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1차산업도 혁신 가능하다
사람 손길 없이 스스로 식물 키우는 스마트 농장 만드는 '엔씽'
김혜연 엔씽 대표는 “1차산업으로 분류되는 농업은 아직도 전통 방식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며 “정보기술(IT)을 활용해 혁신할 여지가 크다는 점만 보면 이만한 블루오션이 없다”고 말했다.
해외 스마트팜 가격의 절반
2014년 1월 엔씽을 창업한 김 대표는 한양대 전자공학과 출신이다. 농업과 인연을 맺은 것은 우연이었다. 2010년 외삼촌을 따라 우즈베키스탄에 조인트벤처를 세우고 비닐하우스 토마토농장을 만드는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농업은 4차 산업혁명과 무관하다는 선입견에서 벗어났다는 게 김 대표의 설명이다. 농업에 기회가 있다는 생각은 2012년 한국전자부품연구원의 사물인터넷(IoT) 플랫폼 개발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 더 확실해졌다. 김 대표는 이 경험을 토대로 IoT를 접목한 기술을 구체화했다.
시작은 만만찮았다. 농업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이라고 말하면 투자자가 등을 돌렸다. ‘농업은 어쩔 수 없는 전통산업’이란 선입견 때문이었다. 김 대표는 제도권 투자자의 간택을 기다리지 않았다. 시제품을 빠르게 개발한 뒤 글로벌 크라우드펀딩 시장에 도전했다. 일반인의 관심을 이끌어내는 데 성공하면 길이 열릴 것이라는 생각에서였다. 결실을 이끌어낸 곳은 미국이었다. 2015년 센서가 붙어 있는 스마트 화분 ‘플랜티’로 미국 크라우드펀딩 플랫폼 ‘킥스타터’에서 10만달러를 끌어들이는 데 성공했다.
수경재배 키트인 ‘플랜티 스퀘어’, 스마트팜 ‘플랜티 큐브’ 등을 잇따라 선보이며 실적을 쌓자 제도권 투자자도 마음을 열기 시작했다. 지난해엔 스프링캠프와 유큐아이파트너스, 티비티 등 국내 벤처캐피털(VC)과 개인투자자로부터 25억5000만원을 유치했다. 이를 토대로 지난해 서울 미아동에 플랜티 큐브를 만들었다. 올해는 경기 용인에도 플랜티 큐브를 조성하는 작업이 이뤄지고 있다.
해외에서도 엔씽을 주목하고 있다. 플랜티 큐브는 2017년 컨테이너호텔을 운영하는 덴마크 기업인이 엔씽에 의뢰해 탄생했다. 컨테이너 두 동분의 시제품이 덴마크로 향한 뒤 엔씽에 관심을 보이는 기업이 부쩍 늘었다는 설명이다. 특히 신선채소를 재배하기 어려운 환경인 중동 국가들의 관심이 뜨겁다. 이미 아랍에미리트 아부다비에 시험용 농장 5동을 구축하는 프로젝트가 진행 중이다.
합리적인 가격도 엔씽이 빨리 자리잡을 수 있던 요인 중 하나다. 플랜티 큐브 가격은 40피트 컨테이너를 기준으로 5000만원이다. 수출용은 7만달러(약 8000만원)를 받는다. 글로벌 스마트팜 업체의 절반 이하 수준이다. 농장을 구성하는 재배 모듈과 작물재배용 LED(발광다이오드), 재배 배양액 등을 개발하고 대량생산하는 체계를 갖추면서 단가를 낮췄다.
생산량·맛·성분까지 맞춤형으로
엔씽의 주력 상품은 플랜티 큐브다. 원하는 규모에 따라 컨테이너 여러 동을 수평·수직으로 연결할 수 있다. 컨테이너 내에서 각종 작물을 심은 선반을 수직으로 쌓아서 키워 ‘버티컬팜(수직농장·Vertical Farm)’이라고도 한다.
김 대표는 “컨테이너에 설치된 IoT 기반 센서를 활용해 농장 환경을 원격으로 모니터링하고 컨트롤할 수 있는 큐브 운영시스템(OS)을 개발했다”며 “이 OS가 온도·습도·조도·산소와 이산화탄소 농도 등을 분석하고 이를 데이터화해 최적의 환경을 조성한다”고 설명했다.
농산물은 날씨와 시기에 따라 생산량과 가격이 변한다. 안정적인 가격으로 꾸준한 물량을 납품받는 게 쉽지 않다는 얘기다. 플랜티 큐브의 경쟁력은 여기에 있다. 인공적으로 작물의 생육을 조절하는 방법으로 수요와 가격의 불확실성에서 벗어날 수 있다. 김 대표는 “표준화된 방식으로 일정한 양을 지속적으로 생산할 수 있어 공산품에서 적용되는 월정액 모델도 가능하다”고 말했다.
원하는 성분과 맛을 맞춰준다는 점도 플랜티 큐브의 강점으로 꼽힌다. 식물에 필요한 영양분을 조절함으로써 특정 성분을 늘리거나 줄일 수 있다. 칼륨을 다량 섭취하면 위험한 신장질환 환자를 겨냥해 칼륨을 80% 줄인 채소가 대표적인 사례다.
전문가들은 엔씽의 전망을 밝게 보고 있다. 스마트팜 시장 성장세가 가팔라서다. 시장조사기관 마켓앤드마켓은 세계 스마트팜 시장 규모가 2016년 90억달러(약 10조1800억원)에서 2022년 184억달러(약 20조8200억원)로 커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김남영 기자 ny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