혀질 사안이지만, 적어도 이들 정부출연 연구기관만큼은 지진 가능성을 알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정부 관계자는 "이미 학계 등에 널리 알려진 사실인 만큼 정부도 알고는 있었을 것"이라면서도 "다만 그 정도로 위험한지는 몰랐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사업 추진 과정에서 문제가 없었는지 조사하겠다고 밝혔지만, 실체적 진실 규명보다는 정치적 논쟁 확산을 막는데 신경을 쓰는 눈치다.
산업부는 일부 언론이 지질자원연구원이 2003년 지열부 부존량을 확인하는 경제타당성 조사를 했다는 점을 들어 지열발전이 노무현 정부 시기인 2003년부터 추진됐다고 보도하자 "포항 지열발전사업은 과제 기획부터 공고, 사업자 선정, 사업 착수 등 모든 과정이 2010년부터 추진됐다"고 밝혔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