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병길 MAG 회장 "질감·채색 순식간 표현…미술의 신세계 발견했죠"
“세상이 바뀌었으니 예술도 변해야죠.”

‘스마트 화가’로 불리는 정병길 모바일아티스트그룹(MAG) 회장(사진)은 최근 경기 고양시 작업실에서 기자와 만나 “모바일아트가 순수예술 분야에서 아직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점이 아쉽다”며 이같이 말했다. 정 회장은 태블릿PC로 5분 만에 스케치를 마쳤다. 단순한 선뿐만 아니라 채색과 질감까지 순식간에 표현해냈다. 그는 태블릿PC나 스마트폰으로 그림을 그리는 ‘모바일 아트’를 개척한 인물로 모바일 아티스트들의 모임인 MAG를 이끌고 있다.

그가 처음부터 태블릿PC로 작업했던 건 아니다. 농협에서 30년간 근무한 그는 2010년 서울 가좌지점장을 끝으로 은퇴했다. 이후 취미였던 유화를 본격적으로 그리던 중 우연한 계기에 태블릿PC로 그림을 그릴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정 회장은 “순수예술 분야에서 모바일기기를 활용하는 건 낯선 일이었다”며 “하지만 처음 배우는 게 어렵지 그다음부턴 신세계였다”고 했다. 그는 2014년 첫 개인전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12회의 개인전과 5회의 단체전을 열었다.

“수채화나 유화는 늘 재료를 들고 다녀야 해서 번거로워요. 비행기에 유화 재료를 실으려다 거부당한 적도 있었어요. 수채화는 수정하기가 어렵습니다. 모바일 아트는 이런 문제들을 간단히 해결해줍니다. 터치 몇 번으로 그림의 분위기를 다양하게 바꿀 수도 있죠.”

그의 작업실에는 같은 작품을 다양한 버전으로 인쇄한 액자가 여럿 있다. 최근에는 작품이 평면적으로 인쇄되는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3차원(3D) 프린트 작업도 하고 있다. 여러 층을 덧붙여 인쇄해 유화에서 느껴지는 거칠고 두꺼운 질감 표현이 가능해졌다. 하지만 그는 “전시회에서는 전자 기기 화면에 직접 작품이 전시되는 방식을 추천한다”며 “하나의 프레임에 여러 작품을 올릴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모바일 아트 그대로의 느낌을 살릴 수 있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정 회장은 어디를 가든 태블릿PC를 꼭 들고 다닌다. 그의 주머니엔 붓이나 연필이 아니라 태블릿 펜이 들어 있다. 2017년에는 태블릿PC를 들고 마라도부터 백두산까지 국토 답사를 다녀왔고, 지난해 그린 그림과 기행문을 엮은 《모바일 스케치 마라도부터 백두산까지》를 펴냈다. 모바일 아트의 편리성 덕분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의 목표는 모바일 아트의 저변을 넓히는 것이다. “시대에 따라 미술 사조가 늘 변화해왔듯이 새로운 미술의 등장을 배척해선 안 됩니다. 모바일 아트가 비주류 미술로 머무르지 않았으면 합니다. 많은 사람이 모바일 아트를 접하도록 돕고 그들의 손에서 새로운 예술 방식이 다양하게 변주되도록 하는 게 제 역할이겠죠.”

홍윤정 기자 yjh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