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형규 칼럼] 한국형 규제의 '은밀한 레시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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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류 편승, 초강력 졸속입법 양산
정치·관료, 기업 상대 '묵시적 담합'
'큰 정부'의 대가…권력 억제가 답"
오형규 논설위원
정치·관료, 기업 상대 '묵시적 담합'
'큰 정부'의 대가…권력 억제가 답"
오형규 논설위원
평소 기업에 까칠하던 언론들도 이 건(件)만큼은 다소 동정적이다. 번 돈(280만원)의 3214배인 90억원의 과징금을 물게 된 제주항공 사례다. 허가 없이 초소형 리튬배터리가 내장된 손목시계 등을 항공화물로 20회 실어나른 죄다.
위험물은 운송면허가 있어야 실을 수 있다. 리튬배터리도 그중 하나다. 같은 배터리도 승객 위탁수하물은 허용해 규정이 모호한 측면도 있다. 어쨌든 항공사 측 불찰이고, 이의 신청도 기각됐다. 하지만 과징금이 적정한지는 또 다른 문제다.
90억원을 벌려면 보잉737을 꽉 채워 2340회, 45만여 명을 태워 날라야 한다는 게 항공업계 계산이다. 어떻게 항공사상 최대 과징금이 가능했을까. 이와 관련해 지난주 국회에서 항공제재 선진화 토론회가 열렸다. ‘한국형 규제’의 레시피를 잘 보여줘 되짚어볼 만하다.
2013년 발생한 아시아나 샌프란시스코공항 사고, LG전자 헬기 삼성동 사고로 항공안전에 대한 우려가 비등한 게 빌미가 됐다. 이듬해 국토교통부는 항공안전법 시행령을 고쳐 과징금 상한을 50억원에서 100억원으로 높이고, 운항정지 10일에 해당하는 과징금은 2000만원에서 6억원으로 30배 인상했다. 원자력안전법(상한 50억원)보다 더 센 ‘철퇴’를 쥔 것이다.
과징금 총액은 2015년 1000만원(1건)에서 2016년 24억원(11건), 2017년 42억원(7건), 지난해 250억원(21건)으로 폭증세다. 이창재 조선대 교수에 따르면 선진국도 항공 과징금이 있지만 상한은 훨씬 낮다. 미국 최대 40만달러(약 4억5000만원), 독일 5만유로(약 6400만원), 프랑스 1만5000유로 등이다. 반면 한국은 과징금 상한만 두고 우발·부주의와 반복·고의 구분 없이 상한에 가깝게 때린다.
‘국민 밉상’이 된 양대 항공사 탓에 의도적으로 세게 물렸다는 의심도 가능하다. 실제로 국토부는 지난해 진에어의 임원 국적을 문제 삼아 면허취소까지 검토했다. 이게 안전과 무슨 상관인가. 처벌 목적이 항공안전 도모인지, 규제권력 강화인지 헷갈린다.
준법과 관련해 ‘뜨거운 난로의 법칙(hot stove rule)’이 있다. 난로에 손을 대면 화상을 입지만 안 대면 무사해야 한다. 그런데 난로가 너무 뜨거워 근처만 가도 델 정도면 비정상이다. 안전은 강력한 규제·처벌로 달성되지 않는다. 자율과 책임, 경험과 관행이 축적됐을 때라야 비로소 정착된다. 자동차사고 사망자가 극적으로 줄어든 게 범칙금 인상 덕은 아니지 않나.
기업들 처지에선 조금만 소홀해도 중화상을 입을 ‘뜨거운 난로’ 규제가 수두룩하다. 툭하면 CEO(최고경영자) 형사처벌, 대규모 과징금, 가동 중단이다. 획일적 주52시간제의 근로기준법, 산업재해를 발본색원한다는 산업안전보건법, 안전을 내건 화학물질관리법 등이 그런 예다. 임직원 개인 일탈에도 기업을 처벌하는 양벌(兩罰) 규정이 보통이다. 이러니 기업의 대관(對官) 조직만 커진다.
국가권력이 ‘칼’을 쥐면 점점 더 세게 휘두른다. 정치권은 세계 유례없는 처벌법규를 만들고, 관료들은 이를 무기로 재량권을 남발한다. 기업을 손 볼 대상으로 삼은 ‘암묵적 담합’이다. 이런 ‘정치적 비즈니스맨’들은 공익을 말하면서 자기 이익을 챙긴다는 게 공공선택학파의 관찰이다. 그들의 이익은 영향력, 조직·예산 확대, 퇴임 후 자리 등이다.
법이라도 정교해야 할 텐데 현실은 정반대다. “우리 사회의 논의는 정치인과 그 주변인이 주도하고, 높은 수준의 전문가들은 배제되는 게 보통이다. 설사 전문가가 참여해도 정치 흡인력에 빨려 들어가 아주 쉽게 또 하나의 정치꾼으로 전락한다.”(최진석 《탁월한 사유의 시선》)
아무리 ‘규제 혁파’를 외쳐도 한 해 수천 건씩 쏟아지는 졸속·과잉·지대추구식 입법 앞에선 공염불이다. ‘큰 정부’의 대가다. 규제와 처벌이 많아야 공정하고 공익적일 것 같지만 실은 그 반대다. 해법은 국가권력을 제한하는 것뿐이다. 한국에선 가능하기나 할까.
ohk@hankyung.com
위험물은 운송면허가 있어야 실을 수 있다. 리튬배터리도 그중 하나다. 같은 배터리도 승객 위탁수하물은 허용해 규정이 모호한 측면도 있다. 어쨌든 항공사 측 불찰이고, 이의 신청도 기각됐다. 하지만 과징금이 적정한지는 또 다른 문제다.
90억원을 벌려면 보잉737을 꽉 채워 2340회, 45만여 명을 태워 날라야 한다는 게 항공업계 계산이다. 어떻게 항공사상 최대 과징금이 가능했을까. 이와 관련해 지난주 국회에서 항공제재 선진화 토론회가 열렸다. ‘한국형 규제’의 레시피를 잘 보여줘 되짚어볼 만하다.
2013년 발생한 아시아나 샌프란시스코공항 사고, LG전자 헬기 삼성동 사고로 항공안전에 대한 우려가 비등한 게 빌미가 됐다. 이듬해 국토교통부는 항공안전법 시행령을 고쳐 과징금 상한을 50억원에서 100억원으로 높이고, 운항정지 10일에 해당하는 과징금은 2000만원에서 6억원으로 30배 인상했다. 원자력안전법(상한 50억원)보다 더 센 ‘철퇴’를 쥔 것이다.
과징금 총액은 2015년 1000만원(1건)에서 2016년 24억원(11건), 2017년 42억원(7건), 지난해 250억원(21건)으로 폭증세다. 이창재 조선대 교수에 따르면 선진국도 항공 과징금이 있지만 상한은 훨씬 낮다. 미국 최대 40만달러(약 4억5000만원), 독일 5만유로(약 6400만원), 프랑스 1만5000유로 등이다. 반면 한국은 과징금 상한만 두고 우발·부주의와 반복·고의 구분 없이 상한에 가깝게 때린다.
‘국민 밉상’이 된 양대 항공사 탓에 의도적으로 세게 물렸다는 의심도 가능하다. 실제로 국토부는 지난해 진에어의 임원 국적을 문제 삼아 면허취소까지 검토했다. 이게 안전과 무슨 상관인가. 처벌 목적이 항공안전 도모인지, 규제권력 강화인지 헷갈린다.
준법과 관련해 ‘뜨거운 난로의 법칙(hot stove rule)’이 있다. 난로에 손을 대면 화상을 입지만 안 대면 무사해야 한다. 그런데 난로가 너무 뜨거워 근처만 가도 델 정도면 비정상이다. 안전은 강력한 규제·처벌로 달성되지 않는다. 자율과 책임, 경험과 관행이 축적됐을 때라야 비로소 정착된다. 자동차사고 사망자가 극적으로 줄어든 게 범칙금 인상 덕은 아니지 않나.
기업들 처지에선 조금만 소홀해도 중화상을 입을 ‘뜨거운 난로’ 규제가 수두룩하다. 툭하면 CEO(최고경영자) 형사처벌, 대규모 과징금, 가동 중단이다. 획일적 주52시간제의 근로기준법, 산업재해를 발본색원한다는 산업안전보건법, 안전을 내건 화학물질관리법 등이 그런 예다. 임직원 개인 일탈에도 기업을 처벌하는 양벌(兩罰) 규정이 보통이다. 이러니 기업의 대관(對官) 조직만 커진다.
국가권력이 ‘칼’을 쥐면 점점 더 세게 휘두른다. 정치권은 세계 유례없는 처벌법규를 만들고, 관료들은 이를 무기로 재량권을 남발한다. 기업을 손 볼 대상으로 삼은 ‘암묵적 담합’이다. 이런 ‘정치적 비즈니스맨’들은 공익을 말하면서 자기 이익을 챙긴다는 게 공공선택학파의 관찰이다. 그들의 이익은 영향력, 조직·예산 확대, 퇴임 후 자리 등이다.
법이라도 정교해야 할 텐데 현실은 정반대다. “우리 사회의 논의는 정치인과 그 주변인이 주도하고, 높은 수준의 전문가들은 배제되는 게 보통이다. 설사 전문가가 참여해도 정치 흡인력에 빨려 들어가 아주 쉽게 또 하나의 정치꾼으로 전락한다.”(최진석 《탁월한 사유의 시선》)
아무리 ‘규제 혁파’를 외쳐도 한 해 수천 건씩 쏟아지는 졸속·과잉·지대추구식 입법 앞에선 공염불이다. ‘큰 정부’의 대가다. 규제와 처벌이 많아야 공정하고 공익적일 것 같지만 실은 그 반대다. 해법은 국가권력을 제한하는 것뿐이다. 한국에선 가능하기나 할까.
o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