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호의 데스크 시각] '규제 폭탄'에 떠는 기업들
화관법(화학물질관리법)은 화평법(화학물질의 등록 및 평가 등에 관한 법률)에 비해 일반인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았다. 다급해진 기업들이 최근 정부와 긴급회의를 열고 “시급히 대책을 마련해달라”고 절박한 사정을 호소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시한폭탄처럼 째깍째깍 다가오는 유예기간 종료(올 연말, 법 시행 전 완공된 공장도 까다로운 안전기준 소급적용)를 앞두고 기업들은 속이 타들어가고 있다.

화관법은 2012년 구미 불산가스 누출 사고를 계기로 옛 유해화학물질관리법이 전면 개정되면서 생겨났다. 2013년 제정돼 2015년 1월 1일부터 시행 중이다. 의원입법으로 국회에 올라와 속전속결로 처리됐다. 발의 후 국회 본회의 문턱을 넘기까지 32일밖에 걸리지 않았다. 반면 안전(설비)기준은 79개에서 413개로 다섯 배 이상 급증했다. 사고를 낸 사업장에 대한 과징금은 ‘매출의 최대 5%’로 정해졌다. 예방보다는 ‘징벌적 규제’ 성격이 강하다며 기업들이 불만을 터뜨리는 이유다.

화관법 폭탄 '째깍째깍'

화관법에서 가장 논란이 되는 대목은 내년부터는 법 시행 전 설립된 공장도 새 법에 따른 안전점검을 다시 받도록 한 점이다. 소급적용이다. 화관법 시행 전인 2014년 12월 31일 이전에 가동된 시설도 저압가스 배관 검사를 받도록 명시한 게 대표적이다. 법 시행 후 짓는 공장은 시간과 비용이 더 들더라도 처음부터 기준에 맞춰 설계하고 검사받으면 된다. 문제는 기존 공장이다. 내년부터 독성이 있는 저압가스를 취급하는 모든 공장은 배관 검사를 받아야 한다. 압력이 낮은 가스관에서는 독성가스가 새어 나올 확률이 낮기 때문에 종전에는 고압가스 검사만 받으면 됐지만 새 법은 규제를 강화했다.

기업들은 난감해하고 있다. 배관 검사를 받으려면 검사 과정 외에도 배관 세척, 설비 철거 및 재설치 등이 필요하다. 반도체와 디스플레이공장은 공정 특성상 배관이 하나의 라인으로 연결돼 있어 배관 검사를 위해 공장 전체를 멈춰야 한다. 일부 대기업의 시뮬레이션 결과 배관 검사를 끝내고 라인을 재가동해 정상수율로 끌어올리는 데는 14개월가량 걸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 번 가동을 중단하면 재가동에 막대한 시간과 비용이 드는 국내 반도체 및 디스플레이 공장 등이 한꺼번에 대규모 ‘셧다운’에 들어가야 할 처지가 됐다.

산안법 규제도 대기 중

산업재해에 대한 기업의 책임을 강화한 산업안전법(산안법)도 화관법과 닮은꼴이다. 들끓는 여론과 여야 간 ‘정치 빅딜’ 속에 초고속으로 국회를 통과했다. 지난해 말 충남 태안화력발전소 하청노동자 사망 사고 이후 2주 만에 국회에서 처리됐다. 내년 시행을 앞두고 시행령을 제정하는 작업이 진행되고 있지만 기업들은 벌써부터 걱정이 앞선다. 산업현장의 사고를 줄이는 일은 중요하지만, 현실성이 떨어지거나 지나치게 무거운 규제를 부과한다는 게 기업들의 읍소다. 유해하거나 위험한 작업의 도급(하청) 전면 금지와 고용노동부 장관의 작업중지권 신설 등이 대표적이다. ‘가습기 살균제 사망 사건’을 계기로 작년 3월 국회를 통과한 화평법도 기업에 많은 짐을 지우고 있어 중소기업들이 애로를 토로하고 있다.

가뜩이나 경기 악화와 실적 부진, 규제로 신음하고 있는 기업들이다. 화관법이 이대로 소급적용되면 내년부터 LG디스플레이는 국내 공장 10곳 중 8곳(2015년 이전 가동)을 1년 이상 멈춰야 한다. 24시간 돌아가는 국내 공장 중 상당수가 동시에 1년 이상 멈춘다면 매출과 고용 등 우리 경제에 미칠 영향이 얼마나 클지 상상하기도 힘들다. 여론에 떠밀려 졸속 처리한 ‘폭탄 법안’을 떠안는 것은 늘 그랬듯이 이번에도 기업들의 몫이다.

leek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