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혈주의 깨는 박찬구…'글로벌化' 승부수
금호석유화학그룹 계열사인 금호피앤비화학은 지난 19일 한국바스프 최고경영자(CEO)를 지낸 신우성 사장을 새 대표이사로 선임했다. 금호석유화학그룹이 사장급 외부 인사를 수혈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박찬구 금호석유화학그룹 회장(사진)이 “순혈주의 전통이 강한 화학기업을 혁신하려면 글로벌 유전자(DNA) 이식이 필요하다”며 신 사장 영입을 직접 추진했다는 후문이다.

‘혁신 드라이브’ 시동

독립 경영 9년째를 맞은 박 회장이 ‘글로벌 리딩 화학그룹’을 목표로 혁신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신 사장 영입을 신호탄으로 주요 계열사 임원들의 세대 교체와 글로벌 화학기업과의 협력 확대, 소비 트렌드에 맞는 제품군(群) 정비 등을 추진 중이다.
순혈주의 깨는 박찬구…'글로벌化' 승부수
세계 최대 화학기업 바스프 출신인 신 사장을 통해 글로벌화에 나서겠다는 전략이다. 금호피앤비화학은 폴리카보네이트 등 고기능성 엔지니어링 플라스틱 소재인 비스페놀에이(BPA)를 생산한다. 지난해 그룹 영업이익의 절반에 가까운 2500억원을 책임진 핵심 계열사다. 생산능력도 세계 5위 수준이다. BPA는 중국 등을 중심으로 수요가 늘고 있어 신 사장을 앞세워 해외 시장 개척에 공을 들이겠다는 게 박 회장 구상이다.

금호피앤비화학의 기틀을 닦은 문동준 전 사장은 모(母)기업인 금호석유화학 대표를 맡아 큰 그림을 그린다.

박 회장은 금호그룹 창업주인 고(故) 박인천 회장의 4남이자 금호석유화학 최대주주(특수관계인 포함 24.7%)이지만 스스로를 전문경영인이라고 소개한다. 1976년 금호석유화학의 모태인 한국합성고무공업에 입사한 뒤 줄곧 화학 계열사에 근무했다. 말수가 적고 조용한 성격으로 주변인들은 박 회장이 오너가(家)인 것을 알고 놀란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2009년 금호산업 등 주요 계열사가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에 들어간 뒤 퇴진한 박 회장이 2010년 금호석유화학 경영에 복귀한 것도 채권단과 주주들 지지 덕분이었다. 그는 올해 초 임직원들에게 “독립 경영에 성공할 수 있었던 비결은 뛰어난 경영인이어서가 아니라 회사를 아끼고 주주와 투자자를 위한 경영을 펼친 덕분”이라며 “올해도 꾸준한 실적으로 주주와 투자자에게 보답하자”고 당부했다.

영업이익 2년 새 두 배로

금호석유화학그룹은 지난해 시황 부진으로 LG화학과 롯데케미칼, 한화케미칼 등 주요 화학업체 실적이 일제히 뒷걸음질친 가운데서도 나홀로 실적 개선에 성공했다. 작년 금호석유화학의 연결기준 영업이익은 5542억원으로 2017년의 두 배 이상으로 껑충 뛰었다. 이 회사의 연간 영업이익이 5000억원을 돌파한 것은 2011년 이후 7년 만이다. 같은 기간 매출도 5조5849억원으로, 전년과 비교해 10% 이상 증가하며 2012년 이후 가장 좋은 실적을 올렸다. 2010년 박 회장 취임 직전 2만원대였던 주가도 9만3000원 선으로 네 배 이상 올랐다.

금호석유화학은 오는 29일 열리는 주주총회에서 박 회장의 사내이사 연임안을 상정한다. 그룹 관계자는 “환경과 안전관리가 중요한 화학기업은 변화와 혁신이 쉽지 않다”며 “외부 인재 수혈과 연구개발(R&D) 투자 확대를 통해 2020년까지 세계 1등 제품을 20개(현재 16개) 확보한다는 목표를 달성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보형 기자 kph21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