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멈춘 프랑스 게랑드, 그곳에 가면 누구나 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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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의 향기
프랑스 서부 중세의 정취가 숨쉬는 브르타뉴
햇살과 바람이 빚은 꽃소금 '플뢰르 드 셀'…부드럽고 달콤한 맛 일품
프랑스 서부 중세의 정취가 숨쉬는 브르타뉴
햇살과 바람이 빚은 꽃소금 '플뢰르 드 셀'…부드럽고 달콤한 맛 일품
프랑스에서 가장 긴 강 루아르(Loire)가 흐르는 페이드라루아르(Pays de la Loire)는 물이 빚은 아름다움을 간직한 땅이다. 루아르강 하구에는 자연을 무대 삼아 설치된 예술 작품들이 즐비하고, 소금이 눈처럼 쌓인 순백의 땅 게랑드(Gurande)에는 브르타뉴(Bretagne) 사람들의 지혜와 긍지가 스며있다. 두꺼운 성벽으로 둘러싸인 게랑드의 구시가지에는 중세의 정취가 나부끼고, 거대한 습지와 청쾌한 해변에는 평화와 여유가 가득하다. 아름다운 루아르강과 거대한 대서양이 만나는 땅, 그곳에서 보낸 날들은 강처럼 유려하고 바다처럼 포근했다.
예술의 무대가 된 60㎞의 강 길
자연을 예술의 무대로 삼는다는 것, 상상만 해도 멋진 일이다. 프랑스의 젖줄 루아르강이 흐르는 페이드라루아르에는 이런 상상을 현실로 구현한 곳이 있다. 아트 트레일 에스튀에르(Art Trail Estuaire)라는 이름으로 2007년에 시작된 이 프로젝트는 주도 낭트에서 생 나제르(Saint-Nazaire)까지 이어지는 루아르강 하구를 예술의 길로 재탄생시켰다. 낭트에 설치된 고리 조형물을 시작으로, 30여 개에 달하는 설치 미술 작품들이 강 길 곳곳에 보석처럼 박혀 있다. 모든 작품이 흥미롭지만 유독 눈길을 잡아끄는 것들이 있다. 그중 하나가 쿠에롱 강변에 설치된 ‘라 메종 당 라 루아르(La Maison Dans La Loire)’다. 루아르강의 집이란 뜻을 지닌 이 작품은 프랑스의 무대 연출가 장 뤼크 쿠르쿨(Jean-Luc Courcoult)에 의해 세워졌다. 유유히 흐르는 강물 위 삐딱하게 서 있는 한 채의 집은 쓸쓸하고도 서정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그 위에 하얗게 피어나는 물안개까지 더해지니 마치 연극 속 한 장면을 보는 듯하다. 루아르강이 비스케이 만(Biscay Bay)으로 흘러드는 강어귀에 다다르면 기상천외한 광경이 펼쳐진다. 드넓게 펼쳐진 대서양 위로 뼈대만 앙상하게 남겨진 뱀이 꿈틀거린다. 중국의 현대 예술가 황융핑(Huang Yong Ping)이 만든 이 조형물의 제목은 ‘세르펭 도세앙(Serpent D’Ocan)’. 대양의 뱀이란 뜻이다. 생 나제르 다리의 곡선에 영감을 받아 제작된 길이 130m의 거대한 뱀은 시시각각 변하는 바다와 하늘의 날씨에 따라 음산한 분위기를 자아내기도 하고 꿈 같은 풍경을 선사하기도 한다. 60㎞에 달하는 아트 트레일 에스튀에르는 프랑스 최대 조선소가 자리한 생 나제르에서 끝을 맺는다. 언뜻 보기에는 그저 삭막한 공업단지처럼 보이지만 이곳에도 예술의 혼은 서려 있다. 도시가 한눈에 들여다보이는 조선소 옥상에 올라 특정 지점에 서자 눈앞에는 기묘한 일이 벌어진다.
빌딩 지붕과 벽면에 질서 없이 새겨져 있던 붉은 삼각형들이 순식간에 이어져 하나의 작품을 만들어낸다. 스위트 드 트리앙글(Suite de Triangles)이란 이름의 이 작품은 스위스의 착시 예술가, 펠리스 바리니(Felice Varini)에 의해 설계됐다. 그는 이 작품을 통해 ‘대상의 첫 모습이 전부를 나타내는 것이 아님’을 말하고 싶었다고 한다. 여행하면 할수록 예상치 못한 매력을 발견하게 되는 브르타뉴와 아주 잘 어울리는 듯하다.
하얀 소금이 내리는 땅 게랑드 반도
게랑드, 여행과 미식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들어봤을 이름이다. 대서양 연안에 자리한 게랑드 반도는 프랑스 최대 천일염 생산지이자 세계적 품질의 명품 소금으로 잘 알려져 있다. 게랑드에 도착하자 주변은 온통 소금밭의 향연이다. 해수를 가득 머금은 네모난 염전 안에는 푸른 하늘이 한가득 걸려 있고, 눈처럼 소복하게 쌓인 크고 작은 소금산들은 지천으로 널려 있다. 이런 풍경 때문일까, 이 지역을 부르는 또 다른 말은 프랑스어로 하얀 나라라는 의미를 지닌 페이 블랑(Pays Blanc)이다. 게랑드라는 지명 또한 백색 땅을 뜻하는 브르타뉴어 ‘웬란(Wenrann)’에서 유래했다. 게랑드 지역에서 소금을 만들기 시작한 것은 기원전 800년 전에서 50년 사이라고 전해진다. 그러나 지금처럼 태양열과 바람으로만 소금을 생산하는 방식을 시작한 것은 9세기 이후이며, 비약적인 발전을 이룬 것은 15세기에서 18세기 사이다. 게랑드 소금이 특별하게 여겨지는 이유는 그들이 여전히 전통적인 방식으로 소금을 생산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곳에서는 오직 자연과 사람의 힘으로만 소금을 채취한다. 바닷물이 밀물일 때 수로를 통해 첫 번째 저수지에 물을 가둬놓는다. 이후 다음 저수지로 차례대로 옮겨가며 햇살과 바람이 수분을 점차 증발시킨다. 이러한 순환 과정을 3~4번 정도 반복해서 소금이 생성되면 그 이후의 일들은 사람의 몫이다. 불순물이 들어가는 것을 방지하고 소금의 형태를 온전히 보존하기 위해 소금 장인들은 염전 모서리로 걸어 들어간다. 그리고 길이가 무려 5m에 이르는 기다란 장대를 이용해 소금을 하나하나 긁어모은다. 게랑드에서 채취되는 소금 중에서도 가장 귀한 것이 바로 ‘플뢰르 드 셀(Fleur de Sel)’, 우리말로 하면 꽃소금이다. 꽃소금은 물 수면에 형성된 가는 소금을 뜻하는데, 물 밑에 가라앉은 굵은 소금에 비해 생산량이 아주 적다. 일반적으로 천일염 중 꽃소금이 차지하는 비율은 약 5%에 불과하다. 귀하기도 귀하지만 굵은 소금에 비해 염도가 낮고, 부드럽고 달콤한 맛이 일품이라 고가에 거래된다.
성벽에 둘러싸인 중세도시
지금이야 지역 자체가 하나의 브랜드가 됐을 정도로 명성이 자자하지만, 게랑드 소금의 운명이 언제나 평탄했던 것은 아니었다. 산업화가 가속되면서 대량생산 시스템이 보급되고, 인력이 대도시로 유출되자 모든 것이 수작업으로 이뤄지던 게랑드 소금산업은 침체기를 맞게 됐다.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게랑드의 남은 소금 생산자들은 조합을 형성하고, 소금 장인을 양성하고 지원할 수 있는 교육기관을 설립했다. 수백 년간 이어온 전통에 대한 긍지와 이를 지키고 계승하기 위한 체계적인 노력, 그리고 활발한 마케팅이 합쳐져 오늘날의 명품 소금 게랑드가 탄생한 셈이다. 바츠 쉬르 메르(Batz-sur-Mer)에 있는 염습지 박물관(Muse des Marais Salants)도 꼭 들러봐야 할 필수 코스다. 브르타뉴 지방에서 가장 오래된 박물관 중 하나인 이곳은 게랑드 소금의 역사부터 염부들의 생활상, 소금 채취 방법, 이에 사용되는 장비들까지 그야말로 ‘게랑드 소금’의 모든 것을 집대성해 놓았다. 이곳의 볼거리가 소금뿐인 것은 아니다. 성벽으로 둥그렇게 둘러싸인 게랑드의 구시가지는 프랑스에서도 중세시대의 모습을 가장 잘 보존하고 있는 곳 중 하나로 꼽힌다. 둘레 1.434m에 달하는 성벽 대부분은 12세기께 축조된 것으로 14세기 브르타뉴 왕위 전쟁 후 보수 과정을 거치며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됐다. 고풍스러운 생 미셸 성문(Porte Saint-Michel)을 지나니 시간은 수백 년을 훌쩍 거슬러 오른다. 세월에 반들반들해진 조약돌이 박힌 중세의 골목 위로 아기자기한 상점과 갤러리 등이 늘어서 있다. 소금의 땅답게 상점의 진열대는 소금 관련 상품들로 가득하다. 골목 어귀에는 꽃소금이 담긴 자루가 한가득인 수레가 세워져 있고, 베이커리에서는 소금 맛 마카롱과 소금 쿠키를 정신없이 구워낸다. 그중 단짠 디저트의 정석을 보여주는 솔티드 버터 캐러멜은 반드시 맛봐야 할 별미 중의 별미니 놓치지 말자.
브르타뉴의 숨겨진 휴양 도시, 라 볼
게랑드 반도의 서쪽 해안가가 염전의 땅이라면 북동쪽은 습지의 땅이다. 브리에르 지역 자연공원(Brire Regional Natural Park)은 프랑스에서 두 번째로 큰 습윤 지역을 보유하고 있다. 총 면적 490㎢에 달하는 공원 안에는 다양한 동식물 군을 비롯한 풍부한 생태계가 보전돼 있다. 샬렁스(Chalands)라고 불리는 전통 거룻배에 올라 기다란 노를 힘차게 젓는 가이드의 안내를 받으며 습지 구석구석을 탐험한다.
한 폭의 수채화처럼 펼쳐진 푸른 초원 위에는 말과 염소가 한가로이 풀을 뜯고, 수많은 새는 수면 위를 비행하며 잔잔한 물결을 일으킨다. 갈대를 엮어 만든 3000여 개의 전통 초가집과 습지의 생활상이 잘 보존된 작은 섬, 생 조아킹(Saint-Joachim)도 큰 볼거리다. 이제는 본격적으로 대서양의 풍경을 즐겨볼 차례다. 게랑드에서 자동차로 10분 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 라 볼 에스쿠블라크(La Baule-Escoublac)로 향한다. 줄여서 라 볼(La Baule)로 불리는 이 도시는 프랑스 현지인들이 즐겨 찾는 숨겨진 휴양 도시다. 파리에서 기차로 3시간이면 도달할 수 있어 바쁜 도시 생활에 지친 파리지앵이 즐겨 찾는 휴가지로도 유명하다. 라 볼의 최고 볼거리는 뭐니 뭐니 해도 9㎞에 달하는 긴 해변이다.
석양이 지기 시작할 때쯤, 바다가 한걸음 물러선 라 볼의 갯벌로 향한다. 사람들은 말을 타고 붉게 물들어가는 바다 깊숙한 곳을 향해 달린다. 프랑스 서쪽 땅의 영화 같은 하루가 또 한 번 저문다.
브르타뉴=글·사진 고아라 여행작가 minstok@naver.com
여행메모
에어프랑스에서 인천과 페이드라루아르의 주도 낭트를 잇는 파리 경유 편을 운행하고 있다. 혹은 파리 몽파르나스 역에서 기차(TGV)를 통해 낭트, 생 나제르, 라 볼과 같은 주요 도시로 이동할 수 있다. 소요 시간은 2~3시간 정도다. 게랑드 염습지 박물관의 입장료는 성인 기준 5유로다. 브리에르 지역 공원의 전통 나룻배 투어는 여러 곳의 현지 여행업체에 의해 진행되며, 가격은 1인당 8유로 정도다.
취재협조: 프랑스 관광청, 에어프랑스, 역사 속으로 떠나는 여행
예술의 무대가 된 60㎞의 강 길
자연을 예술의 무대로 삼는다는 것, 상상만 해도 멋진 일이다. 프랑스의 젖줄 루아르강이 흐르는 페이드라루아르에는 이런 상상을 현실로 구현한 곳이 있다. 아트 트레일 에스튀에르(Art Trail Estuaire)라는 이름으로 2007년에 시작된 이 프로젝트는 주도 낭트에서 생 나제르(Saint-Nazaire)까지 이어지는 루아르강 하구를 예술의 길로 재탄생시켰다. 낭트에 설치된 고리 조형물을 시작으로, 30여 개에 달하는 설치 미술 작품들이 강 길 곳곳에 보석처럼 박혀 있다. 모든 작품이 흥미롭지만 유독 눈길을 잡아끄는 것들이 있다. 그중 하나가 쿠에롱 강변에 설치된 ‘라 메종 당 라 루아르(La Maison Dans La Loire)’다. 루아르강의 집이란 뜻을 지닌 이 작품은 프랑스의 무대 연출가 장 뤼크 쿠르쿨(Jean-Luc Courcoult)에 의해 세워졌다. 유유히 흐르는 강물 위 삐딱하게 서 있는 한 채의 집은 쓸쓸하고도 서정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그 위에 하얗게 피어나는 물안개까지 더해지니 마치 연극 속 한 장면을 보는 듯하다. 루아르강이 비스케이 만(Biscay Bay)으로 흘러드는 강어귀에 다다르면 기상천외한 광경이 펼쳐진다. 드넓게 펼쳐진 대서양 위로 뼈대만 앙상하게 남겨진 뱀이 꿈틀거린다. 중국의 현대 예술가 황융핑(Huang Yong Ping)이 만든 이 조형물의 제목은 ‘세르펭 도세앙(Serpent D’Ocan)’. 대양의 뱀이란 뜻이다. 생 나제르 다리의 곡선에 영감을 받아 제작된 길이 130m의 거대한 뱀은 시시각각 변하는 바다와 하늘의 날씨에 따라 음산한 분위기를 자아내기도 하고 꿈 같은 풍경을 선사하기도 한다. 60㎞에 달하는 아트 트레일 에스튀에르는 프랑스 최대 조선소가 자리한 생 나제르에서 끝을 맺는다. 언뜻 보기에는 그저 삭막한 공업단지처럼 보이지만 이곳에도 예술의 혼은 서려 있다. 도시가 한눈에 들여다보이는 조선소 옥상에 올라 특정 지점에 서자 눈앞에는 기묘한 일이 벌어진다.
빌딩 지붕과 벽면에 질서 없이 새겨져 있던 붉은 삼각형들이 순식간에 이어져 하나의 작품을 만들어낸다. 스위트 드 트리앙글(Suite de Triangles)이란 이름의 이 작품은 스위스의 착시 예술가, 펠리스 바리니(Felice Varini)에 의해 설계됐다. 그는 이 작품을 통해 ‘대상의 첫 모습이 전부를 나타내는 것이 아님’을 말하고 싶었다고 한다. 여행하면 할수록 예상치 못한 매력을 발견하게 되는 브르타뉴와 아주 잘 어울리는 듯하다.
하얀 소금이 내리는 땅 게랑드 반도
게랑드, 여행과 미식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들어봤을 이름이다. 대서양 연안에 자리한 게랑드 반도는 프랑스 최대 천일염 생산지이자 세계적 품질의 명품 소금으로 잘 알려져 있다. 게랑드에 도착하자 주변은 온통 소금밭의 향연이다. 해수를 가득 머금은 네모난 염전 안에는 푸른 하늘이 한가득 걸려 있고, 눈처럼 소복하게 쌓인 크고 작은 소금산들은 지천으로 널려 있다. 이런 풍경 때문일까, 이 지역을 부르는 또 다른 말은 프랑스어로 하얀 나라라는 의미를 지닌 페이 블랑(Pays Blanc)이다. 게랑드라는 지명 또한 백색 땅을 뜻하는 브르타뉴어 ‘웬란(Wenrann)’에서 유래했다. 게랑드 지역에서 소금을 만들기 시작한 것은 기원전 800년 전에서 50년 사이라고 전해진다. 그러나 지금처럼 태양열과 바람으로만 소금을 생산하는 방식을 시작한 것은 9세기 이후이며, 비약적인 발전을 이룬 것은 15세기에서 18세기 사이다. 게랑드 소금이 특별하게 여겨지는 이유는 그들이 여전히 전통적인 방식으로 소금을 생산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곳에서는 오직 자연과 사람의 힘으로만 소금을 채취한다. 바닷물이 밀물일 때 수로를 통해 첫 번째 저수지에 물을 가둬놓는다. 이후 다음 저수지로 차례대로 옮겨가며 햇살과 바람이 수분을 점차 증발시킨다. 이러한 순환 과정을 3~4번 정도 반복해서 소금이 생성되면 그 이후의 일들은 사람의 몫이다. 불순물이 들어가는 것을 방지하고 소금의 형태를 온전히 보존하기 위해 소금 장인들은 염전 모서리로 걸어 들어간다. 그리고 길이가 무려 5m에 이르는 기다란 장대를 이용해 소금을 하나하나 긁어모은다. 게랑드에서 채취되는 소금 중에서도 가장 귀한 것이 바로 ‘플뢰르 드 셀(Fleur de Sel)’, 우리말로 하면 꽃소금이다. 꽃소금은 물 수면에 형성된 가는 소금을 뜻하는데, 물 밑에 가라앉은 굵은 소금에 비해 생산량이 아주 적다. 일반적으로 천일염 중 꽃소금이 차지하는 비율은 약 5%에 불과하다. 귀하기도 귀하지만 굵은 소금에 비해 염도가 낮고, 부드럽고 달콤한 맛이 일품이라 고가에 거래된다.
성벽에 둘러싸인 중세도시
지금이야 지역 자체가 하나의 브랜드가 됐을 정도로 명성이 자자하지만, 게랑드 소금의 운명이 언제나 평탄했던 것은 아니었다. 산업화가 가속되면서 대량생산 시스템이 보급되고, 인력이 대도시로 유출되자 모든 것이 수작업으로 이뤄지던 게랑드 소금산업은 침체기를 맞게 됐다.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게랑드의 남은 소금 생산자들은 조합을 형성하고, 소금 장인을 양성하고 지원할 수 있는 교육기관을 설립했다. 수백 년간 이어온 전통에 대한 긍지와 이를 지키고 계승하기 위한 체계적인 노력, 그리고 활발한 마케팅이 합쳐져 오늘날의 명품 소금 게랑드가 탄생한 셈이다. 바츠 쉬르 메르(Batz-sur-Mer)에 있는 염습지 박물관(Muse des Marais Salants)도 꼭 들러봐야 할 필수 코스다. 브르타뉴 지방에서 가장 오래된 박물관 중 하나인 이곳은 게랑드 소금의 역사부터 염부들의 생활상, 소금 채취 방법, 이에 사용되는 장비들까지 그야말로 ‘게랑드 소금’의 모든 것을 집대성해 놓았다. 이곳의 볼거리가 소금뿐인 것은 아니다. 성벽으로 둥그렇게 둘러싸인 게랑드의 구시가지는 프랑스에서도 중세시대의 모습을 가장 잘 보존하고 있는 곳 중 하나로 꼽힌다. 둘레 1.434m에 달하는 성벽 대부분은 12세기께 축조된 것으로 14세기 브르타뉴 왕위 전쟁 후 보수 과정을 거치며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됐다. 고풍스러운 생 미셸 성문(Porte Saint-Michel)을 지나니 시간은 수백 년을 훌쩍 거슬러 오른다. 세월에 반들반들해진 조약돌이 박힌 중세의 골목 위로 아기자기한 상점과 갤러리 등이 늘어서 있다. 소금의 땅답게 상점의 진열대는 소금 관련 상품들로 가득하다. 골목 어귀에는 꽃소금이 담긴 자루가 한가득인 수레가 세워져 있고, 베이커리에서는 소금 맛 마카롱과 소금 쿠키를 정신없이 구워낸다. 그중 단짠 디저트의 정석을 보여주는 솔티드 버터 캐러멜은 반드시 맛봐야 할 별미 중의 별미니 놓치지 말자.
브르타뉴의 숨겨진 휴양 도시, 라 볼
게랑드 반도의 서쪽 해안가가 염전의 땅이라면 북동쪽은 습지의 땅이다. 브리에르 지역 자연공원(Brire Regional Natural Park)은 프랑스에서 두 번째로 큰 습윤 지역을 보유하고 있다. 총 면적 490㎢에 달하는 공원 안에는 다양한 동식물 군을 비롯한 풍부한 생태계가 보전돼 있다. 샬렁스(Chalands)라고 불리는 전통 거룻배에 올라 기다란 노를 힘차게 젓는 가이드의 안내를 받으며 습지 구석구석을 탐험한다.
한 폭의 수채화처럼 펼쳐진 푸른 초원 위에는 말과 염소가 한가로이 풀을 뜯고, 수많은 새는 수면 위를 비행하며 잔잔한 물결을 일으킨다. 갈대를 엮어 만든 3000여 개의 전통 초가집과 습지의 생활상이 잘 보존된 작은 섬, 생 조아킹(Saint-Joachim)도 큰 볼거리다. 이제는 본격적으로 대서양의 풍경을 즐겨볼 차례다. 게랑드에서 자동차로 10분 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 라 볼 에스쿠블라크(La Baule-Escoublac)로 향한다. 줄여서 라 볼(La Baule)로 불리는 이 도시는 프랑스 현지인들이 즐겨 찾는 숨겨진 휴양 도시다. 파리에서 기차로 3시간이면 도달할 수 있어 바쁜 도시 생활에 지친 파리지앵이 즐겨 찾는 휴가지로도 유명하다. 라 볼의 최고 볼거리는 뭐니 뭐니 해도 9㎞에 달하는 긴 해변이다.
석양이 지기 시작할 때쯤, 바다가 한걸음 물러선 라 볼의 갯벌로 향한다. 사람들은 말을 타고 붉게 물들어가는 바다 깊숙한 곳을 향해 달린다. 프랑스 서쪽 땅의 영화 같은 하루가 또 한 번 저문다.
브르타뉴=글·사진 고아라 여행작가 minstok@naver.com
여행메모
에어프랑스에서 인천과 페이드라루아르의 주도 낭트를 잇는 파리 경유 편을 운행하고 있다. 혹은 파리 몽파르나스 역에서 기차(TGV)를 통해 낭트, 생 나제르, 라 볼과 같은 주요 도시로 이동할 수 있다. 소요 시간은 2~3시간 정도다. 게랑드 염습지 박물관의 입장료는 성인 기준 5유로다. 브리에르 지역 공원의 전통 나룻배 투어는 여러 곳의 현지 여행업체에 의해 진행되며, 가격은 1인당 8유로 정도다.
취재협조: 프랑스 관광청, 에어프랑스, 역사 속으로 떠나는 여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