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별 악재에 따른 퇴진이 대부분…재벌그룹 거버넌스 변화 '주목'
"이사회 의장 사퇴는 긍정적…전문경영인 체제 강화될 듯"


최근 국내 유력 재벌그룹의 총수들이 잇따라 스스로 혹은 타의에 의해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는 사례가 속출하면서 재계에 변화의 바람이 감지되고 있다.

아직은 몇몇 그룹의 개별 악재에 따른 것이 대다수이지만 과거와 같은 '제왕적 재벌 총수'의 시대는 종언을 고하는 게 아니냐는 다소 때이른 관측도 나온다.

29일 재계에 따르면 올해 상장사의 정기 주주총회 시즌을 전후로 주요 그룹 총수의 경영 일선 퇴진과 이사회 의장 사퇴가 이어지는 양상이다.

재계 서열 14위(공정거래위원회 대기업집단 지정 현황 기준)인 한진그룹 조양호 회장은 지난 27일 대한항공 주주총회에서 사내이사 재선임안이 부결되면서 대표이사로서 경영권을 박탈당했다.

최근 이어진 이른바 '갑질 논란' 등에 따른 것으로, 그룹 지주회사인 한진칼 등을 통해 그룹 경영에 영향권을 행사할 수 있지만 총수 지위에는 치명적인 타격을 입은 셈이다.
회장들의 잇단 퇴진·박탈…'제왕적 재벌총수' 시대의 종언일까
재계 25위 금호아시아나그룹의 박삼구 회장은 최근 핵심 계열사인 아시아나항공의 감사보고서 문제 등에 대한 책임을 지고 지난 28일 전격적으로 용퇴 결단을 발표했다.

스스로 그룹 내 모든 직함을 내려놓겠다는 것으로, 특히 외부 인사를 그룹 회장으로 영입하겠다는 뜻을 밝히면서 사실상 '재벌 총수 체제'를 더이상 유지하지 않을 것임을 확인했다.

이에 앞서 지난해 11월 말에는 재계 31위 코오롱그룹의 이웅열 회장이 전격적으로 자진 사퇴를 선언해 재계를 놀라게 했다.

특별한 악재가 없는 가운데 이 회장은 "1996년 1월, 40세에 회장직을 맡았을 때 20년만 코오롱의 운전대를 잡겠다고 다짐했었다"면서 퇴임식도 없이 회장직에서 물러나며 각 계열사 전문경영인들에게 그룹 경영의 '바통'을 넘기는 '소유와 경영의 분리' 실험을 단행했다.

이밖에 '마지막 1세대 총수'로 불리던 김준기 동부그룹 회장은 지난 2017년 9월 비서 성추행 혐의로 피소되면서 불명예 퇴진했다.

경우는 다르지만 재벌 총수들이 이사회 독립성 강화를 취지로 스스로 이사회 의장에서 물러나는 사례도 최근 이어지고 있다.
회장들의 잇단 퇴진·박탈…'제왕적 재벌총수' 시대의 종언일까
서열 3위인 SK그룹은 최근 지주사인 SK㈜의 대표이사가 이사회 의장을 겸직하도록 한 정관을 변경해 최태원 회장이 의장직에서 물러났다.

앞서 재계 26위인 효성의 조현준 회장은 지난해 3월 이사회의 전문성과 독립성을 강화해 그룹 지배구조를 개선하겠다면서 지주사인 ㈜효성의 이사회 의장에서 물러나겠다고 밝혔다.

이런 일련의 '총수 사퇴'에 대해 재계 안팎에서는 개별 그룹의 특수한 상황이 반영된 것으로, 한국 재벌 문화의 틀이 바뀌는 것은 아니라는 견해가 우세하다.

퇴진 이후 일정 기간의 과도기를 거쳐 자신의 2세들에게 경영권을 승계하려 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재벌 총수 일가가 대를 이어 평생 절대적인 권한을 행사하면서 그룹 경영에 직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던 시절은 사실상 지나갔으며, 그룹의 거버넌스가 '사람'이 아닌 '제도' 중심으로 전환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라는 분석도 내놓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여전히 그룹 경영에서 총수의 영향력은 절대적이며, 최근 잇단 총수 사퇴를 근본적인 재벌 문화의 변화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면서 "다만 글로벌 경쟁 시대를 맞아 총수의 이사회 의장 사퇴와 전문경영인 체제 강화는 긍정적인 흐름"이라고 말했다.

/연합뉴스