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통상자원부는 26일 서울 더플라자호텔에서 ‘알키미스트 프로젝트’ 추진을 위한 ‘그랜드 챌린지 발굴위원회’ 출범식을 열었다. 정승일 산업부 차관(왼쪽 세 번째)이 분과별 위원장들과 나란히 서 있다. 왼쪽부터 이병주 한양대 교수, 이기상 현대엔지비 대표, 정 차관, 이건우 서울대 교수, 김동섭 신성이앤지 사장, 손정락 한국기계연구원 센터장. /허문찬 기자 sweat@hankyung.com
산업통상자원부는 26일 서울 더플라자호텔에서 ‘알키미스트 프로젝트’ 추진을 위한 ‘그랜드 챌린지 발굴위원회’ 출범식을 열었다. 정승일 산업부 차관(왼쪽 세 번째)이 분과별 위원장들과 나란히 서 있다. 왼쪽부터 이병주 한양대 교수, 이기상 현대엔지비 대표, 정 차관, 이건우 서울대 교수, 김동섭 신성이앤지 사장, 손정락 한국기계연구원 센터장. /허문찬 기자 sweat@hankyung.com
정부가 성공 가능성은 높지 않지만 잠재력이 큰 미래기술 개발 과제를 선정해 전폭 지원하는 이색 프로젝트를 시작한다. 창의성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도록 실패 책임도 지우지 않기로 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26일 ‘알키미스트(alchemist·연금술사) 프로젝트’를 가동해 7년간 총 6000억원을 투입한다고 발표했다.

연금술사는 고대 그리스 시대에 철로 금을 만들려고 시도했던 사람들이다. 목표를 이루지 못했지만 각종 실험 과정에서 황산, 질산 등을 발견해 화학 분야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알키미스트 프로젝트는 연금술처럼 무모해 보이지만 파괴적인 잠재력을 지닌 도전적 과제를 집중 지원하는 방식의 연구개발(R&D) 사업이다. 약 20개 과제를 엄선한 뒤 7년에 걸쳐 300억원씩 투자한다.

이 프로젝트는 그동안 정부 R&D가 실패에 대한 책임 소재 때문에 보수적으로 운영돼 왔다는 반성에서 시작됐다. 정부 R&D는 매년 개발 목표를 정하고 이에 크게 미달하면 이듬해 예산을 삭감하는 식으로 불이익을 줬다. 기술 개발에 최종 실패하면 해당 기관은 추후 R&D 신청 금지 제재까지 받을 수 있다. 연구자는 실패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성공 가능성이 높은 쉬운 과제에만 매달리는 관행이 정착됐다는 게 산업부의 판단이다.

정부도 위험을 분산한다는 명목으로 턱없이 많은 과제를 책정한 뒤 예산을 쪼갰다. 산업부 R&D 과제만 해도 연평균 지원액이 건당 약 5억원에 그쳤고, 지원 기간은 최장 2~3년이 보통이었다.

알키미스트 프로젝트는 목표에 대한 평가 자체를 없앤 게 가장 큰 특징이다. 대신 주기적으로 성과 발표회를 열어 연구 진행 과정을 대중에 공개한다. 산업부 관계자는 “당초 목표를 이루지 못해도 연구 과정에서 다양한 발견이 일어난다면 그것만으로 의미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건당 지원 규모도 크다. 프로젝트에 선정된 과제에 기본 5년간 매년 50억원 이상을 지원하기로 했다. 선행 연구기간(2년)을 합치면 총 7년이다. 올해 시범사업은 자동차, 로봇, 첨단장비, 신재생에너지, 에너지효율 향상 등 5개 분야다. 총 100억원을 투입하기로 했다. 내년부터는 분야 제한을 없앤다.

미국 국방고등연구기획국(DARPA)이 운영하고 있는 ‘토너먼트형 R&D’ 방식을 적용한다. 한 가지 과제에 대해 3개 기관을 선발해 2년간 선행 지원하고, 그중 성과가 우수한 한 곳에 추후 5년간 예산을 집중하는 방식이다.

기업에도 문호를 개방한다. 기업은 약간의 참여 비용을 내고 정식 회원으로 등록한 뒤 공동 기술개발, 기술이전 등을 할 수 있다. 과제는 전문가 60명으로 구성된 ‘그랜드챌린지 발굴위원회’에서 국민 의견수렴 절차 등을 거쳐 선정한다. 박기영 국립순천대 대학원장은 “정부 R&D에 모험 정신을 불어넣겠다는 취지”라며 “고난도 연구의 경우 10년도 모자랄 수 있는 만큼 과제당 지원 기간을 늘리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서민준 기자 morand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