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임기자 칼럼] 세태 풍자 2題의 정치·사회학
풍자는 자신의 뜻을 익살 속에 버무려 전달하는 커뮤니케이션 수단으로 종종 사용된다. 특정 대상을 직접 공격하는 것이 아니라 간접적으로 에둘러 표현하는 까닭에 전달 효과도 크고 유통 속도도 빠르다. 풍자는 내밀성을 갖기 때문에 풍자가 유행하는 시대는 사회적으로 어려움이 쌓여가고 있다는 신호로 해석되기도 한다. 조선시대의 양반전이나 일제강점기의 다양한 풍자 문학, 스페인의 돈키호테가 그랬듯이 말이다.

최근 한 모임에서 우리 사회의 흐름과 무관하지 않아 보이는 두 건의 풍자를 접했다. 함께 자리했던 대부분은 처음이라는 반응이어서 오래되지 않은 풍자임은 분명하지 싶다.

'복지버전2'와 옥탑방 겨울나기

하나는 골프와 관련된 것이다. 제목은 ‘복지 버전 2’다. 골프는 특권층만의 운동이 아니라 대중스포츠로 자리 잡았다. 그런 의미에서 골프 관련 풍자에도 상당수 국민의 시각이 담겼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내용은 이렇다. 플레이어들은 개별 부담으로 일정액의 기금을 조성한다. 홀마다 플레이어 스코어에 따라 버디는 0, 파는 1, 보기는 2, 더블 이상은 3의 비율로 기금에서 상금을 지급한다. 외형상으로는 약자를 배려하는 시스템인 듯하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상금액이 10을 넘는 플레이어는 3을 남기고 나머지를 환수한다. 이 플레이어가 다시 7을 넘으면 2만 남기고 나머지를 기금에 넣는다. 이 방식을 18홀까지 이어가다 보면 실력이 약한 플레이어는 많이 받는 듯하지만 실제 수입은 없게 된다. 통상은 고수(高手)가 유리한 결과를 얻는다고 했다.

다른 하나는 서울의 내로라하는 대학의 학생들 사이에서 번져가고 있다는 놀이다. 선물을 빗댄 풍자로 제목은 ‘옥탑방 겨울나기’다. 잘 포장한 큼지막한 종이 상자에 ‘옥탑방 겨울나기’라는 문구를 붙여 친구들에게 보낸다고 한다. 특이한 점은 상자 속에 내용물이 전혀 없다는 것이다. 에피소드를 들려준 지인은 “얼마 전 빈 상자를 받은 아들의 얘기”라며 이렇게 설명했다. “열대야 때 옥탑방에서 기거한 한 지방자치단체장과 취업난으로 인한 젊은 세대의 상대적 박탈감을 풍자한 재미있는 놀이”라는 것이다.

풍자는 풍자로 끝나도록 해야

풍자는 흥미를 끌 만한 얘깃거리가 되는 해학을 바탕으로 삼는다. 그래서 풍자는 선전·선동 문구와 달리 행동을 유발하기보다는 한바탕 웃음으로 그치게 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풍자 대상이 되는 현상이 나아질 조짐을 보이지 않으면 사정은 달라진다. 해학적 에두름이 아니라 공격적 직설로 바뀐다.

새로 접한 두 건의 풍자는 개운하지가 않다. 작금의 우리 사회 전반에 대한 비판과 상당 부분 궤를 같이한다는 점에서다. 최저임금 인상이나 주 52시간 근로제 도입은 저소득층의 소득을 늘리고, 국민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한 것이다. 하지만 저임금 근로자의 일자리를 줄이는 역효과가 적지 않다는 비판이 계속된다. 사회적 약자나 저소득층을 위한 복지 제도는 퍼주기 일변도식이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 ‘복지 버전 2’는 이런 세태를 풍자한 것은 아닌지. 저성장과 취업절벽에 낙담하고 있는 이 시대의 대학생들은 ‘옥탑방 여름나기’를 통해 우리 사회 지도층의 보여주기식 행동에 해학적 조롱을 퍼붓고 있는 것은 아닌지.

풍자가 해학과 에두름에서 벗어나 직설(直說)이 되면 사회는 변혁기를 맞을 수 있다. 대중의 행동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4·19와 1980년대 서울의 봄 그리고 광화문의 촛불은 풍자의 정치·사회학을 웅변해주는 사건들이다.

khpar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