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인터뷰] 박삼구 회장 "모든 책임지고 물러날테니 아시아나항공 도와달라"
“진심으로 말하는데 산업은행에서 (회장직을) 그만두라고 한 게 절대 아닙니다. 제가 먼저 (물러나겠다고) 제안했어요. 모든 책임은 제가 져야죠.”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74)의 목소리는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 17년 만에 그룹 회장직을 내려놓으면서 할 말이 많은 듯했지만 말을 아꼈다. 박 회장은 28일 사퇴 발표 직후 한국경제신문과의 전화통화에서 “어제(27일)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을 만나 사임하겠다는 뜻을 밝혔다”며 “(금호산업·아시아나항공 등의) 주주들께 죄송한 마음뿐”이라고 했다. “직원들의 노고에 충분히 보답하지 못한 게 마음이 아프다”며 그룹 임직원에 대한 미안한 마음도 내비쳤다.

퇴진 초강수 둔 박삼구 회장

박 회장이 그룹의 핵심 계열사인 아시아나항공 ‘회계 파문’ 엿새 만에 전격 퇴진이라는 초강수를 꺼내들었다. 아시아나항공에 대한 시장의 신뢰가 무너지면 신용등급 하락 등으로 차입금 상환이 어려워지고 유동성 위기가 불거져 그룹 전체가 흔들릴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다.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도 “대주주와 회사의 시장 신뢰회복 노력이 선행되면 정상화를 지원하겠다”고 답했다.

박 회장은 이날 사퇴시점에 대한 고민도 털어놨다. 국내 항공업계의 양대 축이었던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과 박 회장은 공교롭게 하루 차이로 나란히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다. 조 회장은 지난 27일 2대 주주인 국민연금 등의 반대로 대한항공 사내이사 재선임에 실패하면서 대표이사에서 퇴진했다. 박 회장은 “전날 조 회장이 대한항공 대표이사에서 물러나면서 나까지 사퇴하면 오해를 사지 않을까 고민했다”면서도 “대주주로서 하루라도 빨리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야 하는 게 맞다고 판단해 사임 의사를 공개했다”고 했다.

재계에선 최종구 금융위원장 등이 대주주의 책임있는 행동을 주문한 것도 박 회장의 사퇴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고 있다. 최 위원장은 지난 25일 “기업이 정상적으로 영업한다면 상환에 문제가 없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보다 근본적으로 회사와 대주주가 좀 더 시장에서 신뢰할 수 있고 성의 있는 조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우회적으로 박 회장을 압박했다.

[단독 인터뷰] 박삼구 회장 "모든 책임지고 물러날테니 아시아나항공 도와달라"
자금조달 어려워진 아시아나

아시아나항공의 자금조달 길은 꽉 막혀 있다. 재무구조 악화 우려가 커지는 와중에 외부감사인인 삼일회계법인으로부터 감사의견 ‘한정’을 받아 투자자 신뢰가 급격히 떨어진 탓이다. 올해 갚아야 하는 차입금만 1조3013억원에 달한다. 그야말로 ‘비상사태’다.

고금리로 개인투자자들 사이에서 인기가 높은 영구채(신종자본증권) 발행 시도도 물거품이 됐다. 지난 15일(850억원)에 이어 29일 영구채로 650억원을 마련할 계획이었지만 비적정(한정) 감사의견을 받은 직후 핵심 투자자인 대신금융그룹이 발을 빼면서 발행이 무산됐다.

확실한 자금조달 수단이었던 자산유동화증권(ABS)마저 발행하기 힘들 것이란 관측도 나오고 있다. 최근 신용평가사들이 이 회사 신용등급을 하향 검토 대상에 올리면서 기존에 발행한 1조1328억원어치 ABS가 한꺼번에 즉시 상환 조건에 걸릴 위험에 처해서다. 항공권 판매수익을 기초자산으로 한 이 ABS에는 ‘국내 신용평가사 중 한 곳이라도 ‘BBB-’인 아시아나항공의 신용등급을 한 단계 떨어뜨리면 즉시 상환 조건이 발동된다’는 특약이 걸려 있다.

자산 매각 통한 경영 정상화 추진

금호아시아나그룹은 당분간 이원태 그룹 부회장을 중심으로 비상경영 체제에 들어가기로 했다. 그룹 관계자는 “대주주는 어떤 희생을 감수하더라도 아시아나항공의 경영 정상화를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할 계획”이라며 “당분간 그룹 경영위원회 체제를 운영해 경영 공백이 없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장기적으로는 전문성을 갖춘 외부 인사를 그룹 회장으로 추대할 계획이다. 박 회장의 장남인 박세창 아시아나IDT 사장(44)의 경영 보폭이 한층 넓어질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재계에선 아시아나항공이 자산 매각을 통해 경영 정상화를 추진할 것으로 보고 있다. 자회사인 저비용항공사(LCC) 에어서울 지분 100%(작년 말 장부가 600억원)와 아시아나개발 지분 100%(491억원), 아시아나에어포트 지분 100%(385억원), 아시아나IDT 지분 76.22%(장부가 194억원), 에어부산 지분 44.17%(173억원) 등이 대표적이다. 부동산 중에선 경기 용인 아시아나CC, 서울 강서구 아시아나타운이 수천억원대 유동성을 확보할 만한 자산으로 꼽힌다.

산업은행도 시장의 신뢰 회복을 전제로 지원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산은은 아시아나항공 실사를 마치는 대로 경영정상화 방안을 마련해 다음달 끝나는 재무구조 개선 약정(MOU)을 다시 체결할 방침이라고 발표했다.

김보형/김진성/김익환 기자 kph21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