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정신질환자의 아픔, 마음으로 이해한 뇌 과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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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정신병에 걸린 뇌 과학자입니다
바버라 립스카·일레인 맥아들 지음
정지인 옮김 / 심심 / 372쪽│1만6800원
바버라 립스카·일레인 맥아들 지음
정지인 옮김 / 심심 / 372쪽│1만6800원
달리고 또 달렸다. 벌써 몇 시간째였다. 20년 동안 같은 동네에 살면서 매일 아침 달린 길. 그런데 이상했다. 집이 어디 있는지 찾을 수가 없었다. 마침내 집에 도착해 거울을 본 그는 경악했다. 머리는 온통 땀과 염색약으로 덩이가 졌고, 정수리엔 염색한 머리를 덮었던 비닐봉지가 괴상하게 붙어 있었다. 검은색으로 변한 염색약은 목과 팔을 따라 흘러내려 셔츠 전체를 물들였다. 아침 운동을 나서기 전 느닷없이 머리에 염색약을 바른 것, 비닐 캡을 덮어쓴 채 달리기를 시작한 것부터가 이상했다.
주인공은 미국 국립정신보건원 산하 인간두뇌수집원의 바버라 립스카 원장(67·사진). 사후 기증된 두뇌를 조직표본으로 만들어 세계 과학자들과 공유하고 거기서 얻은 정보로 신경정신학적 장애의 원인을 찾고 치료법을 개발하는 신경과학자 겸 분자생물학자다. 1993년 조현병이 발생하는 뇌의 핵심 부위가 전두피질임을 규명한 ‘조현병의 신생아 해마 병변 모델’, 일명 ‘립스카 모델’을 발표해 조현병의 인지기능 결함을 치료하는 신약 개발의 틀을 마련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런 뇌과학자의 뇌에 문제가 생긴 것이었다.
《나는 정신병에 걸린 뇌과학자입니다》는 30년 이상 뇌를 연구해온 과학자가 뇌종양으로 인한 정신질환을 직접 겪은 이야기다. 환자들에게서 봐왔던 정신질환의 다양한 양상을 겪은 그는 “내가 몸소 정신질환을 겪어보기 전까지는 정신을 잃었다가 되찾는다는 것이 어떤 일인지 온전히 알 수 없었다”고 고백한다.
처음 이상을 발견한 것은 2015년 1월이었다. 아침에 사무실 컴퓨터를 켜려던 립스카 원장은 움찔했다. 손을 시야의 오른쪽 아래로만 가져가면 사라진 채 보이지 않았다. 설마 했지만 검사 결과 3년 전 이겨냈다고 생각한 흑색종이 뇌에 전이됐다는 진단이 나왔다. 전이성 흑색종 환자의 생존 가능성은 희박했다. 수술로 후두엽의 종양을 제거한 그는 싸우지도 않은 채 쓰러지지는 않겠노라고 결심했다.
그러나 싸움은 험난했다. 수술을 받은 지 한 달 반이 지났을 때 새로운 비정상적 조직들이 뇌에서 발견됐다. 립스카는 의료진은 물론 가족과 상의한 끝에 방사선 치료, 면역치료, 표적치료까지 모든 무기를 동원해 흑색종을 공격하기로 했다. 큰 기대를 걸었던 면역치료를 앞두고 새로운 종양이 발견돼 암운을 드리웠다. 심지어 치료하는 과정에서 건포도만 한 종양이 18개나 발견됐다.
더욱 심각한 것은 이 과정에서 나타나는 정신질환의 증상이었다. 길을 잃어 집을 찾지 못하고, 주차장에 세워둔 차도 찾지 못해 헤맨다. 사랑하는 가족들에게 별것도 아닌 일로 불같이 화를 내고, 피자가게에서 사온 피자가 플라스틱 덩어리라며 누군가 자신을 독살하려 한다는 망상에 시달린다.
특히 전두엽 손상은 인간의 존엄을 위협했다. 미식축구공과 비슷하게 생긴 인간의 뇌는 가운데에 난 깊은 골을 중심으로 좌반구와 우반구로 나뉜다. 각 반구에는 전두엽, 측두엽, 두정엽, 후두엽 등 네 개의 뇌엽이 있다. 전두엽은 세계에 대한 인식부터 사적인 생각과 상상까지 인간 의식의 상당 부분을 결정한다. 두정엽은 감각정보를 처리하고, 측두엽은 청각처리, 해마는 장기기억 보관을 담당한다.
전두엽의 앞쪽 윗부분인 전두피질은 뇌에서도 가장 진화된 부분으로 판단력과 결정력, 사고와 기억, 문제해결력을 제공한다. 그중에서도 이마 바로 뒤에 있는 전전두피질은 옳고 그름을 분간하고 부적절한 행동과 충동을 억제하며 미래를 예측하는 등 온전한 정신을 유지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집착에 가까운 식탐은 전두엽에 문제가 있음을 보여주는 전형적인 신호였다. 망상, 분노, 불안 등도 마찬가지였다. 립스카는 ”전두엽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던 나의 뇌는 기수가 고삐를 놓쳐 위험하게 질주하는 말과 같았다”고 했다.
하지만 방사선치료와 면역치료에 이어 표적치료까지 동원하자 변화가 일기 시작했다. 스스로 치유하는 뇌의 놀라운 능력이었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모든 종양이 상당히 줄거나 완전히 사라졌다. 새로운 병변도 보이지 않았다. 전이성 흑색종 진단을 받은 지 1년이 조금 지난 2016년 3월 뉴욕타임스에 실린 립스카의 에세이 ‘정신병에 걸린 신경과학자’는 엄청난 반응을 몰고 왔고 마침내 책으로도 나왔다.
그는 “정신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일인지를 진정으로 가르쳐준 것은 바로 나 자신이 겪은 고통”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조현병을 비롯한 정신질환에 대한 사회적 낙인이 거둬지기를 소망한다. 그는 “정신장애는 본질적으로 생리학적인 문제다. 관상동맥 질환이 심장의 병이듯 정신질환은 뇌의 병”이라며 환자에게 잘못을 돌리고 비난하는 행위는 이제 멈춰야 한다고 강조한다.
서화동 문화선임기자 fireboy@hankyung.com
주인공은 미국 국립정신보건원 산하 인간두뇌수집원의 바버라 립스카 원장(67·사진). 사후 기증된 두뇌를 조직표본으로 만들어 세계 과학자들과 공유하고 거기서 얻은 정보로 신경정신학적 장애의 원인을 찾고 치료법을 개발하는 신경과학자 겸 분자생물학자다. 1993년 조현병이 발생하는 뇌의 핵심 부위가 전두피질임을 규명한 ‘조현병의 신생아 해마 병변 모델’, 일명 ‘립스카 모델’을 발표해 조현병의 인지기능 결함을 치료하는 신약 개발의 틀을 마련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런 뇌과학자의 뇌에 문제가 생긴 것이었다.
《나는 정신병에 걸린 뇌과학자입니다》는 30년 이상 뇌를 연구해온 과학자가 뇌종양으로 인한 정신질환을 직접 겪은 이야기다. 환자들에게서 봐왔던 정신질환의 다양한 양상을 겪은 그는 “내가 몸소 정신질환을 겪어보기 전까지는 정신을 잃었다가 되찾는다는 것이 어떤 일인지 온전히 알 수 없었다”고 고백한다.
처음 이상을 발견한 것은 2015년 1월이었다. 아침에 사무실 컴퓨터를 켜려던 립스카 원장은 움찔했다. 손을 시야의 오른쪽 아래로만 가져가면 사라진 채 보이지 않았다. 설마 했지만 검사 결과 3년 전 이겨냈다고 생각한 흑색종이 뇌에 전이됐다는 진단이 나왔다. 전이성 흑색종 환자의 생존 가능성은 희박했다. 수술로 후두엽의 종양을 제거한 그는 싸우지도 않은 채 쓰러지지는 않겠노라고 결심했다.
그러나 싸움은 험난했다. 수술을 받은 지 한 달 반이 지났을 때 새로운 비정상적 조직들이 뇌에서 발견됐다. 립스카는 의료진은 물론 가족과 상의한 끝에 방사선 치료, 면역치료, 표적치료까지 모든 무기를 동원해 흑색종을 공격하기로 했다. 큰 기대를 걸었던 면역치료를 앞두고 새로운 종양이 발견돼 암운을 드리웠다. 심지어 치료하는 과정에서 건포도만 한 종양이 18개나 발견됐다.
더욱 심각한 것은 이 과정에서 나타나는 정신질환의 증상이었다. 길을 잃어 집을 찾지 못하고, 주차장에 세워둔 차도 찾지 못해 헤맨다. 사랑하는 가족들에게 별것도 아닌 일로 불같이 화를 내고, 피자가게에서 사온 피자가 플라스틱 덩어리라며 누군가 자신을 독살하려 한다는 망상에 시달린다.
특히 전두엽 손상은 인간의 존엄을 위협했다. 미식축구공과 비슷하게 생긴 인간의 뇌는 가운데에 난 깊은 골을 중심으로 좌반구와 우반구로 나뉜다. 각 반구에는 전두엽, 측두엽, 두정엽, 후두엽 등 네 개의 뇌엽이 있다. 전두엽은 세계에 대한 인식부터 사적인 생각과 상상까지 인간 의식의 상당 부분을 결정한다. 두정엽은 감각정보를 처리하고, 측두엽은 청각처리, 해마는 장기기억 보관을 담당한다.
전두엽의 앞쪽 윗부분인 전두피질은 뇌에서도 가장 진화된 부분으로 판단력과 결정력, 사고와 기억, 문제해결력을 제공한다. 그중에서도 이마 바로 뒤에 있는 전전두피질은 옳고 그름을 분간하고 부적절한 행동과 충동을 억제하며 미래를 예측하는 등 온전한 정신을 유지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집착에 가까운 식탐은 전두엽에 문제가 있음을 보여주는 전형적인 신호였다. 망상, 분노, 불안 등도 마찬가지였다. 립스카는 ”전두엽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던 나의 뇌는 기수가 고삐를 놓쳐 위험하게 질주하는 말과 같았다”고 했다.
하지만 방사선치료와 면역치료에 이어 표적치료까지 동원하자 변화가 일기 시작했다. 스스로 치유하는 뇌의 놀라운 능력이었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모든 종양이 상당히 줄거나 완전히 사라졌다. 새로운 병변도 보이지 않았다. 전이성 흑색종 진단을 받은 지 1년이 조금 지난 2016년 3월 뉴욕타임스에 실린 립스카의 에세이 ‘정신병에 걸린 신경과학자’는 엄청난 반응을 몰고 왔고 마침내 책으로도 나왔다.
그는 “정신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일인지를 진정으로 가르쳐준 것은 바로 나 자신이 겪은 고통”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조현병을 비롯한 정신질환에 대한 사회적 낙인이 거둬지기를 소망한다. 그는 “정신장애는 본질적으로 생리학적인 문제다. 관상동맥 질환이 심장의 병이듯 정신질환은 뇌의 병”이라며 환자에게 잘못을 돌리고 비난하는 행위는 이제 멈춰야 한다고 강조한다.
서화동 문화선임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