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서초구 잠원동 일대에서 리모델링을 추진하는 단지가 속속 나오고 있다. 기존 용적률이 270% 이상이어서 사실상 재건축이 어려운 단지들이다. 준공 후 15년이 지나면 추진할 수 있는 데다 재건축처럼 규제도 까다롭지 않아 리모델링이 활성화되고 있다.
잠원동 세 개 단지 리모델링 추진

27일 정비업계에 따르면 잠원동 ‘잠원동아’ 리모델링 추진위원회는 지난 20일 정비사업전문관리 업체를 선정하고 리모델링 사업 추진에 나섰다. 26일엔 리모델링 주민설명회를 열었다. 이 단지는 기존 용적률이 316%로 높아 재건축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서울시 도시계획조례 등에 따르면 3종일반주거지역에 들어서는 새 건물은 기준 용적률 250%(최대 300%)를 적용받는다. 재건축을 하면 오히려 집을 줄여가야 할 가능성이 높다. 반면 리모델링은 기존 단지를 유지하는 까닭에 이 규정을 적용받지 않는다.

이 단지 추진위는 단지 3개 층을 새로 올리는 수직증축 리모델링을 추진하고 있다. 이에 따라 일반분양분 150여 가구가 새로 나올 전망이다. 오는 6월까지 주민설명회 등을 거쳐 7월부터 주민동의서를 걷을 예정이다. 9월 중 조합을 설립해 연내 시공자 선정까지 끝낸다는 목표다. 기존 가구별 면적도 늘리고 3베이(방 2개와 거실 전면 배치) 설계도 새로 적용할 계획이다. 신석희 잠원동아 리모델링 추진위원장은 “리모델링 설계는 공모를 통해 정할 예정”이라며 “재건축 단지 못지않은 평면과 커뮤니티시설을 적용해 명품 단지를 조성할 것”이라고 말했다.

인근 ‘잠원훼미리’ 리모델링 조합은 내달 13일 리모델링 시공자 선정에 나선다. 이 단지는 기존 지상 최고 18층, 3개 동에 288가구 규모다. 조합은 각 동을 최고 20층으로 수직증축할 계획이다. 리모델링 후 용적률은 400% 이내로 높아진다.

잠원동에서 사업 속도가 가장 빠른 ‘잠원 한신로얄’ 리모델링 조합은 작년 말 서초구에 리모델링 행위허가를 신청하고 2차 안전성 검토 절차를 밟고 있다. 조합 관계자는 “공동검정위원회의 안전성 검토가 내달 말께 완료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 단지는 지상 최고 13층, 2개 동, 208가구 규모다. 2개 층을 수직 증축해 237가구 규모 ‘신반포 아이파크’로 탈바꿈한다. HDC현대산업개발이 리모델링 시공을 맡는다.

건설사 수주 경쟁 치열

최근 재건축초과이익환수제 등 각종 규제로 재건축 사업이 위축되자 먹거리가 줄어든 정비업체와 건설사 등도 리모델링 사업 수주에 적극적이다. 잠원동아가 정비사업관리 업체로 선정한 주성CMC는 압구정3구역, 신반포4지구, 잠실주공5단지 등 강남권 주요 재건축 단지 사업을 맡고 있다. 재건축 수주에 치중했던 GS건설과 대림산업 등도 리모델링 시공 참여에 관심을 보이는 것으로 알려졌다.

잠원훼미리도 마찬가지다. 이 단지엔 HDC현대산업개발, 롯데건설, 포스코건설 등이 입찰했다. 10대 건설사 중 세 곳이 리모델링 시공에 입찰한 것은 이 단지가 처음이다. 각 사는 스카이라운지나 공중정원, 커튼월 외관, 일부 가구 복층형 평면 등 주변 재건축 단지와 비슷한 특화설계를 내세워 경쟁 중이다. 김진구 잠원훼미리 리모델링조합장은 “설계와 시공을 일괄 입찰받다 보니 각 건설사가 특색 있는 설계안을 제시했다”고 설명했다.

‘내력벽 철거’ 허용 여부가 관건

이들 단지 리모델링 사업의 가장 큰 변수는 내력벽 철거 허용 여부다. 국토교통부는 당초 내력벽 철거 허용 여부를 이달 중 결정할 방침이었으나 관련 용역이 지연돼 연말께로 결정을 연기했다. 내력벽은 건물 하중을 견디기 위해 만든 벽이다. 내력벽을 철거할 수 있으면 기존 평면을 4베이(방 3개와 거실 전면 배치)로 바꾸는 등 가구별 평면 구성을 다양하게 할 수 있다.

각 단지는 일단 사업을 추진한다는 입장이다. 반포동 B공인 대표는 “리모델링 사업은 집값에도 호재로 작용하고 있어 일단 사업 추진을 선언해놓고 향후 추이를 보자는 주민이 많다”며 “개별적으로 인테리어를 하는 데도 5000만~1억원이 들어가는 터라 단지 전체를 통으로 리모델링해 주거환경을 개선하자는 목소리도 높다”고 말했다.

정비업계의 한 관계자는 “잠원동 일대는 인기 주거지역이어서 대형 건설사 고급 브랜드를 적용하면 충분히 승산이 있다”며 “성공 사례가 나온다면 향후 노후 단지 리모델링 사업지가 늘어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선한결 기자 alwa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