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후보자가 27일 국회에서 열린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의 인사청문회에서 의원들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김범준  기자  bjk07@hankyung.com
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후보자가 27일 국회에서 열린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의 인사청문회에서 의원들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김범준 기자 bjk07@hankyung.com
문재인 정부 2기 내각의 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가 ‘파행’으로 얼룩졌다. 25일부터 사흘간 열린 7개 부처 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는 후보자들의 ‘하루만 버티면 된다’ 식의 답변과 자료제출 거부, 이를 둘러싼 여야 의원 간 고성과 막말이 뒤섞이는 관행이 되풀이됐다. 국회의 청문보고서 채택과 무관하게 장관 임명을 강행하는 사례가 늘면서 인사청문회가 요식행위가 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저격수’였던 박영선, 야당 의원과 설전

27일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의 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는 여야 의원들의 고성이 오가며 긴장감 속에 시작했다. 야당 의원들은 개인 신상 보호 등을 이유로 2252건의 요구 자료 중 145건을 거절한 박 후보의 태도를 문제 삼았다. 자유한국당 의원들은 박 후보가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 청문회 저격수 역할을 했던 것을 갚아주겠다는 심산으로 공세에 나섰다. 이종배 한국당 의원은 “과거 후보자가 국회에서 40번 인사청문위원으로 활동하며 ‘자료 없이 하는 청문회는 의미가 없다’고 해왔다”며 “본인이 한 말을 되돌려 보라”며 자료 미제출을 질타했다.

여당은 인사청문회가 후보자 ‘망신주기’로 흘러간다며 박 후보자 감싸기에 나섰다. 이훈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자료제출이 거부된 내역을 보면 후보자들이 차마 감내하기 어려운 것들이 있다”고 분개했다.

청문회는 난데없는 박 후보자의 ‘유방암 수술’ 자료 공방으로 이어졌다. 윤한홍 한국당 의원은 “박 후보자가 수술을 받은 병원에서 ‘갑질’을 했다는 의혹이 있다”며 관련 자료 제출을 집요하게 요구했다. 박 후보자는 관련 자료 요청이 ‘성희롱’이라며 거세게 반발했다. 그는 “유방암 수술 관련 자료는 여성에 대한 성희롱”이라며 “제가 (질문을 한) 윤한홍 의원님에게 ‘전립선암 수술을 받았느냐’고 하면 어떻겠느냐”고 반격했다. 이에 한국당은 물론 민주평화당 등 야당 의원들이 박 후보자의 답변 태도를 지적하면서 소란이 일었고 청문회는 30분간 정회됐다.

박 후보자는 이날 청문회에서 최저임금 인상 결정은 지방자치단체별로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내기도 했다. 그는 김삼화 바른미래당 의원으로부터 관련 질의를 받고는 “최저임금은 오히려 지자체별로 결정되는 게 좋겠다는 게 제 의견”이라며 “내년도 경제 상황이 만약 (최저임금을) 동결해야 할 정도로 심각해진다면, 동결에 가까운 수준으로 갈 수 있겠다는 생각도 하고 있다”고 했다.

‘출장민원소’로 전락한 장관 인사청문회

인사청문보고서와 무관한 장관 임명 관행이 고착화되면서 일부 청문회에서는 ‘어차피 임명할 텐데 이참에 지역 민원이나 해결하자’는 식의 폐해까지 나타나고 있다. 지난 25일 최정호 국토교통부 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 여야 의원들은 정책 질의를 빙자한 지역구 민원을 쏟아냈다. 홍철호 한국당 의원은 지역구인 경기 김포을의 숙원사업인 김포한강선(서울 지하철 5호선의 김포 연장)을 최우선 과제로 추진해 달라고 최 후보자에게 요청했다. 김철민 민주당 의원(경기 안산상록을)은 신안산선 착공 계획 이행을, 이용호 무소속 의원(전북 남원·임실·순창)은 ‘지리산 친환경 전기열차’의 적극 검토를 언급했다.

지난 26일 박양우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도 후보 검증보다 지역 사업 민원이 급선무인 의원들이 적지 않았다. 염동열 한국당 의원(강원 태백횡성영월평창정선)은 관광진흥개발기금의 폐광 지역 관광상품 개발사업 지원 예산에 대한 후보자의 입장을 물으며 우회적으로 예산 증액을 요구했다. 최경환 민주평화당 의원(광주 북을) 역시 국립현대미술관 광주관 분관 건립에 대한 후보자 의견을 물었다.

국회는 사흘 동안 7개 부처 장관에 대한 인사청문회를 마무리 지었으나 인사청문경과보고서는 한 건도 채택하지 않았다.

김소현 기자 alph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