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희권의 호모글로벌리스 (17)] 말 좀 하고 삽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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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희권 < 글로벌리스트·한국외국어대 석좌교수 >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본사를 둔 금융회사 찰스슈와브의 최고경영자(CEO)인 월트 베팅거. 그는 대학 시절 우등생이었다. 졸업시험 전까지 학점 평균이 A+였다. A+ 만점으로 졸업하겠다고 다짐한 그는 ‘경영 전략’ 과목의 졸업시험도 충실하게 준비했다. 드디어 시험일. 놀랍게도 교수가 나눠준 시험지는 백지였다. 교수가 말했다. “여러분, 지난 10주간 내가 가르칠 수 있는 것은 다 가르쳤어요. 다만 한 가지 남은 중요한 문제가 있습니다. 이 빌딩을 청소하는 여자의 이름을 쓰세요.” 베팅거는 유일하게 이 과목에서 낙제했다. 그녀의 이름은 도티였다. 이 일로 그는 인생에서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됐다.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사람은 중요하며 함께 일하는 사람을 소중하게 여겨야 한다는 것을 평생의 교훈으로 삼게 됐다.
요즘 ‘갑질’이라는 말이 유행이다. 한국의 갑질 사례가 세계 언론에 소개될 정도다. 유독 한국 사회에서 갑질이 성행하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리더는 우두머리 아닌 중심인물
전문가들은 각국의 문화를 수평문화와 수직문화로 구분한다. 수평문화를 가진 나라들은 합의적인 의사결정방식을 중요하게 여긴다. 독일, 스웨덴, 네덜란드 등 서유럽 국가가 이에 속한다. 예외도 있다. 미국이다. 미국은 수평문화에 속하지만 의사결정은 상사에 의해 일방적으로 이뤄지는 사례가 많다. 미국으로 이주한 초기 개척자들은 속도와 개인주의를 중요시했다. 서부 개척시대엔 먼저 도착해 열심히 일하는 것이 성공의 지름길이었다. 그 과정에서 미국인은 리더가 신속하게 의사결정을 하는 방식을 선호하게 됐다.
수직문화의 나라에서는 의사결정이 상사에 의해 신속하게 이뤄진다. 상명하복 문화다. 인도, 중국, 나이지리아 등 아시아·아프리카 국가가 이에 속한다. 여기에도 예외가 있다. 바로 일본이다. 일본은 수직문화이나 합의적 의사결정을 선호하는 대표적 나라다. 품의(稟議) 제도가 그 예다. 품의 제도란 하위 관리자들이 논의해 합의를 도출한 뒤 상위 관리자에게 제시하는 경영기법이다. 한국은 수직문화에 속한다. 농경사회에서 유래한 전통이다. 지도자가 결단을 내리면 구성원 전원이 따르는 방식으로 의사결정이 이뤄진다.
문제는 글로벌 시대에 변화가 이뤄지고 있다는 점이다. 세계는 이미 대등한 개인이 주체가 된 다원적 수평사회로 발전하고 있다. 오늘날 리더는 서열상 위에 있는 우두머리(top)가 아니다. 조직의 중심에 있는 중심인물(center)이다. 호령하고 지시하는 우두머리 대신 구성원 간 이해관계를 조정하고 분쟁을 해결하며 소통을 진작시키는 중심인물이 조직을 이끌고 있다. 한국 사회에 갑질이 많은 것은 아직도 많은 사람이 과거의 권위주의적 수직사회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문화의 변화를 선도하는 것은 기업이다. 첨예해지는 글로벌 경쟁 속에서 이익과 효율을 우선시하는 기업은 생존을 위해 문화를 바꾸고 있다. 연공서열제가 타파되고 성과급 제도가 도입됐다. 학력 대신 능력 위주의 승진 제도가 채택됐다. 계층과 직급을 기반으로 하는 수직조직이 협업 위주의 수평조직으로 개편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구글이 고속 성장한 배경으로 수평문화를 손꼽는다. 구글에서는 말단 직원도 CEO와 대화할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돼 있다. 전 직원이 의사결정 과정에 참여한다. 도요타는 도요타생산방식(TPS)을 구축했다. 제조 과정에서 이상이 생기면 누구든지 생산라인을 중단할 수 있다. 근로자가 기업 운영에 관해 자유롭게 비판하고 참여할 수 있는 시스템은 불량품을 없애고 비용을 절감한다.
침묵문화는 조직발전 저해
2016년 미국 4대 은행 웰스파고가 고객 동의 없이 200만 개나 되는 유령계좌를 불법으로 개설, 관리했음이 드러났다. 원인은 ‘돌격 앞으로’ 문화였다. 경영진은 직원들이 고객 1인당 8개의 금융상품을 교차 판매하도록 종용했다. 하루 목표량을 채우지 못하면 퇴근이 금지됐고 할당량을 달성하지 못한 직원은 해고됐다. 이런 문화에서 직원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유령계좌 개설뿐이었다.
2003년 컬럼비아 우주 왕복선이 지구 귀환 중 공중 폭발해 승무원 7명 전원이 사망했다. 원인은 대기권 재진입 시 왼쪽 날개에 생긴 구멍에 고온의 공기가 유입된 것이었다. 한 기술자가 이륙 전 날개에 이상이 있는 것을 발견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는 너무 낮은 직급이어서 미국 항공우주국(NASA) 고위관리들에게 말하지 못했다.
침묵문화는 조직 발전을 저해한다. 비판을 듣기 싫어하고 반대의견이 억압당하는 갑질사회에서는 책임의식이 실종된다. 창의적 문제해결 능력도 자랄 수 없다. 누구든지 두려움 없이 자유롭게 말할 수 있도록 심리적 안전 분위기를 조성해주는 것이 필요하다.
요즘 ‘갑질’이라는 말이 유행이다. 한국의 갑질 사례가 세계 언론에 소개될 정도다. 유독 한국 사회에서 갑질이 성행하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리더는 우두머리 아닌 중심인물
전문가들은 각국의 문화를 수평문화와 수직문화로 구분한다. 수평문화를 가진 나라들은 합의적인 의사결정방식을 중요하게 여긴다. 독일, 스웨덴, 네덜란드 등 서유럽 국가가 이에 속한다. 예외도 있다. 미국이다. 미국은 수평문화에 속하지만 의사결정은 상사에 의해 일방적으로 이뤄지는 사례가 많다. 미국으로 이주한 초기 개척자들은 속도와 개인주의를 중요시했다. 서부 개척시대엔 먼저 도착해 열심히 일하는 것이 성공의 지름길이었다. 그 과정에서 미국인은 리더가 신속하게 의사결정을 하는 방식을 선호하게 됐다.
수직문화의 나라에서는 의사결정이 상사에 의해 신속하게 이뤄진다. 상명하복 문화다. 인도, 중국, 나이지리아 등 아시아·아프리카 국가가 이에 속한다. 여기에도 예외가 있다. 바로 일본이다. 일본은 수직문화이나 합의적 의사결정을 선호하는 대표적 나라다. 품의(稟議) 제도가 그 예다. 품의 제도란 하위 관리자들이 논의해 합의를 도출한 뒤 상위 관리자에게 제시하는 경영기법이다. 한국은 수직문화에 속한다. 농경사회에서 유래한 전통이다. 지도자가 결단을 내리면 구성원 전원이 따르는 방식으로 의사결정이 이뤄진다.
문제는 글로벌 시대에 변화가 이뤄지고 있다는 점이다. 세계는 이미 대등한 개인이 주체가 된 다원적 수평사회로 발전하고 있다. 오늘날 리더는 서열상 위에 있는 우두머리(top)가 아니다. 조직의 중심에 있는 중심인물(center)이다. 호령하고 지시하는 우두머리 대신 구성원 간 이해관계를 조정하고 분쟁을 해결하며 소통을 진작시키는 중심인물이 조직을 이끌고 있다. 한국 사회에 갑질이 많은 것은 아직도 많은 사람이 과거의 권위주의적 수직사회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문화의 변화를 선도하는 것은 기업이다. 첨예해지는 글로벌 경쟁 속에서 이익과 효율을 우선시하는 기업은 생존을 위해 문화를 바꾸고 있다. 연공서열제가 타파되고 성과급 제도가 도입됐다. 학력 대신 능력 위주의 승진 제도가 채택됐다. 계층과 직급을 기반으로 하는 수직조직이 협업 위주의 수평조직으로 개편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구글이 고속 성장한 배경으로 수평문화를 손꼽는다. 구글에서는 말단 직원도 CEO와 대화할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돼 있다. 전 직원이 의사결정 과정에 참여한다. 도요타는 도요타생산방식(TPS)을 구축했다. 제조 과정에서 이상이 생기면 누구든지 생산라인을 중단할 수 있다. 근로자가 기업 운영에 관해 자유롭게 비판하고 참여할 수 있는 시스템은 불량품을 없애고 비용을 절감한다.
침묵문화는 조직발전 저해
2016년 미국 4대 은행 웰스파고가 고객 동의 없이 200만 개나 되는 유령계좌를 불법으로 개설, 관리했음이 드러났다. 원인은 ‘돌격 앞으로’ 문화였다. 경영진은 직원들이 고객 1인당 8개의 금융상품을 교차 판매하도록 종용했다. 하루 목표량을 채우지 못하면 퇴근이 금지됐고 할당량을 달성하지 못한 직원은 해고됐다. 이런 문화에서 직원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유령계좌 개설뿐이었다.
2003년 컬럼비아 우주 왕복선이 지구 귀환 중 공중 폭발해 승무원 7명 전원이 사망했다. 원인은 대기권 재진입 시 왼쪽 날개에 생긴 구멍에 고온의 공기가 유입된 것이었다. 한 기술자가 이륙 전 날개에 이상이 있는 것을 발견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는 너무 낮은 직급이어서 미국 항공우주국(NASA) 고위관리들에게 말하지 못했다.
침묵문화는 조직 발전을 저해한다. 비판을 듣기 싫어하고 반대의견이 억압당하는 갑질사회에서는 책임의식이 실종된다. 창의적 문제해결 능력도 자랄 수 없다. 누구든지 두려움 없이 자유롭게 말할 수 있도록 심리적 안전 분위기를 조성해주는 것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